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교역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북·중 경제무역 관련 박람회 모습.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교역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북·중 경제무역 관련 박람회 모습.

시장화, 북·중 경협으로 활발해진 경제
그러나 미래는 밝지 않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해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강력한 경제 제재를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곧 무너질 것으로 예상했던 북한 경제는 오히려 더 활성화되고 있다. 원인과 전망을 분석했다.

20여 년 전 ‘고난의 행군’ 시절과 비교해보면 오늘의 북한 경제는 신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당시 북한에선 대기근으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졌고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다. 북한이 그나마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일본, 중국, 남한 등으로부터 받은 대규모 원조 덕분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대외관계가 악화되면서 식량 원조는 크게 줄고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가 시작됐으며, 북·일 무역과 남북 교역이 연이어 중단됐다. 북한은 또다시 ‘고난의 행군’을 겪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후 북한 경제가 보인 행보는 일반적 전망과 크게 달랐다. 무엇보다 식량 사정이 뚜렷이 나아졌다. 예전에 두 끼만 먹다가 이제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된 사람이 많아졌다. 음식의 질도 좋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전국적으로 많은 시장이 생겨나고 거래 규모가 커졌다. 평양을 비롯한 여러 대도시에서는 건설 붐이 일어 새 아파트, 새 건물이 제법 많이 지어졌다. 공장, 광산, 발전소에 대한 투자도 꾸준히 진행됐다. 트럭, 버스, 승용차 등 각종 자동차도 크게 늘었다. 특히 이목을 끈 것은 휴대폰이 수백만 대 보급돼 북한에도 이동통신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평양의 백화점을 시찰하고 있다.김정은이 평양의 백화점을 시찰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원조도 거의 끊기고 제재까지 받고 있는데 오히려 경제 사정이 좋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정권이 개과천선해서 좋은 정책을 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들의 경제정책, 그들이 한 말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들여다보면, 여전히 구식 사회주의 정책, 즉 국영기업 중심의 자립경제 노선이 고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경제의 주된 회복 동력은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즉 정권이 아니라 주민에게서 나온 것이다. 흔히 말하는 북한 경제의 ‘시장화’가 바로 그것이다. 시장화라고 하면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유통업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유통만 활발해졌을 뿐 생산은 별 볼 일 없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화는 유통업만이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한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북한 주민, 강인한 생존력 발휘

북한 시장화의 출발점은 개인 농업이었다. 기근을 겪은 북한 주민들은 배급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식량을 구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스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농촌 주민은 말할 것도 없고 상당수 도시 주민도 어디든 땅이 있으면 개간해서 소토지 농사를 짓고 식용 가축을 기르게 되었다. 개인 농업은 주로 자가소비를 위한 것이었지만 점차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상업적 농업의 성격도 띠게 되었다. 식량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당국은 개인농업을 묵인하고 있고, 일부 토지에 대해서는 토지 사용료를 받으면서 사용권을 인정해주고 있다.

먹고살기 위한 북한 주민의 활동은 농업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부문에서도 나타났다. 가장 활발한 활동은 다름 아닌 개인 유통업(소매업과 도매업)이었다. 북한 전역으로 시장이 확산되어, 중국에서 들여온 각종 상품, 개인 농사로 생산된 농산물, 협동농장에서 빼돌려진 농산물, 개인들이 생산한 가공식품이나 공산품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시장의 발달로 상품 및 여객 운송에 대한 수요가 커지자 개인들이 트럭이나 버스를 사서 운수업을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음식업을 비롯한 개인 서비스업, 개인 어업이 출현한 데 이어 광업, 제조업, 건설업에서도 개인 사업가들이 등장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국영기업이나 국가기관의 이름을 빌려 사업을 하고 있으며 그 대신 해당 기관에 상납금을 바친다.

평양시내 결혼식 풍경.평양시내 결혼식 풍경.

아래에서 시작된 시장화는 위로도 확산되었다. 많은 국영기업과 국가기관이 시장 거래에 참여하고 개인 사업가들과 연계를 맺고 있다. 국영기업, 국가기관의 시장 참여는 대외무역을 계기로 한 경우가 많다. 국영 무역회사들이 수출품을 생산 및 조달하는 과정, 그리고 수입품을 내다 파는 과정에서 시장 및 사경제와 연결된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건설업이다. 특히 아파트 건설의 경우 사업 주체인 국영기업, 국가기관이 개인 사업가에게 건설과 판매를 위탁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농업, 어업, 광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 여타 부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다수 보고되고 있다. 사경제와 국영경제가 혼합되면서 국영경제가 사경제에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북한 정권은 시장과 사경제를 때로는 묵인·허용·장려하기도 하고 때로는 단속·억압·통제하기도 했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 지난 몇 년 동안은 유화적 태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공식적 및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시장과 사경제로부터 거둬들이는 재정 수입이 상당히 중요하고 국영기업, 국가기관 중에도 시장 및 사경제와의 거래에 의존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시장과 사경제에 편승하는 국영경제

북한의 경제 회복을 이끈 또 하나의 요인은 대외 경협 확대이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남북 경협 확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북·일 무역과 남북 교역이 중단되자 2011년 이후로는 북·중 무역이 북한 대외 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북·중 무역은 2000년대 초 이후 대체로 증가세를 보였으며, 2011년부터는 더욱 크게 증가했다. 중국 기업의 북한 투자도 많이 늘어났다.

북·중 경협 확대를 중국 정부의 북한 지원 정책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통념이 널리 퍼져 있지만, 대부분의 북·중 경협은 정치적 원조가 아니라 상업적 거래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2000년대에 중국의 경제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해외 자원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중국이 해외 자원시장의 큰손이 되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도 크게 올랐다. 중국발 자원 수요 증가와 가격 상승은 자원 수출국들에게 큰 호재가 되었는데, 북한도 그 혜택을 함께 입을 수 있었다.

북한의 대중국 광산물 수출은 2005년에는 2억 달러를 약간 넘는 정도에 불과했으나 2014년에는 20억 달러 가까운 수준으로 증가했다. 북한이 김정은 집권 이후 누린 경기 호황 중 상당 부분은 바로 자원 수출 호조 덕분이었다. 수출 증가로 획득한 외화로 각종 산업용 자재와 기계설비, 자동차, 휴대폰 등을 수입할 수 있었고, 이것이 다시 내부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진 것이다.

평양과 중국 선양을 오가는 고려항공 여성 승무원들.평양과 중국 선양을 오가는 고려항공 여성 승무원들.

그러나 2014년 정점을 지난 후 북한의 자원 수출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해외 자원에 대한 수요가 부진해졌고, 이에 따라 국제 원자재 가격도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6년 1월 4차 핵실험 이후 3월에 나온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에서 북한의 광산물 수출에 대해 제한 및 금지조치를 취함에 따라 북한의 수출 여건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예견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2016년 북한의 광산물 수출 및 전체 북·중 무역은 오히려 약간의 증가세를 보였는데, 이는 2270호에 규정된 민생용 예외조항 때문에 수출 제한조치가 제대로 집행되지 못한 탓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11월에 나온 유엔 안보리 결의 2321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생용 예외조항을 없애고 북한의 최대 외화벌이 품목인 석탄 수출에 연간 상한제를 적용했으며, 추가로 여러 광산물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또한 중국 정부는 2321호를 집행하기 위해 올 2월에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17년에는 북·중 무역이 크게 위축되면서 북한 경제 전반에 상당한 타격이 가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양대 성장요인 중 하나였던 대외 경협 여건이 크게 악화되면서 이제 북한은 시장화에 의지해 난관을 헤쳐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도 북한 시장과 사경제가 순조롭게 발전해 경제 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북한 시장화, 근본적 한계에 직면

근본적 문제는 북한의 시장화가 어디까지나 아래로부터 나타난 자생적이고 비공식적인 개혁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북한의 시장화를 중국의 개혁·개방과 비교해보면 그 한계가 분명하다. 중국의 개혁·개방도 처음에는 자생적이고 비공식적인 개혁이었지만 덩샤오핑을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의 승인과 지지를 얻어 공식적이고 전면적인 개혁으로 발전해나갔다. 무엇보다 중국에서는 이념 해방이 있었고 정치적 해빙까지 이뤄져 보통 사람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사경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중국의 사경제는 소규모 개인사업에 머물지 않고 수십, 수백, 수천 명을 고용하는 큰 규모의 기업으로 발전했다.

북한의 장마당은 북한 경제를 활성화하는 기능을 했다.북한의 장마당은 북한 경제를 활성화하는 기능을 했다.

이와 달리 북한의 신흥 개인사업가들은 여전히 정치적 위험에 노출돼 있고 사유재산권에 대한 보장도 불확실하다. 이 때문에 돈을 벌어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렵고, 따라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기업은 별로 출현하지 않고 있으며, 경제성장도 기껏해야 서비스 주도 저성장에 머물 뿐 제조업 주도 고도성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시장 및 사경제의 상당 부분이 북·중 무역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경제 제재는 시장화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 경제는 정권이 핵 및 미사일 개발 노선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진입하는 길을 선택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hoto

김 석 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경제학 박사. LG경제연구원 및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주요 연구 <북한 비공식 경제 성장요인 연구>, <북한 경제의 성장과 위기> 등

카카오톡 아이콘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스토리 아이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