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15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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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 정상화, 가능한가?

북한 변화를 기다릴 게 아니라
변하도록 강제하라

2013년 3월 1501부대를 방문한 김정은. 1501부대는 무인기 등 첨단 군사장비 제작을 지휘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과 야전군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북한 정변 가능성은 결정된다.<사진> 2013년 3월 1501부대를 방문한 김정은. 1501부대는 무인기 등 첨단 군사장비 제작을 지휘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과 야전군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북한 정변 가능성은 결정된다.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견인하는 예방적 관여정책을 펴야 한다. 적극적으로 견인하는 것이다.
북한 인권을 거론하고, 북한에 외부 정보를 유입시키는 등 전방위적 노력을 해야 한다.


김정일이 급사했을 때 북한의 권력 승계가 원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집권 5년 차를 넘기고 있으며, 36년 만에 북한 최대의 정치 행사인 7차 당대회를 치르려 한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3,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대륙간탄도미사일 같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분석적인 시각으로 보면 김정은 정권의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성은 매우 낮다. 김정은 정권은 공안통치에 의존하고 있기에 정치적 측면에서 본 내구력은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은 집권 후 김정일 운구에 붙었던 핵심 8인 가운데 이영호 총참모장과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숙청했다.

이영호는 김정일 시대 야전군의 최고 실세였으며, 고모부인 장성택은 당과 행정부 전반을 아우르는 권력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김정은은 측근들에 대해 지속적인 숙청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야전군 세력인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을 처형하고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계급 강등과 복권을 반복하며 소위 ‘견장정치’를 하고 있다. 북한 야전군 최고위직 가운데 견장정치를 피해간 사람은 거의 없으며, 주요 보직에 대해서도 빈번한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견장정치로 나타난 김정은의 공안통치

이 같은 김정은의 통치 방식 이면에 공안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조연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얼마 전 당비서로 승진한 김영철 전 정찰총국장 등이 모두 공안세력이다. 이들은 김정은 집권 이후 자리를 유지하거나 승진했으며, 견장정치의 무풍지대에 머물고 있다. 총정치국장 황병서도 조직지도부 출신이며, 최근 실세로 떠오른 조용원도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다.

공안세력에 의존하는 공포정치는 자발적인 충성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취약하다. 김정은의 일방적 조치를 감수하고 있는 북한 야전군에서는 불만이 축적되고 있을 것이다. 야전군 엘리트층에서 불만이 축적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의 경제 상황도 역시 호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배급체제에서 장마당 경제로 전환함으로써 부분적인 효율성이 나타났고, 평양 등 일부 지역의 경제가 좋아졌지만 이는 착시현상이다. 대부분의 기층민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취약계층의 경우 오히려 생활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북·중관계 악화로 북한 교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북·중교역이 3년 연속 감소했다. 지난해 주요 외화 수입원인 철광석 수출은 67% 이상 급감했다. 핵무기 개발을 하는 와중에 평양에 물놀이장과 과학자거리 등 대규모 전시성 건설·토목공사에도 치중했기에 김정은 정권은 심각한 외화 부족과 재정 압박 상태에 놓여 있다. 따라서 김정은이 강조하고 있는 ‘애민정치’는 북한 주민들에겐 공허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실정이다.

과거와 달리 철저한 사회 통제도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 내 친지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북한으로 송금까지도 가능한 상황이다. 2015년 기준 북한 내 휴대전화는 350만 대를 상회하고 있어 통제를 하더라도 유사시 북한은 정보 확산을 막기 어렵다.

부정부패와 뇌물의 만연, 장마당을 기반으로 한 정경유착형 빈익빈 구조의 형성으로 ‘사회갈등 지형’도 형성되고 있다. 사적 영역에서는 김정은에 대한 비판과 그를 향한 비속어 사용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13명의 북한 해외 근로자가 집단탈북한 사안은 김정은 체제의 사회적 이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집권 5년 차 김정은 정권의 정치·경제·사회적 내구력은 이처럼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구소련·동유럽의 체제 전환과 중동 재스민 혁명의 공통점은 이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소련과 동구권이라는 거대한 사회주의 체제가 일거에 해체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들었으며, 중동의 경우에도 국제정치와 이슬람 문화의 특수성 때문에 체제 변혁을 위한 대중적 봉기 가능성은 점쳐지지 않았다.

2013년 5월 북한이 자체 개발했다는 스마트폰 ‘아리랑’ 제작 공장을 방문한 김정은. 아리랑은 중국의 저가 브랜드인 유니스코프 ‘U1201’을 복제한 것이다.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북한도 외부 정보 유입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사진> 2013년 5월 북한이 자체 개발했다는 스마트폰 ‘아리랑’ 제작 공장을 방문한 김정은. 아리랑은 중국의 저가 브랜드인 유니스코프 ‘U1201’을 복제한 것이다.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북한도 외부 정보 유입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밖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사회적 균열

두 사례는 모두 내적으로는 사회적 균열이 매우 심각한 상태로 진전돼 있었다는 특징이 있다. 구소련·동유럽 체제는 회생이 불가능한 구조적인 경기침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주민 대부분은 체제에 대해 신뢰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재스민 혁명이 진행된 나라들도 장기 독재와 심각한 경제난, 빈부 격차, 그리고 고실업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외부에서 관찰하기 어려운 사회적 균열이 심각하게 진행돼 있었는데 특정한 촉발 요인이 일어나자 급격한 정치 변동이 발생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김정은 정권 치하의 북한 역시 보이지 않는 사회적 균열이 상당 부분 진행돼 있을 개연성이 높다. 김정일은 강성대국의 도래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해 고난의 행군기로 대표되는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약속했던 강성대국은 도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김정은 정권은 다시 ‘제2의 고난의 행군기’와 극도의 내핍을 요구하는 ‘군자리 정신(6·25전쟁 때 전기가 끊기자 평안남도 강동군 군자리의 동굴에서는 맨손으로 벨트를 돌려 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한 정신)’까지 꺼내들고 있다.

사상 최강의 대북 제재와 남북관계의 전면 중단이라는 경색 국면에서 김정은 정권이 인민경제를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김정은이 연출하고 있는 ‘애민정치’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며 누적되는 주민들의 불만과 체제에 대한 내적 신뢰감 약화를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핵무장을 정권 수호의 보루로 인식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가 핵을 자발적으로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독재정권과 민주주의 체제 간의 합의형 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현재 북한의 독재정권이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기득권이 상실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정권 변화는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 된다.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리비아 등의 경우 독재정권이 급속하게 붕괴됐음에도 민주주의 체제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약한 정권’과 ‘약한 시민사회’는 이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이며, 정치적 혼란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체제 내 대안세력과 민주주의 요소가 발전돼 있지 않을 경우 혼란으로 야기되는 고비용 구조는 독재정권의 약화와 붕괴를 부를 수 있다.

사형을 선고받는 장성택. 공안통치는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는 불안한 근간이다.<사진> 사형을 선고받는 장성택. 공안통치는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는 불안한 근간이다.

‘예방적 관여정책’의 필요성

북한 역시 일제강점기와 유례없는 3대 세습이라는 독재 체제에 장기간 노출됐다는 점에서 자생적인 대안세력의 형성과 민주주의 요소의 발현에 한계가 있다. 이는 김정은 정권의 내구력이 약화된다고 해도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이 붕괴한다고 해도 새로운 독재 체제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며, 통일에 유리한 여건이 형성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북한 내의 민주화와 시장화, 인권 가치의 고양, 그리고 친통일 여건의 조성은 북한 비핵화와 통일의 전제이다. 그러나 압박정책만으로 북한 내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 내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적극적인 ‘예방적 관여정책’을 구사하는 것이다.

예방적 관여정책은 압박을 넘어 북한 내 긍정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견인하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 인도적 위기에 대한 무한 책임의 부담, 북한 내 변화세력의 형성을 위한 적극적 지원, 외부 정보의 유입과 난민에 대한 적극적 지원체제의 형성 등 북한 변화와 북한 주민의 신뢰감 형성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의미한다.

예방적 관여정책은 북한이 변화할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도록 강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존의 대북 포용정책과 압박정책은 모두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방관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과 체제의 정상화 가능성 타진이 아니라, 이를 유도하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과 관여를 위한 대안의 모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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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사회학 박사.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평가위원, 통일부 규제개혁심의위원, 통일연구원 남북협력연구센터 소장 역임. 현재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협의회 사무처장. 저서 <세계체제이론으로 본 북한의 미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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