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아파트촌 사이에 위치한 카페 ‘카작 산곡점’은 탈북민 유진성(31) 씨가 누나 순애(37) 씨와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다. 2015년 겨울에 문을 연 이곳은 콘셉트의 변화를 여러 번 꾀하다 현재는 콘서트, 마술쇼, 학부모 모임 등이 열리는 동네 전용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북카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책장에 꽂힌 넉넉한 책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카페 슬로건이 ‘우리 동네 문화공간’이에요. 동네 주민들도 카작이란 이름보다 우리 동네 문화공간이라고 더 많이 불러주세요. 입시설명회는 기본이고 요즘처럼 새 학기가 시작되는 무렵엔 학부모 모임이 많이 열려요. 애초에 카페로 창업했지만 문화공간으로 바뀐 것이 오히려 더 잘된 것 같아요. 주민들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으니까요.”
지금은 주민들이 애용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지만 오픈 당시엔 텃세도 적지 않았다. 일부 주민들은 다짜고짜 찾아와 “카페 창문을 통해 우리 집이 들여다보이니 불편하다”며 영업 방해를 하기도 했다. 경찰까지 찾아왔을 만큼 골치를 썩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일도 잦아들었다. 유 씨의 적극적인 홍보와 진실성이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전단지도 돌리고, 아파트 게시판이나 온라인 블로그에 광고도 하고, 동네 상점 문도 일일이 두드리며 열심히 홍보했어요. 그러다 보니 조금씩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이 늘었죠. 지금은 그 손님들 대부분이 단골이 됐어요.”
탈북 남매가 운영하는 카페인 만큼 언론의 관심도 끊이지 않는다. 독일, 미국 등 해외 매체에서도 찾아올 정도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이런 말을 해주는 기자 분들도 있어요. ‘당신들이 (남한 사회에서) 정말 좋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요. 그럴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는 보람을 느껴요.” 현재 ‘카작 산곡점’은 프랜차이즈 분점의 꼬리표를 떼고 유 씨 남매의 독립적인 사업장으로 바뀌었다. 유 씨는 카페 한쪽에 마련된 작은 사무실을 이용해 중국을 상대로 한 작은 유통업(비즈삼퍼센트)도 겸하고 있다.
“남한 사회에서 탈북민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대중국 무역을 떠올렸어요. 북한에 살 때 중국을 오갈 일이 많았기 때문에 중국말에 익숙한 편이거든요. 한국에서도 틈틈이 중국을 오가며 거래망을 개척했고, 지금은 중국 바이어들을 상대로 화장품과 의류 등의 제품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유진성 씨가 민주평통 강남구지회에서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탈북 청년’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편견과 차별은 걸러 듣고, 당당히 자기 몫 찾아 나서야
유 씨의 성공적인 창업은 발로 뛴 준비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탈북 2년 만인 2011년 세종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유 씨는 정부 및 교육기관에서 주최하는 창업 아카데미를 찾아다니며 창업 기회를 모색했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창업 아카데미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고려대가 주최하고 JP모건이 후원하는 ‘탈북민 창업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해당 프로그램을 수료한 뒤 1000만 원 정도를 지원받아 카페를 창업했어요.”
유 씨는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을 떠올리며 “얻은 게 참 많다”고 강조했다. 북한에서 이미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남한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학사과정만 두 번 밟았다.
“탈북 초기에 북한에서 공대생이었던 이력을 살려 한 대기업에 취직했어요. 당시 자동차 공법 설계 일을 했는데, 같이 일하는 분들의 스펙이 워낙 대단한 데다 텃세도 심해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죠. 결국 제가 (남한 사회에서) 경쟁력을 쌓을 수 있는 분야가 뭔지 찾기 위해 두 번째 대학 진학을 결심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남한에서의 첫 대학 생활은 말 그대로 ‘문화 충격’이었다.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열린 자세는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전까지 대기업과 공사장 막일을 하며 탈북민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확인했어요. 여기는 내 땅이고 너는 이방인이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식의 말들도 많이 들었죠. 그런데 젊은 친구들은 달랐어요. 탈북민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었죠. 거기서 희망을 발견했어요. 여기서도 내 갈 길을 찾을 수 있겠다, 하는 확신이 생겼죠. 그때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까지도 고향의 죽마고우 못지않게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올해로 탈북 9년째를 맞은 유 씨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정착 초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마음에 한층 여유가 생겼다고 말한다.
“전에는 탈북민에 대한 편견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편견은 못 가진 사람들이 자기보다 약자인 사람들을 찔러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거든요. 오히려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안됐다고 생각해요.”
유 씨는 탈북민이 정착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로 사상의 차이를 언급했다. 이 때문에 남한 사회에 적응하려면 본인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탈북민들은 유일사상 체제하에서 수십 년을 세뇌당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목소리 하나하나에 완벽하게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있죠. 물론 기본적인 부분들은 맞춰가야 하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맞추려고 하면 본인만 힘들어져요. 탈북민을 향한 일부 차별적 발언이나 편견은 적당히 걸러 듣고, 빨리 자기 몫을 찾아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