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 중단 이후의 개성공단
점점 미약해져가는 재가동 가능성,
남북 경제 통합 위해 희망을 걸어본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대북 투자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10년 이상 진행돼온 개성공단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는데, 어떤 기업이 북한에 투자하려 하겠는가.
안정식 SBS 정치부 기자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로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선언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이후 역대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는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가 채택되고 한·미·일의 독자 대북 제재조치가 발표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수차례 동해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탄두를 탑재할 로켓의 대기권 재진입 실험, 고체연료 로켓 실험을 공개하는가 하면, 미국령 괌까지 타격할 수 있는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긴장이 완화되기는커녕 고조돼가는 지금 분위기로 볼 때, 개성공단 재가동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2월 10일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개성공단 재가동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 있다”며 “북한이 핵, 미사일 개발에 대한 우리와 국제사회의 우려를 해소하고 개성공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핵과 미사일 관련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재가동 여부를 논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통일부에서 개성공단을 담당하는 이상민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장도 “현 상황은 개성공단 재가동을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지금은 입주기업들의 피해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할 시기”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는 “재가동은 시간의 문제로 본다”며 “이르면 올해 안에, 늦어도 다음 정부까지는 재가동이 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인 정기섭 비대위원장도 “남북이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남북 간 교류협력을 하게 된다면 정치·군사적인 부문보다는 경제적인 부문에서 협력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개성공단처럼 우리한테 도움이 되는 사업도 없다”며 재가동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기업들은 공장 가동 중단으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
임시방편으로 대체 공단을 찾는다
일부 기업들이 세종시나 시흥시 등 다른 곳으로의 공장 이전을 검토하고, 4월 초 19개 입주기업들이 대체부지를 알아보기 위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과 함께 베트남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이 작업들이 개성공단을 포기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기업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재가동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인 만큼 긴 시간을 버텨야 하는데, 아무런 대체 활동 없이 기업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임시방편적인 사업을 알아보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이냐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124개 가운데 개성공단 생산 비중이 70% 이상인 업체는 72개사, 개성공단 생산 비중이 100%인 업체도 49개사라고 한다. 이는 상당수의 기업들이 개성공단 이외의 다른 생산공장을 통해서는 기업을 유지해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지금과 같은 가동 중단 상황이 길어지면 버티기 어렵다는 얘기다.
당장 매달 지급해야 하는 직원들의 임금도 상당하다.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과 휴업·휴직수당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정부 지원금만으로 월급을 충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기업주가 임금의 일정 부분을 부담해야 한다. 정부 지원은 6개월이 지나면 종료되니 6개월 후에는 임금 부담이 기업주의 몫으로 돌아온다. 수입은 없는데 임금 등 비용만 지출하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일부 단행한다 해도 상황이 장기화되면 뾰족한 답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기계들이 망가지는 것도 문제다. 북한의 추방조치에 따라 직원들이 급하게 쫓겨나오느라 공장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온 곳이 많고, 2013년 가동 중단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단전·단수조치까지 취해져 개성공단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기계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관리 없이 몇 개월씩 방치된 기계는 녹이 슬어 쓰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동 중단이 길어져 습기가 많은 장마철까지 지나게 되면 기계 손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동결에서 완전 청산으로 바꾼 북한의 결정
북한의 입장도 변수다. 북한은 3월 1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역에 있는 우리 측 자산을 완전히 청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2월 11일 우리 측 인원을 추방할 때까지만 해도 개성공단 자산을 동결한다고 했는데, 아예 모든 자산을 마음대로 처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북한의 이런 발표가 우리 정부의 독자 대북 제재에 대한 반발로 나왔다는 점에서 ‘화풀이’적 성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북한도 적어도 단기간 내에는 공단 재가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청산 선언 이후, 개성공단 내에 쌓여 있던 완제품들이 북한 장마당에서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고, 단둥이나 선양 같은 북·중 접경도시에도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완제품을 팔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북한 정권 차원의 조직적인 행위인지 일선 하부 단위에서의 돌출적 행위인지는 모르나, 개성공단에서 만든 완제품에 대한 청산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공장 기계들을 처분했다거나 공단 부지에 변형을 가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는데, 공단 가동 중단 상태가 길어지면 북한이 기계를 처분하거나 공장 자체에 대한 변형도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공단 재가동을 논의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조봉현 IBK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수 년 안에 공단이 재가동되지 않으면 북한이 공단을 아예 포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개성공단 불씨 되살려야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5만여 명의 근로자들 가운데 개성 주민들은 주변 농장으로, 개성 이외의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원래 거주지로 되돌아가 해당 지역의 농장과 기업소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단 재가동이 결정되면 이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이 끝내 재가동되는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좌초한다면, 남북 경협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이다. 10년 이상 진행돼온 사업도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는데, 앞으로 어떤 기업이 북한에 투자하려 하겠는가. 조봉현 수석연구위원은 “개성공단이 망가지면 향후 남북 경협은 단순 임가공 하청을 주는 것 외에는 논의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개성공단은 남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장기간 공동작업을 해온 ‘작은 통일의 현장’으로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모델이다. 남북의 경제력 격차가 현격해 통일 이후 많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은 남북이 통합 초기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동독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서독 노동자들에 비해 떨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동서독 화폐의 교환비율을 1 대 1로 정하고 일시에 경제를 통합해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했다. 동독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대폭 상승하고 동독 제품의 가격이 급등해 물건이 팔리지 않게 되면서 동독 기업들이 도산하고 이 때문에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양측의 경제력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경제 통합이 어떤 부작용을 초래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남북의 경제 통합이 일시에 이뤄지면 독일보다 훨씬 큰 부작용이 야기될 것이다. 남북 간 경제 격차는 동서독에 비할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경제권을 일정 기간 분리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경제 통합이 점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남북이 받는 충격이 최소화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남북이 지향해야 할 초기 경협 모델이 개성공단일 수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만큼, 경협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안보적 가치를 위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결정한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개성공단이라는 등불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재가동의 불씨가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개성공단은 경제적 의미로만 설명할 수 없는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