경주 남산
신라인들의 영원한 불국토(佛國土)
유네스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발굴·보호·보존하기 위해 1972년에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등재를 시작으로 모두 12점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유산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편집자>
| 양영훈 여행작가 |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이다. 한 나라의 수도로서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곳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경주 이외에는 이탈리아의 로마, 터키의 이스탄불, 중국의 시안(西安)과 일본의 교토(京都) 정도가 천년 수도로 꼽힌다.
수도로서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경주에는 발길 닿는 곳곳마다 문화유적이 지천이다. 현재까지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세계유산 12건 가운데 석굴암·불국사, 경주 역사유적지구,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 중 양동) 등 3건이 경주에 있다. 지난 2000년 12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역사유적지구는 대단히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른다. 남산, 월성, 대능원, 황룡사, 명활산지구 등의 5개 구역으로 이뤄져 있다. 1박 2일, 또는 2박 3일 정도의 빠듯한 일정으로는 모두 둘러볼 수가 없다. 욕심 부리지 않고 경주 남산 일대만 먼저 둘러보기로 한다.
신라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된 뒤부터 경주 남산은 부처가 머무는 성지로 신성시됐다. 산자락과 골짜기마다 숱한 절과 탑이 세워지고 불상이 조성됐다. 전성기 때에는 절집만 무려 800곳 넘게 들어섰다고 전해온다. 오늘날에도 남산 일대에는 왕릉 13기, 절터 150곳, 불상 130구, 석탑 100여 기, 석등 22기 등 모두 700여 점의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남산의 답사 루트와 등산로는 무수히 많아서 길 잡기가 쉽지 않다. 초행일 경우에는 동쪽의 봉화골로 올라 서쪽의 삼릉골로 내려서는 능선 종주코스를 택하는 것이 무난하다. 꼬박 7, 8시간 정도 소요되는 이 코스에서는 남산 유일한 국보인 칠불암, 최대 규모의 절터인 용장사지, 가장 유물이 많은 삼릉골 등 남산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을 두루 섭렵할 수 있다.
남산 종주의 출발지는 남산동의 통일전이다. 주변에 서출지와 남산 삼층석탑이 있다. 민가와 절집, 밭과 논이 뒤섞인 마을길을 가로질러 봉화골 초입의 숲길에 들어선다. 제법 긴 오르막길인데도 경사가 완만해서 그다지 고되거나 지루하진 않다. 울창한 솔숲 사이로 조붓하게 이어지는 숲길의 운치도 일품이다. 때마침 4월이라 연분홍 진달래꽃이 솔숲 바닥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꽃빛깔이 어찌나 곱고 선명한지, 마치 꽃구름 위를 두둥실 떠가는 듯하다.
완만한 숲길이 끝나고 본격적인 비탈길이 시작될 즈음이면 칠불암이 지척이다. 이 암자에는 마애삼존불과 사방불로 이뤄진 칠불암 마애석불이 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의 커다란 바위 두 곳에 삼존불과 사면불 등 모두 일곱 불상이 조각돼 있다. 통일신라의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조성된 불상답게 남산의 숱한 불상들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으로 꼽힌다. 보물 제200호로 지정돼 있다가 지난 2009년 9월에 국보 제312호로 승격됐다.
칠불암에서 가파른 암벽을 기다시피 해서 200~300m쯤 올라가면 시야가 훤히 트인 암벽 꼭대기에 당도한다. 이곳 암벽에는 구름을 올라탄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이 조각돼 있다. 전망 탁월한 산등성이에 좌정한 이 불상 앞에 서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뒤로하고 다시 바윗길을 따라 얼마쯤 오르면 봉화대 능선길에 접어든다. 남산의 최고봉인 고위산(494m)에서 한복판 우뚝한 금오산(468m)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이 길을 따라 40~50분쯤 가면 봉화대 능선길과 남산순환로(일주도로)를 만나는 이영재에 도착한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남산순환로를 타고 다시 20여 분쯤 걸으면 용장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여기서 용장사지까지의 거리는 약 350m쯤 된다.
용장사는 한때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은둔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한 곳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폐허로 변하는 바람에 목탁 소리와 풍경 소리가 끊긴 지는 이미 오래됐다. 오늘날에는 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귀공자처럼 준수한 외모를 갖춘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머리를 잃은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등만이 덩그러니 남아 절터를 지키고 있다.
용장사지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와 남산순환로, 금오산 정상, 상사바위 등을 지나 삼릉골로 내려선다. ‘냉골’로도 불리는 삼릉골에서는 거대한 바위 속에 불쑥 튀어나는 듯한 형상의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마치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여섯 부처를 선각(線刻)해놓은 마애선각육존불상, 석굴암 본존불상을 닮은 듯한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 바위 빛깔 그대로의 붉은 입술이 인상적인 마애관음보살상 등을 만날 수 있다.
이튿날에는 동남산 자락의 보리사와 탑골, 부처골을 찾았다. 남산에서 가장 큰 사찰인 보리사에는 듬직하고도 단아한 자태의 미륵곡 석불좌상(보물 제136호)이 있다. 자비로운 낯빛과 부드러운 미소가 돋보이는 석불이다. 근처 탑골에는 탑곡 마애불상군(보물 제201호)이 있다. 높이 9m, 둘레 30m의 부처바위에 여래, 보살, 승려, 비천, 나한, 목탑, 사자 등 30여 가지의 형상이 조각돼 있다.
‘아줌마부처’, 또는 ‘할머니부처’라고도 불리는 남산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198호)도 빼놓을 수 없다. 땅에 반쯤 묻힌 자연석을 파서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조각했다.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채 수줍은 듯한 미소를 띤 모습이 이웃 아주머니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 불상은 남산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라고 한다.
경주 남산에는 신라의 건국설화와 패망의 역사가 함께 전해온다. 북서쪽 기슭의 나정은 신라의 첫 임금인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곳이고, 나정 남쪽의 창림사지는 신라 최초의 궁궐터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약 1km 거리에는 신라 55대 경애왕이 주색잡기에 열중하다가 후백제의 견훤에게 사로잡혔다는 포석정이 있다. 이런 유적들만 봐도 ‘남산의 역사가 곧 신라의 역사’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남산 곳곳에 산재한 불상과 석탑을 보고 나면, 길가의 돌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바위마다 불심 넘치는 어느 신라인이 부처의 형상을 새겨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쯤 되면 ‘세상천지의 모든 것이 부처’라는 말의 이치를 저절로 깨닫게 마련이다.
여행 정보
경주 남산 달빛기행
경주남산연구소(054-777-7142. www.kjnamsan.org)에서 매달 음력 보름날 전후로 1회씩 진행한다. 교교한 달빛을 받으며 남산의 문화유적을 찾아다니는 독특한 경험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특히 늠비봉의 오층석탑 옆에서 바라보는 경주의 밤 풍경은 황홀한 추억으로 남는다. 이 연구소에서는 매주 토·일요일과 공휴일마다 ‘경주 남산 문화유적 답사’ 프로그램도 무료로 진행한다.
숙식
남산 일대에는 칠불암 입구의 칠불암한옥펜션(054-741-2828), 통일전 근처의 경주수목원펜션(010-9294-7811), 포석정 부근의 옛살비펜션(054-745-0950), 삼릉 입구의 경주삼릉펜션(054-741-5556) 등 숙박시설이 많다. 포석정 근처의 경주가족쉼터캠핑장(010-2372-0544), 경주남산포석농장 힐링캠핑장(010-2515-1472)에서는 오붓하게 캠핑도 즐길 수 있다.
남산 주변의 맛집으로는 포석정 입구의 부성식당(보리밥 정식, 054-745-2258), 삼릉 입구의 삼릉고향칼국수(054-745-1038)와 만리행백년초칼국수(054-775-2541), 칠불암 입구의 여기당(시래기밥, 054-743-2752) 등을 꼽을 수 있다.
찾아가기
대중교통 경주 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에서 11번 좌석버스나 일반버스를 타면 칠불암 입구의 통일전까지 곧장 갈 수 있다. 약 30분 소요. 포석정, 삼릉 입구와 경주 고속버스터미널 구간은 500번 좌석버스가 운행한다.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경주톨게이트→배반사거리(우회전, 7번 국도)→사천왕사지 삼거리(우회전, 통일전 방면)→통일전 주차장
주차장 통일전, 포석정, 삼릉 입구 등에 주차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