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15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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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 이후 북한

북한 주민은 버틴다
그러나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 들어갈 것

2015년 김정은이 룡성기계련합기업소 ‘2월 11일 공장’을 방문했다고 보도한 노동신문. 안보리 제재가 장기화되면 외화 조달에 차질이 생겨 김정은은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북한 기업들도 정상화되지 못할 것이다.
<사진> 32015년 김정은이 룡성기계련합기업소 ‘2월 11일 공장’을 방문했다고 보도한 노동신문. 안보리 제재가 장기화되면 외화 조달에 차질이 생겨 김정은은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북한 기업들도 정상화되지 못할 것이다.

현재 북한의 쌀 가격 등 생필품 가격은 안정된 상태다. 1990년대와 같은 고난의 행군은 김정은 정권 혼자만 겪고, 북한 주민들은 시장이 있어 경제적 고통을 견뎌낼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이 올해 초 4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함에 따라 유엔 역사상 비군사적 조치로는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인 ‘안보리 결의 2270호’를 채택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 대북 제재 결의 2094호가 주로 핵이나 미사일과 관련한 금융, 운송 등에 제재를 취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이번 대북 제재는 촘촘하고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 일본, 한국은 독자적인 대북 제재조치를 발표했다. 미국의 대북 제재법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인권 탄압, 사이버 범죄와 관련해 북한을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개인도 처벌 대상으로 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해 북한의 일상적인 경제 활동과 이를 통한 북한의 돈줄을 차단하고 있다.

한국도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책임이 있는 북한의 개인 38명과 단체 24개, 북한을 우회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제3국의 개인 2명, 단체 6개를 포함해 개인 40명과 단체 30개를 금융 제재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들과 우리 국민 간의 외환 거래와 금융 거래를 금지하고 국내 자산을 동결하도록 했다. 또한 북한에 기항한 외국 선박은 180일 이내에 한국 항구에 입항할 수 없도록 했으며, 북한 물품이 제3국을 우회해 국내로 반입되지 못하도록 했다. 한국 국민과 재외동포들은 해외의 북한 식당 등 북한 관련 영리시설 이용을 자제하도록 했다.

이러한 대북 제재가 이행된 지 어언 두 달, 김정은 정권의 행태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북한은 대북 제재 결의 이후 중·단거리 미사일과 신형 방사포를 수차례 수십 발 발사하는 등 오히려 강경 모드로 나가고 있는데….

이는 벼랑 끝에 내몰려서 하는 강한 반발이기도 하지만, 김정은이 핵미사일 개발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국방공업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 수준을 더욱 높이며 군자리 혁명정신을 발휘하여 적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우리 식의 다양한 군사적 타격수단들을 더 많이 개발·생산하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정은이 강조하고 있는 군자리 정신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총성 없는 전쟁으로 간주하고 핵폭탄, 수소폭탄 개발·생산은 물론 모든 산업 부문에서도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핵·미사일 실험에 대한 의지는 전혀 변화가 없으며, 오히려 이른 시일 안에 완성도를 높이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북 제재 개시 후 ‘군자리 정신’ 강조하는 북한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은 어떨까. 북한 주민들에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북한 당국이 그 원인으로 미국의 경제 봉쇄를 귀가 아프도록 역설한 탓이다. 북한 당국은 미국이 하나밖에 없는 사회주의의 보루인 북한을 붕괴시키려고 경제 봉쇄를 했으니 허리띠를 조일 수밖에 없다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생활의 어려움’과 연관돼 바로 떠오르는 말이 바로 ‘미국의 경제 봉쇄’였다.

필자도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북한에서 경제난이 발생하고 배고픈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모두 미국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은 ‘대북 제재’라는 표현보다 ‘미국의 경제 봉쇄’라는 표현에 더 익숙하다. 북한 주민들은 미국의 경제 봉쇄가 1990년대부터 늘 지속되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아마 이번의 대북 제재도 그렇게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한 주민들이 왜 북한이 제재를 받고 있고 그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이 궁핍해지는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만약 북한 주민들이 그 원인이 김정일과 김정은을 위시한 북한 정권에 있음을 알게 된다면 사태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유의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해외에 있는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 사태 등 국외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사뭇 다르다. 4월 8일 통일부는 이들이 한국 TV와 드라마, 영화, 인터넷 등을 보며 한국의 실상과 북한 체제 선전 내용의 허구성을 알게 돼 탈북을 결심했다고 탈북 이유를 설명했다.

평남 안주의 장마당.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는 장마당이 없어 북한 주민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장마당이 있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에 빠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소리 방송<사진> 평남 안주의 장마당.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는 장마당이 없어 북한 주민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장마당이 있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에 빠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소리 방송

해외에서의 집단 탈북 이어질 것

이들의 집단 탈북에 대해 다른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대북 제재 전에는 볼 수 없던 집단 탈북 사태가 대북 제재 이후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그 어떤 이유이든 대북 제재와 별개의 문제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다양한 대북 제재로 북한이 해외에 만든 사업장을 폐업하게 되면, 외화 수입은 감소하고 외화 상납도 어려워진다. 폐업에 따른 회계감사를 하면 상납 과정에서 숨겨졌던 횡령 같은 비리가 드러날 수 있다. 이 문제가 심각해지면 갈등이 일어나고 상호 비난이 커지면서 제2, 제3의 집단 탈북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대북 제재는 북한 내의 주민보다 국외에서 생활하는 북한인들의 심리를 동요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당국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은 식량 가격을 비롯한 시장의 물가 변동이다. 대북 제재 이후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시장의 쌀 가격이 500원씩 오른다는 언론 보도가 있지만,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쌀값과 환율은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NK의 보도에 따르면 4월 1일 현재 북한 시장의 쌀 가격(1kg)은 4800~5100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5500원보다 다소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쌀 가격의 안정으로 달러나 위안화 환율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산 상품의 물자 반입량과 가격도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휘발유와 디젤유 가격은 1kg당 각각 1만500원, 6400원으로 약 3000원, 1000원가량 올랐다는 소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영농 준비로 농기계의 사용 증가와 6월부터 시작되는 오징어 조업을 위한 기름 사재기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필자는 북한 당국이 대북 제재로 원유 수입이 막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우려해 군부대, 기관·기업소의 휘발유 등 기름 유출을 통제하고 있어 그로부터 시장에 대한 기름 공급이 대폭 축소된 것이 휘발유 가격을 상승시킨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대북 제재에 따른 북한 내 민심 동요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점차 일부분에서 예상치 않은 사건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시장이 있어 북한은 버틴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지난 3월 말 북한의 조선중앙TV는 “혁명의 길은 멀고 험하다. 풀뿌리를 씹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또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의 공식 매체를 통한 고난의 행군 가능성 언급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북 제재로 북한에 또다시 지난 1990년대와 같은 고난의 행군이 발생한다는 것일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발생의 원인은 ▲사회주의 종주국인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통한 대규모의 외화 지출 ▲유례없는 자연재해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스템의 모순 ▲공식시장의 부재 ▲대북 경제 제재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보다 조건이 상당히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발생했던 중국과 구소련 등 주변국의 지원 감소 같은 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전혀 없다. 6·28 방침과 5·30 담화로 기업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생산·판매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돼 있다. 1989년 당시 북한의 수출액은 19억1000만 달러, 수입은 29억9000만 달러로 심각한 대외 무역적자를 기록했지만, 북한은 45억 달러라는 엄청난 경비를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위해 쏟아 부었다. 그러나 36년 만에 개최되는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는 그 정도의 외화를 탕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여 년 사이 북한의 시장은 상당한 성장을 했다. 외화가 부족해 발생하는 생필품 품귀를 시장이 해결해줄 정도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에는 이러한 시장이 없었다. 2009년의 화폐개혁으로 주민들은 주머니 자산을 잃었으나 시장 덕분에 수년 만에 이를 회복했다. 2013년부터 시장 물가는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북 제재로 일시적인 충격을 받을 수는 있으나 금세 회복돼 1990년대와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의 금융 제재와 대외 무역 금수 등으로 외화 수입이 감소해 ‘고난의 행군’을 피해갈 수 없다. 현재의 대북 제재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김정은 정권에는 큰 타격을 주는 ‘맞춤형 제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정은은 자신 앞에 닥친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 국제사회와 우리 국민들은 대북 제제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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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북한 정준택원산경제대학 졸업. 2002년 탈북. 동국대 북한학박사. 현재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저서 <푸코와 북한사회 신체왜소의 정치경제학>, <탈북 박사부부가 새롭게 쓴 논문작성법(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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