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15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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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동·서독 과학기술 협력관계,
통일 준비의 롤모델이다”

박성현 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남북한 간 과학기술 교류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누그러뜨리고 발전적 협력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단초가 된다.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과학기술 협력 방안은 무엇인가.


“동·서독이 통일 전 경제, 문화,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교류를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이뤄진 교류는 독일 통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구체적으로 서독은 1987년 동독과의 과학기술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연방 연구기술부 산하에 이를 전담할 국 단위의 정부 조직을 설치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미래창조과학부에 북한협력국을 마련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일을 전담할 공무원이 있다는 것은 국가가 이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챙긴다는 뜻입니다. 같은 해 동·서독 정부는 과학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고 원자력, 환경 보호 등 27개 분야의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협력’이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독이 동독을 도와주는 형식이었습니다. 통일되기 3년 전부터 동·서독 간에 이러한 교류가 매우 활발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박성현 민주평통 서초구 자문위원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으로 재직했던 최근 3년간 쌀 120만 톤 비축제도 법제화, 식용 콩 자급계획 수립, 축산 사료 자급률 향상을 위한 정책 추진, 비상시 식량 확보를 위한 식품산업 육성 등 한반도 통일과 남북관계 안정에 필요한 과학기술 협력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피력해왔다. 2012년 5·24 조치 이후 최근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이르기까지 경색 국면으로만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를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적 접근 이전에 양국이 자연스럽게 협력할 수 있는 분야부터 관계를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14년 3월 28일 박 대통령이 천명한 ‘드레스덴 선언’의 평화통일 3단계 구상과도 맥을 같이한다. 남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한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구체적 과제로 설정한 ‘드레스덴 선언’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식량 증산과 축산 진흥, 보건의료 지원, 질병 퇴치, 산림 녹화 등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바탕으로 민생사업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북한을 얘기할 때는 둘로 나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권력층과 일반 주민들이 바로 그것인데요. 우리가 도와야 할 것은 권력층이 아니라 핍박받고 가난한 북한 주민들입니다. 탈북자 3만 명 시대, 그분들이 들려주는 북한의 실상을 듣고 있자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그들에게 죄라면 국가 지도자를 잘못 만난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통일 이전 동·서독의 생활수준 격차는 우리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지금 북한 주민들의 삶의 수준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입니다.”

민간 차원의 학술 교류 또한 중요하다. 북한의 민생 현안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연구와 지원이 이뤄지려면 학술 분야 교류가 디딤돌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제시한 남북통일을 위한 과학기술 협력 방안들은 북한 측의 의견을 고려할 수 없었던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1년 평양에 건립된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이러한 교류와 협력 창구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양과학기술대학은 한국 태생의 미국인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과학 분야의 민간대학이다.

“북한도 우리와 과학기술 분야 교류를 원한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아시아과학기술연합회에 북한이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현재 아시아과학기술연합회 사무국 역시 남한에 있어 북한 측이 민간 차원의 교류를 원한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는 상황에서는 제3국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류가 불가능한 상태라 남북 간 과학기술 협력이 진행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통일준비위에 과학기술인 포함시켜야

그는 지난 2014년 발족한 통일준비위원회에 과학기술인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정치적 접근 이전에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동질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색이 적고 북한이 협력을 원하는 과학기술 분야부터 접근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물론 과학기술 분야 전반에 걸쳐 남한이 북한에 비해 월등히 앞선 것만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도 일부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그 예로 들 수 있는데, 북한 해커들의 수준은 그야말로 세계 최정상급입니다. 평양과학기술대학 박찬모 교수의 말에 따르면 평양과학기술대학에는 북한 최고의 인재들이 소프트웨어 연구를 위해 모여 있다고 합니다. 이런 우수한 소프트웨어 인재들과 남한의 우수한 하드웨어 기술이 만난다면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협력관계를 이뤄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모든 제안들을 현실화해나가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과학기술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가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내에 남북과학기술협력센터 설치를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남측이 제안한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건립에 대해 북측이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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