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용 데일리NK 기자 |
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 15일) 105주년을 이틀 앞둔 4월 13일, 일본 등 외신에 김정은의 모습이 등장했다. 평양 여명거리(북한말로는 려명거리) 준공식에 참석해 직접 테이프 커팅을 하기 위한 행보였다. 이날 행사에는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을 비롯해 황병서, 최룡해, 박봉주, 김기남, 오수용 등 최고급 간부들이 총출동해 여명거리 완공을 기념했다.
특히 북한은 준공식 행사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김정은의 근거리 취재를 허용했다. 이는 지난해 5월 열렸던 7차 당대회 당시 외신 기자들에게 개막식장으로부터 200m 이내 접근 제한과 취재 중단 등을 통보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조치였다. 여명거리 선전에 김정은이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3월 16일 새벽 여명거리 건설 현장을 방문해 김일성 생일 이전까지 무조건 완공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이후 북한 당국은 4월 11일 일본 언론을 비롯한 외신 11곳 취재기자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였고, 4월 13일 새벽에 ‘빅 이벤트(Big Event)’를 예고한 뒤 여명거리 완공을 선포하는 ‘쇼’를 보여주었다.
북한 주민은 물론 외국 인사까지 공사에 동원
평양 여명거리는 지형적으로 보면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있는 평양 대성산 구역 금수산궁전과 용흥네거리 사이다. 부지 면적 90만㎡, 건축 면적 18만8000여㎡, 총 건축면적 171만3000여㎡ 규모다. 북한에서 가장 높은 70층대 초고층 아파트를 포함해 김일성대학 교육자와 과학자들을 위한 주택 44동(4804가구)과 학교, 탁아소, 유치원 등 편의시설 28동이 들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지난해 3월 김정은이 직접 건설계획을 밝힌 곳이다. 자신의 치적으로 삼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또한 국제사회가 추진하는 대북 제재의 무용론을 선전하려는 의도를 노동신문 등을 통해 밝히기도 한, 북한판 신도시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이 여명거리 건설을 추진하면서 지속적으로 독려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아파트 살림집은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최고지도자가 신경 쓰고 있고, 더구나 무상으로 제공해준다면 어떨까. 충성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김정은은 바로 이런 점을 노린 것이다. 자신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인민애를 선전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은 할아버지 김일성도, 아버지 김정일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은 1956년도 사회주의국가 기초 건설을 위해 아파트 건설에 주력했다. 김정일 역시 광복거리, 통일거리 등 수많은 아파트 건설에 신경을 썼다. 김정은은 이런 선대(先代)의 유훈을 지켜나가는 지도자라는 이미지 구축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에서는 아파트 살림집을 ‘국유화와 무상분배’라는 사회주의적 주택 정책에 따라 공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주민 살림집 건설을 국가 부담으로 하고, 공급할 책임도 국가에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주택 건설을 전 국가적인 동원 형태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양에서의 주택 건설은 ‘속도전청년돌격대’와 같은 조직과 군인 등이 동원되어 강행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여명거리 준공식이 열린 4월 13일 북한군이 인공기를 들고 여명거리를 지나고 있다.
여명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김정은이 직접 건설 계획에 나섰고, 또한 연일 건설을 독촉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자재와 인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 매체도 이런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실제로도 북한 당국은 평양 행사 참가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건설장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주북한 러시아대사 등도 ‘1일 친선노동’을 했다는 점이다.
특히 김정은의 지시로 건설장비와 자재, 전력 등 공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최우선적으로 공급했다. 이는 김정은이 직접 지시한 여명거리 건설을 반드시 할아버지 생일 전에 완공시켜 ‘김정은 치적’을 선전하고 대북 제재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여명거리 건설에 전국 각지의 청년돌격대와 청년 건설자는 물론, 김정은의 지시로 군인 건설자까지 투입됐으며, 평양을 방문하는 국내외 인사들까지 ‘지원노동’, ‘친선노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노력동원을 했다.
또한 지난해 6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회의에 참석했던 대의원들과 지난달 청년동맹 9차대회에 참가했던 청년동맹원 모두 여명거리 건설 현장에 동원됐다. 여기엔 행사에 참석했던 재일 조총련 대의원이나 청년 대표들도 예외 없이 참여했다. 한마디로 김정은의 치적을 위해 북한 전민(全民)은 물론 평양에 들어간 외국 인사도 건설 노동에 동원된 셈이다.
이는 여명거리가 전문 인력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건설사업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전문화된 시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향후 붕괴 사고 등 문제가 속출되지는 않을지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무리한 속도전으로 부실 위험 키워
또한 약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 공사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부실 공사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은 김일성 시기 때 나온 천리마 운동보다도 더한 ‘만리마 운동’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 매체에서는 ‘비약의 발전’, ‘혁명적 전환’이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북한은 이 같은 구호 문구를 제작해 건설 분야에서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은 여명거리 건설 현장을 방문해 ‘며칠까지 건설하라’는 지시를 자주 내렸다. 이렇게 내리는 ‘특별 명령’도 이런 부실 공사에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마감 기한을 지시하면 돌격대나 청년 군인들은 이를 관철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리하게 건설에 투입되다 떨어져 죽거나 하는 등 안전사고도 속출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에서는 완공된 후에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2014년 5월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동에 위치한 23층 아파트 붕괴 사고를 지적할 수 있다. 당시 인민보안부장이 직접 나와 입주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을 정도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여명거리 건설에서 드러난 것처럼 김정은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지속적으로 무리한 속도전만 강조하는 상황이다.
김정은은 선대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이번 여명거리 건설에 주민 동원은 물론 주민들에게 각종 세금 부담을 지우기도 했다. 이번에도 북한 당국이 자재 부족으로 공사가 더디게 진행되자, 주민들에게 ‘냄비’, ‘부지깽이’ 등 집안 살림살이까지 바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공장기업소 퇴적물 처리장과 마을 잿더미를 뒤져 파철 조각 줍기에 나서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북한 당국이 ‘불손 가족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주민과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집안 살림살이까지 바쳐야 했다.
여명거리 준공을 크게 알리는 북한 노동신문.
살림살이와 노동까지 갈취한 ‘눈물의 거리’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 당국은 여명거리 건설사업에 소요되는 자금 마련을 위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충성자금 헌납운동’을 조직했다. 가구별로 50달러의 충성자금을 바칠 것을 강요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공장기업소 강연 등을 통해 “나라의 발전을 위해 과학자들에게 선물할 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앞장에서 충성심을 바쳐야 한다”는 선전을 강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돈이 없는 가구는 지난해 7월까지 여명거리 건설 노동에 직접 참여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반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50달러를 충성자금으로 상납할 수 없어 여명거리 건설 현장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렇게 주민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국가 건설사업은 김정은 체제에 별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김정은이 여명거리 건설에 공을 들이는 것은 대북 제재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대외에 과시하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런 과욕 때문에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속도전을 벌였기 때문에 부실 공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사를 책임졌던 간부들은 “집을 거저(공짜로) 준대도 안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이곳을 배정받은 특권층 간부들은 “노부모를 모시고 있기에 고층주택은 불편하다”는 핑계로 입주를 꺼리고 있다고 한다. 충성분자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종합적으로 보면 여명거리 건설은 억지로 짜낸 인민들의 돈으로 자재를 수입하고 젊은 군인들과 청년들을 강제 동원해 건설했다는 측면에서 당국이 선전하는 것처럼 ‘웃음이 넘치는 거리’가 아닌 ‘눈물의 거리’가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