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치료법을 결합한 의료기관을 설립하겠다는 꿈을 안고 2007년 한국으로 건너왔어요. 제 치료 철학을 반영한 병원 이름을 짓는 데만 3년이 걸렸죠. 고민 끝에 모든 환자들을 가족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료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친한의원’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친한의원은 탈북 한의사로 유명한 박지나 원장이 운영하는 한의원이다. 이름 때문인지 병원 특유의 딱딱한 분위기 대신 친근감이 감돈다. 근래에 의원이나 소형 병원들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진 걸 감안하면, 개원 7년째에 접어든 친한의원은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속 시원히 상담해준다고 환자들이 좋아하세요. 대충이 아니라 꼼꼼하게 조언해드리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제 치료 의지나 진심을 많이 보시는 것 같아요.”
한때 박 원장은 북에서 수재 소리를 들으며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소위 남부러울 것 없는 스펙을 지녔던 만큼 대학 졸업 후에는 의사로서 편안하고 명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탈북을 결심한 건 왜일까.
“북에서는 대학 졸업 전까지 모든 게 다 제 꿈대로 이뤄졌어요. 그런데 대학 졸업 후 현장에 나가 의료 행위를 하면서 충격적인 사실들을 접하게 됐죠. 이제껏 내가 알고 믿어온 나라가 아니었어요. 인민이 주인인 나라, 병 없이 무병장수하는 나라, 평등한 나라라고 세뇌받아왔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죠. 굶어서 소변도 안 나오는 환자들,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약이나 치료의 기회는 없었어요. 이 모든 게 저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죠.”
결국 박 원장은 한국에서 의료기관을 개업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탈북을 결심했다. 동시에 그녀 인생에 첫 시련이 찾아왔다.
“한국에 오면 제가 원하는 연구도 마저 하고 의사도 바로 되는 줄 알았죠. 그런데 현실은 달랐어요. 여느 탈북민들과 마찬가지로 알아서 살아라, 하고 방치됐으니까요. 막막했죠.”
북에서 십수 년간 공부해 딴 의료인 자격증도 다시 따야 했다. 공부하랴, 생계 유지하랴 두 배로 힘든 삶이 시작됐다.
“파출부로도 일했고, 편의점 계산원도 해봤고, 한의원에서 약도 달여봤어요. 파출부로 일한 집에서는 딸뻘 되는 아이로부터 하인 취급까지 받았죠.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사람들의 위선적인 면도 많이 봤고요. 근데 오히려 그런 것들이 저를 강하게 단련시킨 계기가 됐어요. 반드시 시험에 합격해 성공하고 말겠다고 다짐했으니까요.”
박지나 원장은 남북한의 치료법, 한의학과 양방의 치료법을 조화시킨 진료로 환자들에게 인기다.
양·한방 융합한 치료법으로 환자 신뢰 얻어
한국에 온 지 5년 만인 2011년, 그는 두 번의 낙방 끝에 시험에 합격했다. 동시에 병원 개원도 서둘러 면허증을 받은 지 4개월 만인 그해 6월 친한의원을 오픈했다. 시험 준비를 하는 3년 동안 한의원 명칭, 장소 선택을 위한 현장 조사 등을 병행했기에 가능했다.
“개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제1금융권의 문을 두드렸는데 딱 한 곳에서만 대출을 허용해줬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따로 홍보는 하지도 못했는데, 다행히 첫달부터 손님들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설프게 시작했는데도 여기까지 살아남은 게 신기해요.”
친한의원만의 특별함도 고객을 사로잡는 비결이다. 친한의원은 남북한의 치료법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치료법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박 원장이 탈북을 계획하면서부터 가진 오랜 꿈이기도 하다.
“환자 분들이 저에 대해 가장 신뢰하는 부분이 양·한방의 임상적 경험을 두루 지녔다는 점인 것 같아요. 북에서는 한·양방 복합 치료를 하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 뒤 그에 맞는 치료법을 권하거든요. 그런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양방 치료를 오래 했던 분, 한방 치료만 받았던 분 모두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권하고 있어요.”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직업적 보람을 느낀다는 박 원장. 그는 지금의 환경이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북에서는 치료를 하고 싶어도 조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원하는 어떤 약도 다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진료 시스템을 탓하며 환자를 못 고친다고 변명할 수가 없죠. 그래서 더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끊임없이 저를 반성하게 됩니다.”
한때는 북한 최고의 엘리트였고 지금은 ‘탈북 한의사’로 성공한 그는 “노력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는 있다”고 강조한다. 후배 탈북민들에게 당부하고픈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첫째는 배우라고 말하고 싶어요. 탈북민을 위한 배움의 기회가 많기 때문에 절대 그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그리고 북한 사람에 대한 선입견에 기죽지 마세요.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고 온 땅이잖아요. 그런 일에 서운해하고 기를 빼앗기는 대신 끝없이 도전하세요. 어디서든 죽도록 일하면 반드시 성공의 기회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