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김일성이 태어난 생일(4월 15일)을 ‘태양절’이라 부르면서 ‘민족 최대 명절’로 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1962년부터 ‘4·15절’이라는 이름으로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가 1968년부터 법정 공휴일로 기념해왔다. 그러다가 1997년 김일성이 사망한 지 3년 뒤에는 ‘태양절’로 격상시켜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 각종 문화행사 등 국가적 차원에서 성대한 행사를 치르고 있다. 특히 북한은 5주년, 10주년 되는 ‘꺾어지는 해’를 중요하게 생각해 열병식과 같은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곤 했다.
열병식은 북한에서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띠고 있다. 열병식은 대내외에 군사력을 과시하는 군사적 의미를 넘어 주민들을 하나로 결집하려는 의도를 가진 정치 행사이다.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 이후 지금까지 올해를 포함해 다섯 번(2012년 1회, 2013년 2회, 2015년 1회, 2017년 1회)의 열병식이 열렸다. 정통성이 약한 김정은은 그때마다 자신의 통치력을 과시하거나 강화하기 위한 기회로 이용해 왔다.
지난 2012년에는 김일성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10만 이상의 군중을 동원하고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개최하면서 신형 무기를 과시하고 빨치산 군복의 기마부대를 동원해 김일성 빨치산 부대를 연상케 하는 ‘쇼’를 벌였다. 김일성 시대의 향수를 자극해 세습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0월 이후 처음 실시하는 올해 태양절 열병식은 그 어느 해보다 의미가 각별했다. 무엇보다 김일성의 105번째 생일로서 김정은 집권 5년 차를 맞는 ‘꺾어지는 해’인 데다 태양절을 기해서 주민 결집과 체제 결속을 다지기 위해 핵실험과 같은 ‘축포’를 쏘아 올릴 것으로 전망돼왔기 때문이다. 이미 4월 초부터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6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돼왔던 터였다.
태양절 열병식을 지켜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모습을 담은 북한 노동신문 4월 6일자 1면.
열병식에 주민·군인 등 20만 명 동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실험을 막기 위해 군사 공격을 위협했고 중국마저 대북 압박에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강 대 강의 대결’을 택할지, 아니면 정세 악화를 피하기 위해 어떤 출구전략을 택할지에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됐다. 어떤 형태로건 국제사회에 과시적 군사 행동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가운데 북한이 이날 선택한 것은 열병식을 통한 무력 과시였다. 북한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군사 대결도 불사한다는 의지를 과시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이목은 처음부터 북한이 열병식에서 어떤 전략무기들을 공개할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북한도 이번에는 아예 작정한 듯 열병식이 진행된 오전 10시부터 약 3시간 가까이 생중계하면서 국제사회를 상대로 대대적인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날 열병식 및 군중시위가 열린 김일성 광장에는 평양 주민과 군인 등 약 20만 명이 동원되었다. 군사 퍼레이드에는 약 2만2000명이 동원되었고 부대 정렬, 최용해 연설, 분열, 종대 행진, 해산 등이 총 3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열병식 행사가 벌어지는 3시간 내내 수십만의 북한 주민들은 꽃다발을 들고 ‘김일성’, ‘김정일’, ‘결사옹위’, ‘태양절’ 등 인간구호판을 만들어 분위기를 돋웠다. 이를 위해 주민들은 행사 석 달 전부터 일요일과 휴일도 없이 일과가 끝난 후 매일 저녁 김일성 광장에 모여 밤늦게까지 훈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열병식에는 22개 종류의 무기와 장비 169대가 선보였다. 지상무기는 전차·장갑차 종대, 포병 종대, 방사포 종대, 미사일 종대 순서로 공개했는데, 열병식 전반부에 주목할 만한 재래식 장비들이 대거 등장했다. 북한은 4연장 대함 미사일 발사차량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SA-16) 8연장 발사관을 탑재한 대공 장갑차를 처음 선보였으며, 신형 헬멧과 고글, 야시경 장비, 100발들이 신형 탄창, 신형 탄입대로 무장한 특수전 병력들이 열병식에 나온 것도 주목할 만했다.
이러한 주요 무기들을 선보임으로써 북한은 전략무기뿐만 아니라 재래식 장비도 현대화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이 과정에서 기계화부대 대열이 김일성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주력 전차 ‘선군호’ 1대가 연기를 내뿜으며 대열에서 이탈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으며, 열병식 미사일 중 하나는 탄두가 하늘 쪽으로 구부러져 있어서 가짜 미사일로 의심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대회 장면. 동원된 주민들이 노동당 상징 마크와 ‘결사옹위’의 인간구호판을 만들고 있다.
긴장된 정세 속에 진행된 북한의 열병식은 미국을 겨냥해 전략무기의 능력을 과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 때문에 기존에 대거 동원됐던 전차, 장갑차, 장사정포 등 재래식 전력의 비중이 대폭 감소되고 미국 공군력과 항공모함 전력에 대응할 수 있는 지대공, 지대함 무기가 등장했다. 또한 기존 열병식에 많이 등장했던 스커드와 KN-02 등 단거리 미사일 대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MB·북극성), 북극성-2형 탄도미사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열병식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에 등장한 신형 탄도미사일이었다. 이번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되는 미사일로 눈에 띄는 장비는 북극성(KN-11)과 북극성-2형(KN-15)이었다. 북극성은 2016년 8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사거리 2000km로 추정되는 SLBM이다. 올해 2월 12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던 북극성-2형 탄도미사일은 6대의 발사차량에 탑재돼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KN-15로 불리는 둥근 모양의 버섯머리 형태를 한 이 미사일은 SLBM인 북극성을 지상용으로 개조하면서 사거리를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콜드런칭(냉발사, 원통형 발사관에서 가스를 이용해 미사일을 밀어낸 후 공중에 띄워 점화하는 방식) 방식으로 발사하기 때문에 화염에 의한 피해가 거의 없어 발사대를 재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무한궤도 이동식 발사대차량에 탑재돼 있어 산악지대와 같은 야지 극복 능력이 탁월하며 고체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사 준비시간이 단축되고 노출 가능성이 적다. 우리의 방어체계에 치명적이라는 의미이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열병식 후미에 등장한 신형 ICBM이었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신형 ICBM 2종과 기존 KN-08 개량형 등 ICBM 3종을 열병식에서 공개했다. 이 중 2종은 원통형 발사관 형태로, 1종은 실물로 등장했다. 첫 번째 원통형 발사관으로 등장한 신형 ICBM은 차량 앞면에 ‘태백산’이라는 표시가 있는 바퀴축 7개의 대형 트레일러에 실려 나왔다. 두 번째 원통형 발사관 형태로 등장한 신형 ICBM은 기존의 KN-08과 동일한 8축 이동형 미사일 발사대에 탑재된 채 공개되었는데 그 길이가 20m 정도로 추정된다.
원통형 발사관 형태의 신형 ICBM 2종은 2012년과 2015년에 각각 공개된 KN-08과 KN-14보다 미사일 길이가 긴 것으로 추정되며, 외관상 각각 러시아의 최신형 ICBM인 토폴-M(SS-27)과 중국의 DF-31 미사일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사거리 1만 km급 수준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5월 15일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를 시험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지난 4월 15일 열병식 때 공개한 KN-08 개량형과 동일하다.
핵·미사일 고도화 보여주기 위한 무력시위의 장
그러나 북한이 공개한 원통형 발사관 안에 실제 미사일이 있는지, 발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존 ICBM으로 공개된 KN-08과 KN-14는 한 번도 시험발사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신형 ICBM은 실제 발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실전 능력에 대한 검증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은 실제 작동 여부와 관계없이 중국 및 러시아 수준의 ICBM을 개발했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하려 했을 수도 있다.
실물로 공개된 세 번째 신형 ICBM은 바퀴축이 6개인 무수단 미사일(화성-10)에 사용하는 차량에 실려 나왔지만 궤도 방어판을 장착했으며, 미사일의 길이는 무수단보다 길었다. 검은색 몸통에 하얀색으로 칠한 탄두 형태를 띤 미사일은 외관이 기존의 KN-08과 유사해서 KN-08을 개량한 ICBM급 미사일로 추정되었다. 사거리가 8000~1만 km로 추정되는 KN-08은 2012년 4월 태양절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됐으며 당시에는 한 축 바퀴가 8개인 이동형 발사대(TEL)에 탑재돼 있었다.
이 미사일은 열병식 이전까지 한 번도 시험발사를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열병식 이후 한 달이 지난 5월 14일 북한은 열병식에 공개했던 것과 동일한 형태의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북한은 이 미사일을 신형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라고 밝히면서 최대고도 2만1115km, 787km를 비행해 목표 수역에 정확히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 미사일은 사거리 4000~6000km로 분석되며, 미군기지가 있는 괌은 물론 미국 본토 알래스카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미사일 시험이 1단 미사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2단만 추가한다면 ICBM으로 발전된다는 점에서 ICBM으로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열병식에서 북한이 선보인 신형 ICBM들이 실제 실전배치가 임박한 것인지, ICBM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기만전술인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열병식에 공개했던 KN-08 개량형 미사일을 불과 한 달 뒤인 5월 14일 ‘화성-12’라는 이름으로 시험발사해 그 능력을 확인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결국 북한의 올해 열병식은 미국의 고강도 압박에 굴하지 않고 핵·미사일 능력을 계속 고도화해나가겠다는 김정은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무력시위의 장으로 평가된다.
김 태 현
국방대 안전보장대학원 부교수
육군사관학교 졸업, 독일 헬무트슈미트대 정치학 석사, 국방대 군사학 박사. 한미연합사령부 War Planer, 국방부 정책실 자문, 논문 ‘북한의 공세적 군사전략 : 지속과 변화’(2017. 5. 국방정책연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