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키, 진한 눈썹, 까무잡잡한 피부.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서류 가방을 들면 전형적인 한국의 40대 직장인처럼 보이는 이 사람의 이름은 마이클 김이다. 한국 이름은 김명호(44). 민주평통 마이애미협의회 간사로 활동하는 그가 지난 4월 18일 플로리다주 국토관리청장에 임명됐다.
22년 전 충남대에서 지질학을 공부한 후 영동로타리클럽으로부터 장학금 3000만 원을 지원받아 미국으로 건너올 때만 해도 그는 수많은 유학생 중 한 명일 뿐이었다. 2001년 플로리다대에서 토목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2006년 플로리다주 국토부(Florida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수석 보좌관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미국 공직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2011년부터 플로리다주 국토부 지반국장으로 일하다 올봄 국토관리청장으로 부임했다. 플로리다주 도로와 교량 건설 관리를 총괄 책임진다. 미국 주류사회에선 이번 인사를 두고 ‘최연소’, ‘초고속’ 승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간사는 “국토부 관리청장까지 올라가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지금도 꿈만 같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주정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공무원이 하는 일이 국민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감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데 더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선 저부터 ‘내 집을 공사하듯’ 주인의식을 가지고 공무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공무원 생활이란 게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직장 동료들의 능력과 화합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갖추려 애썼습니다.”
타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흔들리고 지칠 때마다 그를 잡아준 것이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이었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라는 말은 부푼 꿈을 안고 미국으로 날아간 한국 청년을 미국 주류사회에서 촉망받는 젊은 관료로 만들었다.
차세대 한인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플로리다 지역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주니어 리더십 콘퍼런스’ 행사.
김 간사가 청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7000여 명 직원 중 한국인은 그가 유일했다. 미국 공직사회에서 한인의 존재감이란 그 숫자만큼 미미하다. 김 간사는 그 이유를 “한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미국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을 자주 많이 보지 못한 데다, 취업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인 자녀들이 청소년과 청년 시절에 미국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한인 공무원과 정치인, 교수, 의사, 언론인, 사업가 등과 자주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한인 청년들이 꿈을 이뤘을 때 자신의 인생의 5%가량은 한인사회에서 봉사하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합니다.”
유태인은 미국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미국 인구의 3%에 불과하지만 미국 경제력의 20%가량을 점유한다. 미국 정치도 좌지우지한다. 유태인 출신 상원의원이 10명, 하원의원이 21명이다. 마이애미협의회가 ‘주니어 리더십 콘퍼런스’와 ‘프로페셔널 콘퍼런스’를 통해 경쟁력을 갖춘 차세대 한인을 양성하려는 이유다.
“한인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미국에서의 주류사회 진출이 얼마든지 가능하니 꿈을 꾸고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한인들도 경쟁력을 갖춰 미국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키운다면 대한민국이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최연소’ 미국 플로리다주 국토관리청장
최근 미국 한인사회에서 고령화된 1세대 한인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평통 내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전 세계 협의회장 중 최연소인 스티브 서(43) 씨가 이끄는 마이애미협의회는 김 간사를 비롯한 젊은 자문위원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어 전 세계 민주평통 협의회의 이목을 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마이애미에서 열린 ‘해외 청년 콘퍼런스’는 뜻깊은 행사였다. 미국, 캐나다, 아시아,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20개 협의회 세계 청년위원과 유호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김성진 주애틀랜타 총영사, 김기철 민주평통 미주부의장이 모여 차세대 리더 육성 방안과 미국 주류사회에서의 영향력 증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전 세계 민주평통 청년위원들은 한국을 사랑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마이애미로 모였습니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청년위원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음을 확신했죠.”
올 4월 플로리다주 국토관리청장으로 임명된 김명호 간사가 동료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디즈니랜드와 마이애미 해변으로 유명한 마이애미는 날마다 전 세계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마이애미협의회는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한국 문화를 즐기고 한반도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힘쓴다. 매년 아시안 페스티벌에 참여해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동시에 북한의 실체를 알린다. 최근 K-팝을 즐기는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어 올 3월엔 신명나는 K-팝 축제의 장을 열었다.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문화 행사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홍보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입니다. 이를 잘 활용하면 남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커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