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문 중미· 카리브협의회장
“쿠바 한인의 조국을
북한에서 한국으로 바꿔놓았다”
민주평통 중미·카리브협의회는 2014년 미수교국인 쿠바에 한인문화원을 설립하고, 지난해에는 미주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청년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중미·카리브협의회는 그 어느 해외 지역협의회보다 일이 고되다. 협의회의 중심인 멕시코를 비롯해 에콰도르, 과테말라, 파나마 등 무려 14개국이 카리브 해를 둘러싸거나 사이에 둔 채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로 이동해도 7, 8시간이 소요될 만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도 있다. 각 회원국이 모이는 것 자체가 큰 일거리다.
“그래서 더더욱 회원국 자문위원 간의 소통과 단합이 사업의 관건이라 판단했습니다. 각지에 흩어져 있고 나라별로 해결 과제도 제각각인 자문위원들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까? 어떤 사업이 좋을까? 이를 고민하다 시작한 일이 쿠바 한인 후손들을 위한 문화원 건립 사업이었습니다.”
오병문(52·왼쪽 사진) 민주평통 중미·카리브협의회장의 말이다. 쿠바는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대한민국의 미수교국가이자 북한의 혈맹국. 그런데 그런 ‘멀고 먼’ 나라에 100년 가까이 뿌리를 내려온 한인들의 핏줄이 남아 있다. 바로 20세기 초 애니깽 인부로 멕시코에 이민갔다가 1921년 쿠바로 이주한 한인 200여 명의 후손이다. 지금 이들 ‘한국계’는 현재 1200명에 달하며 그중 80명가량이 순수 한국인 혈통이다.
“쿠바가 적성국가여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지원과 관심을 받지 못한 이들 한인 후손을 돌보는 작업이야말로 민주평통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협의회 자문위원들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업이기도 하고요.”
그리하여 지난 2013년 광복절, 쿠바 한인문화원 건립의 뜻이 모아졌다. 그러나 사업을 펼쳐나가는 데는 어려움이 적잖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 정부로부터 문화원 건립 허가를 받는 데만 무려 8개월이 소요됐다. 백방으로 뛴 결과 쿠바 사회주의 혁명 사상가의 이름을 딴 ‘호세 마르티 문화원 한·쿠바 문화클럽’이라는 이름으로 건립 허가를 얻었다.
통일골든벨 활성화해 한글, 역사 교육 이바지할 터
어려움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한국으로부터의 정식 물품 수입이 불가능해 문화원을 채울 한국의 전통문화 아이템은 자문위원들이 한국을 드나들 때마다 개인 짐으로 싸들고 날라야 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14년 8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한인문화원이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조국을 북한이라고 생각했던 쿠바 한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박물관을 만들어주고, 혈연을 찾아주고, 환갑잔치를 해주었습니다. 보람과 감동을 함께 느낀 대역사였습니다.”
문화원 건립은 완료됐지만 자문위원들은 지금도 계속 문화원을 지원하고 있다. 미수교국이라는 이유로 정부나 국내 관련 단체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연간 5만 달러에 달하는 문화원 유지·보수비용을 자문위원들이 십시일반 모금해 충당하고 있는 것. “자문위원들의 헌신이 아니라면 해낼 수도 없었고, 유지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오 회장의 말이다.
오 회장이 멕시코에 처음 발을 디딘 건 18년 전의 일. 대기업 주재원으로 일한 것을 계기로 수 년 후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보안 관련 솔루션과 가구업, 홈쇼핑 등을 주 사업으로 하고 있는 그는 멕시코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 기업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3대 회장을 거쳐 현재는 멕시코한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일한 것은 지난 15기부터. 그 후 16기에 이어 17기까지 중미·카리브협의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가 중미·카리브협의회장으로 일하며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차세대 통일역군 육성이다. 앞으로 통일의 주역이 될 차세대들을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 교포사회에서도 착실히 키워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민주평통 14기에 처음 창립돼 아직 사업 경험이 일천한 ‘막내급’ 협의회임에도 지난해 3월 미주 지역 22개국이 참가하는 청년 콘퍼런스를 개최한 것은 그 같은 의지의 결실이었다.
“차세대 통일교육은 앞으로도 힘을 기울여 펼쳐나갈 계획으로, 중미·카리브협의회 자체 청년 콘퍼런스나 포럼 등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 내 통일골든벨 대회를 좀 더 활성화해 교민 자녀들이 통일골든벨을 준비하면서 한글과 국사를 공부할 수 있도록 독려할 것입니다. 한글학교가 부족한 이 지역에서 민주평통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