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영 서울대 의과대학 통일의학센터 소장 |
남북한 보건의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남한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의료제도를 갖추고 있는 반면, 북한은 국가가 의료비 전액을 부담하는 무상의료를 제도화했다. 무상 의료는 예방의학, 의사담당구역제(호담당구역제)와 함께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자리 잡았으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북한의 경제난이 확산됨에 따라 무상 의료체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국가가 제공하지 못하는 의약품을 장마당과 같은 비공식 시장을 통해 구입하는 상황이며, 북한의 의약품 공급체계는 이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강점인 무상 의료가 북한 보건의료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북한의 의료전달체계는 1~4차로 구성돼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차 의료기관인 리 및 종합 진료소는 6263개로 전체 의료기관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평양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의 의료기관은 식수와 전기 공급 부족으로 원활한 예방 및 치료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의사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진료시간 외에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하는 등 의료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의료체계는 1차 의료와 정성의학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환경이 개선된다면 언제든지 정상적인 의료 서비스 전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보건의료 교류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
북한 보건성과 WHO에 따르면 북한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3.47명으로 남한(2.26명)보다 더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는 의학대학이 아닌 의학전문학교의 3년 과정을 거쳐 양성되는 준의 인력을 포함하는 수치이기 때문에 타 국가와의 비교를 위해서는 해석에 유의해야 한다. 한편 간호사에 해당하는 북한의 간호원은 남한과 달리 간호원학교에서 6개월 또는 2년의 단기 과정을 통해 양성된다. 이러한 점으로 미뤄봤을 때, 북한의 의료 인력은 타 국가에 비해 양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지만 질적인 수준을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북한의 열악한 보건의료 현황은 북한 주민의 건강 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 2015년 북한 성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70.6세로 남한에 비해 11.7세 낮으며, 성인의 주요 사망 원인은 뇌혈관질환, 허혈성 심질환, 만성폐쇄성 폐질환 등 비감염성 질환이 꼽힌다. 또한 결핵과 B형간염 등 주요 감염성 질환 부담은 전 세계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은 결핵으로 인한 질병 부담이 높은 전 세계 30개국 중 하나이며, 2015년 인구 10만 명당 결핵 발생률이 561명으로 남한(101명)보다 약 5배 높다. 특히 북한 주민의 취약한 영양 상태와 무너진 의약품 공급체계는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결핵 퇴치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북한은 무상의료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한국과 국제의료단체의 지원이 없으면 의료보건체제가 무너질 정도로 열악하다.
남북한 통일에 대비해 우선되어야 할 점은 바로 이러한 남북 간 보건의료체계와 질병상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북한은 감염성 질환의 패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한은 바이러스성 질환이 주를 이루지만 북한은 남한의 1980년대 질병 패턴인 세균성 질환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한 질병 패턴 차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준비 없이 통일이 이뤄질 경우, 통일 한반도의 질병 대응에 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남북통일 이후 이미 오래전 퇴치된 감염성 질환이 재출현한다면 남한 주민들은 해당 질병에 대한 면역이 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당 질병의 치료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 또한 장기간 계속된 영양 결핍과 면역력 부족으로 남한에서는 흔한 바이러스 질환일지라도 쉽게 전파돼 많은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렇듯 남북한 보건의료체계 및 질병 패턴과 관련한 현황 파악과 실태 분석은 통일 이후 의료체계의 적합한 전략 수립과 대응책 강구를 위한 선행조건이다. 이를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남북한 교류협력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대북 보건의료 지원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나 정치적 갈등과는 무관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실시되어야 함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나 북한은 2004년 이후 지속적으로 인도적 지원에서 개발 지원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2008년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 탓에 남한 정부의 대북 지원은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 즉 ‘남북한 공동 보건의료 연구개발(R&D)’ 추진은 북한의 개발 지원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면서도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북한 보건의료 실태의 정확한 파악을 위한 준비 기반이면서 동시에 통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시의적절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른 시일 내에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의 문을 열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