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북한에서 유행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한국에서 최근 방영했거나 상영한 최신작들이 많다. ‘도깨비’, ‘별에서 온 그대’, ‘장옥정 사랑에 살다’, ‘해를 품은 달’, ‘태양의 후예’ 등이 대표적이다. ‘암살’, ‘내부자들’,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같은 영화도 북한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북한 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는 (한류 및 해외) 콘텐츠 가운데 하나는 성인영화라고 한다. 사회주의 도덕관에 억눌린 북한의 성문화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높아지고 있다. 2015년 미국 인터미디어가 탈북민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에서 본 남한 방송 프로그램에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 ‘1박2일’,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도 포함돼 있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같은 탈북민 출연 프로그램을 본 경우도 있었다.
30대 탈북 남성은 “북한에서 ‘경찰 특공대’를 봤는데, 경찰의 복장과 훈련 수준, 착용한 장비 등을 보고 놀랐다. 북한은 장비가 부족하다. 내가 근무한 곳은 방독면도 견습용 5개밖에 없었다”며 자연스럽게 남과 북의 격차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광고를 보는 주민들도 많다고 한다. 2013년 탈북한 이민영 씨는 “북한에 유입되는 한국 드라마는 영상 그대로 녹화되기 때문에 광고마저 그대로 나온다. 자본주의 문화를 처음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같은 해 탈북한 박홍식 씨는 “북한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데, 남한 광고를 보면 먹음직스러운 음식 선전이 꽤 많다. 어릴 때부터 남한이 못산다고 배웠는데, 드라마 CD 등에서 광고를 보고 편견이 깨졌다. 북한에서 남한 광고를 보고 탈북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고 증언했다.
탈북민들은 북한 주민이 즐겨 듣거나 부르는 한국의 대중가요는 셀 수 없이 많다고 말한다. 한 30대 탈북 여성은 “북한에서 불렀던 한국 가요가 수백 곡이었는데, 특히 ‘무조건’은 농촌 동원을 나가 저녁에 오락회를 할 때, 남학생들이 목이 터져라 부르며 춤추고 놀았던 노래라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도깨비’, ‘태양의 후예’ 인기
북한 10대 청소년들은 SES, 핑클과 같은 과거 걸그룹은 물론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K-팝이나 드라마 OST도 즐겨 듣는다고 한다. 청진 출신의 한 20대 탈북 여성은 “북한에서 마을 오빠들이 춤을 추며 ‘오빠는 청진 스타일’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강남 스타일’을 개사한 노래였다”고 말했다. 2015년 중국의 한 무역업자는 사업차 중국을 방문한 북한 무역업자들과 노래방에 갔는데, 북한 무역업자가 장윤정의 ‘초혼(드라마 이산 OST)’을 불러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 2, 3년 동안 북한에서 나오는 소식통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한국 드라마나 영화, 노래 등을 타고 한국의 생활 모습이 북한 주민의 생활을 바꾸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호밀빵과 초코머핀을 일부러 구해 먹는 북한 주민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국영기업에서 각종 빵과 제과 생산을 늘리기도 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그러나 북한의 돈주(신흥 부유층)와 무역 일꾼, 간부들은 북한산 빵을 사먹지 않고 백화점이나 일부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한국산 빵을 사먹거나, 중국에 나가는 무역 일꾼을 통해 한국산 빵을 구해 먹는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쿠쿠’ 전기밥솥은 북한 주민의 대표적 혼수품이 됐다. 이 때문에 쿠쿠 전기밥솥의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평안남도 평성시장에서 한국산 쿠쿠 밥솥은 북한돈 24만8000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중국산 전기밥솥은 상품이 17만5000원, 하품이 8만1000원 정도에 판매된다. 북한산 알루미늄 밥솥은 7만 원에서 16만 원짜리까지 있다. 밀수하다 압수된 물품에 한국산 밥솥이 적지 않다.
한국 드라마 영향으로 호밀빵을 즐기는 북한 주민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북한 주민도 늘고 있다고 한다. 2010년대 이후 동서식품의 ‘맥심’을 마시는 북한 주민이 크게 늘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중간급 간부와 돈주들 사이에서는 한국산 소주 ‘참이슬’이 기념 파티 선물로 이용되고 있다는 증언도 있다. 북한에 확산되고 있는 한류가 북한 주민의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한류는 북한의 주거 생활도 바꾸어놓고 있다. 부유층을 중심으로 한국식으로 살림집(아파트) 내부 구조를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의 북한 통신원은 “최근 평양은 물론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 내부 구조를 한국식 부엌과 전실(거실)을 갖춘 구조로 바꾸고 있다”고 전해왔다. 비용은 6000달러 정도인데, 공사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호텔인 이른바 ‘특각’ 건설부대인 1여단(최고사령부 직속부대)과 8총국(인민보안성 소속) 건설부대가 동원되기도 한다.
내부 인테리어 공사는 한국에서 들여온 아파트나 빌라의 카탈로그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 내부 구조는 처음부터 한국식으로 짓는 경우도 많다. 데일리NK 평양 소식통은 “평양, 신의주 등 대도시에서 최근 건설되고 있는 아파트나 주택은 기존 국가에 의해 건설된 주택과 달리 창문과 출입문 등 내부 구조가 한국의 주택 구조와 비슷하다. 베란다 창문이 통유리로 되어 있으며, 커다란 거실과 방문턱이 없고 주방 구조는 싱크대 설치가 기본”이라고 전했다.
헤어스타일, 아파트 인테리어까지 영향
한국산 건축 자재로 집을 짓는 사람도 늘고 있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최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주택 내부 장식을 위한 한국 자재와 설비 수요가 늘면서 시장 돈주들은 중국에 직접 주문해 한국산 자재와 설비를 수입하고 있다”며 “한국 상품 수입 자체가 위법이기 때문에 한국 상표를 떼고 중국제로 위장해 수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수입되는 한국산 자재 중 도배지 비중이 높다. 고급 아파트에 쓰는 최상의 도배지는 질과 색상이 좋은 한국산 ‘뽕’ 도배지가 가장 많이 수입되고 있다”면서 “한국산 도배지는 중국에서 컨테이너로 신의주 세관으로 수입돼 평양, 신의주 등 대도시로 유통된다”고 설명했다. 한류가 북한 주민의 주거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아파트 내부 구조가 한국식으로 바뀌고 있다.
북한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최근에는 사업차 중국을 방문한 평양 돈주 여성들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헤어숍에서 파마를 하는 등 한국 문화를 즐기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대북 소식통은 최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상품 수입 목적으로 중국에 출장 온 평양시 상점 책임자와 지방 돈주 여성들이 귀국 전에 꼭 현지 헤어숍에 들른다”면서 “사장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다른 경계심 없이 찾아와 파마를 한다”고 전했다. 데일리NK 평안북도 소식통도 “한국 문화가 유행하면서 단체 머리 모양이 사라지고 있으며, 기혼이든 미혼이든 본인이 원하는 신식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깥세상 보는 ‘창문’ 역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인기를 끌던 시기에는 ‘전지현식 화장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은 “거의 모든 장마당에서 한국의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한 대부분의 화장품들이 누구나 돈만 내면 살 수 있을 정도로 거래됐다”고 말했다. 북한 세관도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글자만 지우면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기도 한다.
몇 년 전 탈북한 30대 여성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큰 눈이 부러워 북한의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쌍꺼풀 수술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류를 통해 남과 북의 문화와 의식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 혁명가요와 북한 최고지도자의 우상화 영화를 보는 대신 한국의 드라마와 노래를 들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가 줄고 있고, 한국 사회에 대한 북한 주민의 잘못된 인식도 깨지고 있다. 한류가 통일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별에서 온 그대’ 영향으로 전지현식 화장법이 북한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북한에서 200일 전투가 한창이던 시점에 평안남도 소식통은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당국이) 200일 전투를 빌미로 주민들을 숨 돌릴 짬도 없이 몰아붙이는 바람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여가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퇴근 후에는 한국 가요를 듣거나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피로를 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드라마와 노래가 북한 주민의 고단한 생활을 위로하고 있고, 고립된 그들이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창문’이 되고 있다.
북한 주민이 좀 더 많은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를 가능한 한 빨리, 더 좋은 화질과 음질로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북한 주민이 좀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 북한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를 놓고 북한 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북한 주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증진하고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이다.

이 광 백
통일미디어 대표
원광대 법과대학 중퇴,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졸업. 자유조선방송 대표, 계간 시대정신 편집장 역임. 시민행동21 지방자치센터 소장, 현 통일미디어(국민통일방송 데일리NK)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