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2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제8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등에 7명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북한의 동계아시아경기대회 참가는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지난 4월 1일 북한은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단을 한국에 전격 파견했다. 남북한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실험과 핵 위협으로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와중에 방한한 것이다. 선수 20명과 임원 10명으로 구성된 북한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중국 베이징을 거쳐 입국한 뒤 강릉으로 이동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테스트 이벤트로 열린 이 대회는 개최국인 한국, 북한, 영국, 슬로베니아, 네덜란드, 호주 등 6개국이 참가해 풀리그로 진행됐다.
4월 2일엔 우리 여자축구 대표팀이 평양에서 열린 2018 아시안컵 예선 B조 경기 참가를 위해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을 방문했다. 남한 축구 대표팀이 방북 경기를 치른 것은 27년 만이다. 1990년 10월 11일 우리 대표팀이 평양에서 북한과 남북 통일축구 친선 경기를 펼친 바 있다.
그 이후로도 2010 남아공월드컵 출전을 위한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 남자축구 대표팀이 북한과 같은 조로 2008년 평양에서 경기를 할 기회가 있었으나,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 등을 문제 삼은 북한의 거부로 제3국인 중국 상하이에서 원정 경기를 가졌다. 2015년 8월엔 경기·강원팀과 임원 80여 명이 평양에서 열린 유소년축구대회 참가를 위해 방북한 바 있다.
평양에 울려퍼진 애국가와 태극기 게양
2017년 4월 5일은 남북 스포츠 교류사에 남을 역사적인 날이라 하겠다. 이날 오후 6시 23분 평양 한복판에 있는 김일성경기장에 한국 여자축구 윤덕여 감독과 선수들이 입장하면서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주됐다. 김일성경기장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주된 것은 사상 최초였다.
평양에서 애국가가 처음 연주된 것은 2013년 9월 세계역도대회로, 그동안 북한은 평양에서 남한의 국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주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남북 대결의 경우 제3의 장소에서 열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시아축구연맹이 대회 유치 조건으로 국가 연주 및 국기 게양과 관련한 국제경기 관례 준수를 북한에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수용했기에 가능했다.
그로부터 불과 22분 후, 강릉 아이스하키센터에선 인공기가 게양되며 북한 국가가 울려 퍼졌다. 2연패 중이던 북한은 이날 영국과의 경기에서 서든데스로 진행된 연장전에서 득점하며 3-2로 승리한 것. 승리 국가의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연주하는 관례에 따라 인공기를 게양하고 북한 국가가 연주된 것이다. 이날 새벽 북한은 함경남도에서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스포츠 경기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4월 6일 또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날이다. 이날은 1896년 1회 아테네올림픽 개최일이자 2013년 유엔이 스포츠를 통한 개발과 평화를 도모하자는 뜻에서 지정한 ‘국제 스포츠 평화의 날’이기도 하다. 그러한 의미에 부합하듯 강릉하키센터에서 사상 여섯 번째로 아이스하키 남북 대결이 벌어졌다. 응원전 또한 관심사였다.
평양 김일성경기장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지난 2월 중국에서 이창복 남북공동응원단 단장과 북한의 박명철 6·15 공동선언실천북측위원회 위원장이 만나 남북 체육 교류 시 상호 간에 공동 응원을 하기로 합의했던 대로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와 강원본부 등이 북한 대표팀을 위한 ‘남북공동응원단’을 구성했다. 대신 평양에서 열리는 ‘2018 여자아시안컵축구대회’ 예선에 참가하는 남한 선수들을 북측 공동응원단이 응원하기로 했던 터였다.
강릉에서 열린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대결에서 1000여 명의 공동응원단이 하늘색 한반도기가 새겨진 티셔츠 차림으로 한반도 깃발을 들고 북한 선수들을 응원했다. 6000여 명의 관중은 경기 후 3-0으로 승리한 한국 선수뿐 아니라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 북한 선수들에게도 큰 박수를 보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르네 파젤 회장은 경기를 참관한 후 남북한 선수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은 선수들에게 ‘스포츠 평화의 날’을 기념하는 ‘Peace and Sports’라고 쓰인 엽서를 선물했다.
7일엔 평양에서 한국 여자축구팀이 강호 북한 팀과 경기를 가졌다. 절대 열세이고 홈경기인 북한과의 대결은 한국 대표팀에겐 큰 부담이었다. 여자 대표팀은 남자 대표팀에 비해 지원도 열악하고 국내 방송사가 중계권을 구매하지 않아 중계도 되지 않았지만 선수들 전원이 투혼을 다한 결과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어 11일에는 우즈베키스탄전에서 4-0으로 승리하며 아시아 본선 티켓을 따내고 13일 귀국했다.
한편 8일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팀도 네덜란드전에서 2-0으로 승리함으로써 5전 전승을 거두고 사상 첫 세계선수권 3부 리그로 승격됐다. 북한도 슬로베니아와의 경기에서 4-2로 승리함으로써 2승 3패로 5부 리그로의 강등을 면했다. 경기 후 북한 선수들은 공동응원단을 향해 두 손을 크게 흔들며 답례했다.
평양에서 열린 여자축구 남북 대결.
승리 팀인 북한 국가가 연주된 뒤 북한 선수들은 경기장을 바로 빠져나가지 않고 인공기를 높이 든 주장 김금복과 려성희를 선두로 링크를 한 바퀴 돌며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드러냈다. 한호철 북한 대표팀 매니저는 “여러분 모두의 응원에 힘을 받아서 선수들이 경기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기도 했다. 남북공동응원단의 열렬한 응원은 북한 선수들과 임원진에게 동포애를 느끼게 해준 계기였으리라 생각된다.
폐회식을 끝으로 북한 선수단은 강릉에서 펼쳐진 테스트 이벤트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9일 출국했고,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은 본선 진출권을 획득하고 13일 귀국했다.
한바탕 ‘스포츠 축제’는 끝났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이뤄진 이번 남북 교차방문 스포츠 교류를 해부해보고자 한다.
꽉 막힌 남북관계를 해소하기에 스포츠만큼 확실한 매개체는 없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실로 오랜만에 이뤄진 남북 교류였다. 국제대회 참가를 위한 선수단 교차방문 형식으로 이뤄진 교류이긴 했지만 이번 교류가 향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변수로 작용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정부는 남북의 교차방문 교류에 대해 미리 예정된 국제 스포츠 행사이고 국제 관례에 따라 북쪽 선수단의 방남과 우리 선수단의 방북을 승인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이번 교차방문 교류는 남북이 직접 접촉하지 않고 각각 대회를 주관한 국제아이스하키연맹과 아시아축구연맹을 통해 선수단 방문 통보와 신변안전 보장 등의 절차가 진행돼 이루어졌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기대
북한의 정치적 의도 여부에 초점을 맞추지 말자. 남북 상호 방문 스포츠 교류가 성사됨으로써 또 다른 교류도 기대해볼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준 긍정적인 효과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그동안 있었던 남북 스포츠 교류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스포츠 교류의 확대 가능성과 효율적 성과는 정치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 그럼에도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과 이를 위한 접촉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스포츠 고유의 순수성에 있다.
이제까지 남북 상호 간의 스포츠 교류협력이 남북관계 경색 국면 타개를 위한 선제적 역할을 해온 것처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 스포츠를 통한 교류와 협력이 재개돼야 한다.
강릉 빙상경기장에 인공기가 게양되고 있다.
남북한의 교류는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성사 여부가 정해지는 한계점을 갖는다. 하지만 스포츠는 남북이 공동으로 참가하는 다양한 국제 대회가 세계 곳곳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이 기회와 환경을 제공해준다. 실제 그동안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은 주로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또한 스포츠를 통한 남북 교류협력은 상징적인 효과가 크다. 일례로 국제무대에서 최초의 남북 단일팀으로의 공동 입장 및 참가, 하얀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는 통일 민족의 상징성을 갖는다. 남북관계에 대한 국제 스포츠 조직의 관심과 지원도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의 유용성과 실현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비용실효적인 수단(Cost Effective Means)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해볼 만하다. 북한의 참가 자체만으로도 평창동계올림픽의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미국의 소리 방송(VOA)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리용선 조선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통일에 이바지되는 일인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이번에 온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단의 고위 관계자가 최문순 강원도지사에게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남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드는 북한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
2017년 2월 21일 삿포로 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긍정적으로 언급했고, 내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되는 제20회 국제태권도대회에 한국 선수를 초청하는 데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에 관한 남북 체육회담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새 정부도 비정치적인 스포츠 분야를 가교로 해서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줘야 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가 한반도 평화와 안녕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Powerful Lever)이라면, 남북 스포츠 교류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가장 비용실효적인 수단(Cost Effective Means)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남북 교차방문 스포츠 교류는 향후 여타 교류의 촉매제의 소임과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이다.
김 동 선
경기대 체육대학 스포츠경영학과 교수
한양대 체육학 석·박사. 민족통일체육연구원 부원장, 경기대 체육대학장 역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문화예술체육분과 위원 및 간사.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사회문화분과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