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트남 평화통일포럼
‘사돈의 나라’ 베트남에 울려 퍼진
한반도 통일의 노래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된 국가 중에서 최초로 통일을 이룬 베트남은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한 베트남이 대북 제재에 참여해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민주평통 상임위원) |
한때 분단국가로서 우리와 동병상련의 정서를 가진 베트남에서 울려 퍼진 통일의 노래는 더욱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4월 27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의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하노이지회와 베트남 사회과학한림원이 공동 주관하고 민주평통이 주최한 한·베트남 평화통일포럼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 위협으로 한반도 정세가 꽁꽁 얼어붙어 있는 상황에서 열려 관심을 끌었다.
‘베트남 통일 이후 민족 동질성 회복과 한반도 통일의 해법’이란 주제로 열린 포럼에는 우리 교민과 베트남 측 관계자들이 모여들어 200여 석의 자리가 빈 곳이 없을 정도였다. 교포 대학생과 청소년 등 통일 미래세대가 눈에 띄게 많이 참석했고, 이들의 베트남 친구들도 적잖이 참석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베트남 중앙당 예결위원인 부이녓꽝 베트남 사회과학한림원 부원장과 쩐꽝민 사회과학한림원 동북아연구소장을 비롯한 학계와 당의 고위 인사가 100명 가까이 참석해 포럼에 쏠린 관심을 반영했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이 후원한 포럼은 개회식과 기조연설에 이어 두 개의 주제로 나뉜 세션을 각각 진행한 뒤 종합정리 토론을 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북한 주민이 좋아하는 최고 가요는 ‘사랑의 미로’
‘한반도 통일을 위한 베트남의 역할’을 주제로 한 1세션 발제자로 나선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마치 행사에 참석한 교민 및 청소년들과 토크콘서트를 하는 듯한 친근한 진행으로 눈길을 끌었다. ‘한류가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를 발표한 강 교수는 “한국의 TV 드라마와 영화, 가요가 북한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민들을 변화시키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북한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요가 가수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라고 밝힌 뒤, 직접 노래 몇 소절을 불러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우리 공장 동무들 웃으며 말해요… 나를 준마처녀라고…’라는 가사의 북한 가요 ‘준마처녀’를 직접 소개하기도 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홍양호 전 통일부 차관의 사회로 진행된 1세션에서 베트남 측 발제자인 팜쥬이득 호치민국립정치연구소 문화발전원장은 “한국을 네 차례 방문했고 그때마다 한국인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과 노력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1975년 이전의 베트남 남북 간 사회문화적 차이’를 주제로 발표한 팜쥬이득 원장은 “베트남 통일이 이뤄진 1975년 이전 남북 베트남의 문화는 단순히 양측의 경제·사회·역사적인 전통이나 문화의 특징뿐 아니라 정치사상 부문에서도 상반된 특성을 지닌다”며 “특히 결정적으로 베트남 전쟁이라는 배경을 통해 서로 대립하는 사회문화적 차이점을 야기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은 결국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냉전이 국제정세 속에서 대항적 성질을 갖는 차이와 같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쩐꽝민 소장은 “북한은 상당히 보수적인 체제라 진보적인 사상이 외부에서 북한 사회로 진입해 모든 계층으로 널리 퍼지기 어렵다”며 “북한 주민들이 북한의 지도자로부터 일방적으로 선전선동 정보를 받고, 그에 따라 피동적으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쩐꽝민 소장은 “북한의 경우 외부로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외국의 발전된 경제, 정치,사회문화를 알리는 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북한과 같은 민족이고 언어와 문화 등이 매우 유사해 한국의 경제, 정치, 사회문화의 성과를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한반도 사회 통합에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강동완 교수의 발제에 공감을 나타냈다.
고성준 제주대 명예교수는 토론에서 “북한 주민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한류”라면서 “이는 최근 중국 내 북한 식당의 젊은 종업원들이 집단 탈출해 한국행을 택한 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미래는 북한 정권이 아닌 대한민국의 자유체제에 있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과거 한국 정부는 북한 당국과의 대화와 교류협력을 추진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듯하다”며 “아마도 북한 지도층이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 주민들을 향해 문화적으로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북한 내 한류의 흐름을 촉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고 교수는 “대북방송의 전파 배당 등 한류의 대북 확산을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종수 더불어민주당 통일전문위원은 토론에서 “한국 정부도 개성공단 폐쇄라는 강수를 어렵게 결정하는 등 대북 제재 국면에 있다”며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함께 대화를 통한 대북 접근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현 상황에서 대화를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제재 국면에서 전환이 이뤄지는 시점에 대비한 준비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세션이 끝나고 15분간 정도의 커피 브레이크를 겸한 휴식을 취하는 동안 행사장 앞 로비는 참석인사와 교민, 청소년 학생들이 몰려 북한 문제와 통일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2세션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한·베트남 협력 방안’이 주제였다.
베트남도 대북 제재에 공조
딘꿩하이 베트남 역사연구소장은 베트남 통일 과정에서의 남북 갈등 상황과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을 주제발표 형식으로 소개했다. 그는 “베트남은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이뤘고 완전한 영토를 회복했고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한 뒤 “하지만 오늘날 베트남의 남북 양측 간에는 여전히 차이점이 존재하며 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차이점을 지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양호 전 차관은 토론에서 “베트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생긴 분단국가 중에서 최초로 통일을 이룬 나라이며, 통일 이후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경제 수준이 향상되고 발전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베트남은 한반도의 안보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북핵, 미사일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적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한반도 평화 조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팜홍타이 사회과학한림원 동북아연구소 부소장은 “베트남의 일관된 입장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응원하고 핵과 미사일 도발의 전면적인 금지, 그리고 핵무기의 해체를 지지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의 행위는 유엔 안보리 규정을 위반한 행위이며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김정인 민주평통 하노이지회장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은 통일 준비라는 한국 정부의 노력을 무산시키고 유엔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했다”며 “북한 정권을 하루빨리 화해의 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베트남이 팔을 걷고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앞서 배정호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포럼 개회식 기조연설에서 “지금 한반도는 북한의 핵 위협으로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다행히 국제사회가 유례없이 강력한 제재 결의를 한목소리로 통과시키고 이를 빈틈없이 이행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면서 “이제 한국과 베트남이 북핵 해결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배 처장은 “베트남에 ‘인연이 있으면 천리 밖에서도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이웃에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며 “한·베트남 포럼은 양국의 우정과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만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돈의 나라, 돈독한 유대
유명식 민주평통 베트남협의회장은 축사에서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민주평통 베트남협의회 하노이지회가 한국과 베트남 양국 지식인들이 모인 가운데 평화통일을 위한 포럼을 연 것은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는 13만여 명의 우리 교민뿐 아니라 베트남 국민들에게 우리 대한민국의 열정 어린 평화통일 염원을 널리 전파하고 나아가 반드시 평화통일을 달성해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정인 하노이지회장은 개회사에서 “한·베트남 평화통일포럼을 계기로 현지에 진출한 교민과 기업, 특히 미래의 주역 2, 3세대 청소년들에게도 민주평화통일 의식을 고취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전대주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는 환영사에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을 해치고 있다”면서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이야말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은 연초부터 북핵 위기로 긴장감이 조성되면서 자칫 통일에 대한 열기가 식어버리고 통일 준비 노력에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취지에서 민주평통이 베트남 측과 협의해 공동 주관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열기와 한국과 베트남 측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들의 진지한 모습은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말을 실감나게 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무모한 도발로 냉랭해진 베트남의 대북 인식을 고위 인사들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점도 성과다. 베트남 측 참석자들은 김정은의 핵실험이나 공포정치에 대해 공개적이고 노골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문제가 있고, 이번에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데 동감을 표시했다. 지난 3월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에 베트남이 신속하게 동참하는 의지를 보여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를 ‘사돈의 나라’로 부른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다. 지난 1월 기준으로는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188만 명 중 베트남인은 13만 명 수준으로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한다. 베트남은 북한과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 개방을 주축으로 하는 도이모이 정책을 통해 시장친화적 정책을 추진했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한·베트남 양측의 참석 인사들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베트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대를 이뤘다. 또 유엔 안보리 결의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을 포함해 북한 김정은 정권의 셈법을 바꾸도록 만드는 노력이 한·베트남 두 나라의 친선관계는 물론 양국의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