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했다. 적폐를 청산하는 것, 즉 비정상의 정상화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최대 당면 과제일 것이다.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은 비단 대내적 차원만이 아니다. 오히려 대외적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난마처럼 얽힌 외교안보 사안을 임기 초반에 말끔히 해결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안보 위기와 외교 절벽, 북핵 위기와 남북관계 파탄이라는 비정상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정상 상태로 돌려놓기는 욕심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대북정책이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야 할 영역이다. 이미 남북관계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기능주의적 낙관론의 마지막 보루였던 개성공단 폐쇄라는 엄연한 현실은 앞으로의 남북관계 정상화 여정이 녹록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단선적으로 결심돼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노무현 정부로의 무조건적인 기계적 복귀여서는 안 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이지만 그렇다고 10년 전의 노무현 정부 2기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시장 통합과 경제공동체까지를 염두에 둔 한반도 평화협력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이 과거로 무조건 되돌아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강경과 원칙’에서 ‘포용과 유연함’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곧 노무현 정부로의 기계적 복귀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부 당시의 한반도 상황과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북핵 상황은 핵개발을 하는 북한이 아니라 이미 핵 보유국가 북한이 되어 있다.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가능할지에 대해 지금은 누구도 의심하는 상황이 되어 있다. 사드 문제로 한중관계는 절체절명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김정은 체제는 공포정치와 경제 상황 호전으로 남북대화에 과거와 같은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 국내 여론도 과거의 햇볕정책과 대북 지원을 무조건 지지만 하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안보 상황, 남북관계, 북한 내부와 우리 내부, 북핵 위기와 동북아 정세 등 모든 것이 노무현 정부 때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상황과 현실이 다른데 노무현 정부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대북정책으로 무조건 복귀하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 북핵 해결과 군사적 긴장 완화라는 정책 목표를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를 이루기 위해 정부는 2017년 지금의 한반도 현실에서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비서실장이라는 상속자 위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로의 기계적 복귀가 아니라, 2017년 한반도의 외교안보 현실에서 출발하는 문재인 정부 1기여야 한다. 과거와의 단절도, 과거로의 복귀도 아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새로운 대북정책의 진화여야 한다. 그 책임은 오롯이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다.
김 근 식
경남대 교수, 정치학
서울대 정치학 박사.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2007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등 역임. 현재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저서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2>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