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 간의 과거사와 영토 관련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런 문제로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지역안보 공조체제가 약화되거나 발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권태오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민주평통 주최로 4월 14일 일본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오사카 부본부에서 열린 ‘2017 한일 평화통일포럼’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권 사무처장은 한국과 일본은 현재 북한 핵·미사일이라는 공동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규정한 뒤 그 어느 때보다 대북, 대중 문제에 관해 상호 이해와 협력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 사무처장은 지난해 11월 체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토대로 ▲실시간 실질적인 군사정보 교류 ▲보호체계를 가동할 수 있는 연락단 상설 배치 ▲양국 군사연습 및 훈련 상호 개방과 참관 정례화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공격받을 경우에 대비한 통합 방어계획 수립 등을 제안했다. 권 사무처장은 이어 “한일 양국의 공조로 북한 핵·미사일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이룬다면 국방,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그 힘이 발휘될 것”이라며 “나아가 오랜 갈등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사무처장의 기조연설에 이어 제1세션 패널로 참석한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도쿠치 히데시 정책연구대학원대 수석연구원, 권태환 국방대 교수, 쓰야 히사시 NHK 해설위원은 ‘한일 간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에 큰 공감대를 표현했다. 이들은 북한 핵·미사일 도발로 동북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북 제재 방안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북한의 핵·미사일 억제와 국제 공조’를 주제로 열린 제1세션에서는 홍규덕 숙명여대(정치외교학)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한국 정부의 대북 억제 방안 미흡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강 부원장은 “북한 핵·미사일 능력 향상으로 위협이 고도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 부원장은 최근 몇 년간 북한이 감행한 미사일 시험발사 결과를 보면 미사일 개발 속도(사거리, 정확도, 연료 종류)가 예상보다 매우 빠르게 진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사일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대북 억제 방안에 대해서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북 억제전략의 목표는 북한의 도발을 예상하고 도발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추가 도발을 막는 것인데, 우리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체제가 구축돼 있지 않은 데다 예방적, 방어적 공격 능력이 매우 미흡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북한 지역을 24시간 실시간 감시하는 정보체계가 완벽하게 구축돼 있지 않아 한국 정부가 제시한 북핵 대비 3축 체제, 즉 선제공격형 방위 시스템(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 시스템(KMPR)과 같은 대응책으로는 대북 억제전략과 구도를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북 억제 방안과 관련해 “중국의 협조와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면서 “실질적으로 중국을 움직이게 할 방안으로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제재)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도쿠치 히데시 수석연구원은 미국 트럼프 정부와 북한의 관계를 통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진단했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는 트럼프 정부가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불투명하다”면서 “미국의 정책적 공백을 틈타 북한에 의한 예측 불허 사태가 일어날 위험성이 있는데, 미국이 조속히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세우고 한·미·일 3국 간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쿠치 수석연구원이 말하는 북핵에 대한 대응 기본은 외교, 제재, 억제의 적절한 조합이다. 그는 “북한에 대해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제재와 억제는 예전보다 더욱 필요하다”며 “특히 억제체제가 확고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안심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북 억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권태환 교수는 한일 양국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권 교수는 “미국과의 연합 방위체제를 안보의 기축으로 삼고 있는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북한의 급변사태나 한반도 도발 시 군사적 위협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북핵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에 확실히 각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쓰야 히사시 해설위원은 “미국 트럼프 정권은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그 선을 넘을 경우 트럼프 정권이 어떤 행동을 할지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운명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 일본 내에서 거론되는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현재 보유한 장비로도 타국 영토를 선제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면서 “만약 일본이 ‘적(敵) 기지 공격 능력’을 갖게 된다면 그 시비를 둘러싼 격론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적 기지 공격 능력이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조짐이 있을 때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순항미사일 등의 공격 무기를 뜻한다.
권태오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기조연설에서 “한국과 일본은 그 어느 때보다 대북 및 대중 문제에 관해 상호 이해와 협력을 증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추된 한국의 외교 신뢰 회복해야
이어진 제2세션에서는 ‘한일관계의 현재와 미래, 전환기 관리’를 주제로 이즈미 하지메 도쿄국제대 국제전략연구소 교수가 토론을 이끌었다. 첫 발제자로 등장한 기무라 칸 고베대 교수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한국의 진보 세력이 지금까지 가장 중시해온 것이지만 유엔의 엄격한 제재가 가해지는 가운데 한국이 단독으로 북한에 융화정책을 취한다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박근혜 정권이 소위 자유분방하고 활발한 외교정책을 취하면서 결국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외교적 선택지를 제한시켜버렸다”고 진단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13년 박근혜 정권 출범 당시 미·중 양국의 대립이 오늘날만큼 심각하지 않았지만 2014년 무렵 남중국해 문제로 미·중 간의 대립이 격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중국 중시 정책을 지속하면서 미국의 분노를 샀고, 미국이 중시하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외교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그 결과로 사드 배치와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북한이 핵·미사일 발사를 이어갔고 결국 한국 정부는 주변국의 압력을 받아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게 됐다. 결국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자국 외교를 위한 카드를 잃었다는 것이 기무라 교수의 평가다.
그는 또 한국 차기 정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박근혜 정권 때 실추된 한국 외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자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선택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은 한일 정치권 간의 ‘역사 과민’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정치권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재개정을 주장할 경우 일본은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위반했다며 공세를 펼치는 등 논란이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바람직한 한일관계 개선 방안으로는 ‘제3기 역사공동위원회 발족’을 꼽았다. 진 소장은 “한일 공동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교육과 언론이 활용해 양국이 역사적으로 화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노인 문제나 복지 문제 등 한일 양국의 공통된 사회문제에 대해 협력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포럼 후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포럼 후 다과회를 하며 환담을 나눈 참석자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준학 민주평통 여론분석과장, 김성대 16기 근기협의회장, 최철호 오사카총영사관 영사,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권태환 국방대 교수, 이용권 근기협의회 상임위원, 김민석 중앙일보 논설위원, 쓰야 히사시 NHK 해설위원, 토쿠치 히데시 정책연구대학원대 수석연구원, 허근일 민단 중앙본부 부단장,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 정현권 민단 오사카부 본부단장, 오공태 일본 부의장, 권태오 민주평통 사무처장, 권오일 17기 근기협의회장, 이즈미 하지메 도쿄국제대 교수,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 기무라 칸 고베대 교수, 히라이와 순지 나고야남산대 교수.
대북 및 대중 대비 차원서 한일 협력 필요
토론자로 참석한 히라이와 순지 나고야남산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는 “가능성은 낮지만 미국이 북한과의 교섭에 응하지 않도록 하려면 미국 측에 한일의 입장을 알리는 등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민석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단순히 북한 도발을 대비하는 차원일 뿐 아니라 중국의 군사력 확장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한일 양국의 생명선인 해상수송로가 지나가는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군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며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향력 확대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중국이 보유한 250여 개 핵무기 중 150여 개가 탄도미사일에 장착돼 있어 이에 대한 한일 공조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게 김 논설위원의 주장이었다.
한편 재일동포의 수도 오사카에서 열린 이번 포럼에는 한자리에서 만나기 힘든 한일 학계 및 정계, 언론계 전문가들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개회사를 맡은 권오일 민주평통 일본 긴키협의회장은 “이번 포럼은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일 간 국가 안보를 포함한 다방면에서 논의가 이뤄져 시의적절한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오공태 민주평통 일본부의장도 축사를 통해 “이번 포럼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한일관계가 개선되는 데 일조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