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칼럼

북맹(北盲) 탈출이 먼저다

숙청됐다던 김원홍이 김일성 생일 행사에 나타나자 정부가 북한을 너무 모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별 한 개로 강등됐다던 김원홍 국가보위상이 다시 별 넷을 달고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수척한 모습을 보니 꽤나 고생한 것 같다는 추정 속에 아직 실상을 모르니 더 지켜보자는 통일부 해석이 고작이다.

통일의 미래를 보는 감각과 능력도 깜깜하기는 매한가지다. 흔히 통일되면 남북한이 하나로 어우러져 멋진 세상을 맞이할 것인 양 상상한다. 북한 교실에 남한 출신 어린이들이 북한 어린이들과 섞여 사이좋게 공부하는 모습을, 남한 교실에도 북한 출신 어린이들이 이주해와 반반씩 섞이는 미래를 곧잘 상상한다. 그러나 그런 미래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북한 교실에는 북한 출신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일 뿐 남한 아이들이 반반씩 섞여 교육받는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합의 통일이라는 말처럼 비현실적인 용어도 없다. 분단 이후 오랜 시간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전혀 다르게 살아온 이들이 매사 합의를 이룰 거라고 상상하는 것이 너무 한심하다. 2만8000여 개의 김일성 동상과 17만여 개의 김정일 좌상은 통일 후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명산마다 새겨져 있는 김씨 일가 우상화 바위 글씨는 어찌 복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북한의 상징을 없애는 일을 북한 주민들이 가만히 지켜볼 걸로 내다보는 그 상상력이 참으로 놀랍다.

북한 주민의 마음도 못 얻은 채 통일이 가능할 걸로 생각하는 통맹(統盲) 수준에서 우리는 통일을 얘기하고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꿈꿔왔다. 남남북녀라는 말도 안 되는 단어를 통일 얘기만 하면 꺼내들기도 하고, 북한의 노동과 우리의 자본과 기술을 합치면 멋있는 조합을 이룬다는 허망한 융합을 정부 수준에서 곧잘 내세웠다.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뭣을 기준으로 하는지도 검토하지 않았다. 당연히 우리 기준이 동질성 회복의 잣대라는, 다분히 우리 중심적 통일 상황을 전제해왔다. 이게 우리 통일 준비의 현주소다.

통일 공감대 형성도 북한을 알아야 가능하다. 북한의 실상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펼치는 통일 논의는 한마디로 공허 그 자체다. 지금까지 발표된 통일 비용 수치도 그냥 숫자에 불과할 정도로 의미가 없다. 어떤 상태에서 남과 북이 만나고, 그 호응도가 얼마인지가 통일 비용 산출에 절대적이고 결정적이다. 특히 통일 한반도의 미래 비전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통일 비용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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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수
서강대 정외과 교수
서강대 정치학 박사. 서강대 부총장,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북한연구학회 회장 역임. 현재 민주평통 통일정책분과위원장과 통일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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