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아 남북관계가 새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5월 10일 취임사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면 워싱턴뿐 아니라 베이징과 도쿄에도 갈 수 있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갈 수 있다고 말해 주변 강대국과 북한에 대한 강한 설득 의지를 보였다.
대선 과정을 통해서도 줄곧 ‘평화롭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해왔고, 특히 ‘나라다운 나라, 국민이 주인 되는 진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선 ‘남북관계 개선’이 꼭 필요한 과업이라고 천명함으로써 향후 남북관계에 큰 비중을 둘 것임을 내비쳐왔다. 그 결과 대통령 취임 이후 핵 보유 의지를 굽히지 않는 북한을 상대로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 국면 속에서 남북관계만 예외로 하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을 재개할 수 있을지 새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통일정책 구상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선 이미 대선 과정을 통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 남북대화의 방향, 통일을 이루기 위한 로드맵 등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정리하면서 새 정부가 내디딜 행보를 예상해보고자 한다.
북핵 폐기 위한 ‘3단계 해법’ 제시
첫째,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북핵 폐기를 위한 ‘3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과 같은 도발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핵 보유 능력을 더 이상 심화시키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며, 종국에는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도록 단계적인 접근을 하겠다는 플랜이 그것이다. 아울러 북핵 폐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가장 빠른 시기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강화할 것이며, 핵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전제가 확실할 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만날 수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국가 안보와 외교의 가장 중요한 토대라고 규정했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으로 국가 안보를 구축해왔다고 평가하면서, 한미 양국은 북핵 문제에 함께 대처하기 위해 외교·국방 장관회의를 포함해 고위 전략회의를 제도화해야 하며,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는 점을 주문했다. 즉, 사드 배치 완료는 새 정부에서 논의가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와 관련해선 한국이 전작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밝혔다.
셋째,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구상’을 발표하면서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북한의 변화를 전략적으로 견인해내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또 문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남북 기본협정 체결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남북이 1991년 체결한 ‘남북한 기본합의서’를 변화된 상황에 맞게 수정·보완한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접경지역을 남북이 함께 관리할 ‘공동관리위원회’ 설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남북 경제통합(단일시장)을 거쳐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맞춰 ‘한반도 신경제벨트’를 구축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환동해권, 환황해권, 중부권 등 3개 권역에서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다는 구상이다.
‘환동해권’은 에너지·자원벨트로 부산~남북 동해안~중국~러시아를 잇는 북방 트라이앵글과 부산항을 중심으로 북의 나진·선봉항, 일본 니가타항을 연결하는 남방 트라이앵글을 포괄하며, ‘환황해권’은 산업·물류·교통벨트로 목포·여수~인천~해주~남포~상하이를 각각 잇고, 수도권과 개성공단을 거쳐 평양·신의주까지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며,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고속교통망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중부권’은 환경·관광벨트로 비무장지대(DMZ) 생태·평화안보 관광지구 개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궁극적으로 남북한의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고, ‘한반도 신경제지도’ 실행을 통해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남북 간 정보통신기술(ICT) 교류 및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북한 내 ICT 인프라 구축과 남북 공동 ICT 클러스터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넷째,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음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핵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전제가 확실할 때 김정은을 만날 것이며, 대신 만남을 위한 만남은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다섯째,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간 사회·문화·체육 교류를 활성화하고,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며, 특히 ‘한반도 프라이카우프’를 추진해 이산가족 신청자의 전원 상봉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상이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취임 직후까지 밝힌 한반도 안보 관련 구상과 대북·통일정책의 주요 얼개다.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남북관계 개선이 진행되면 한반도에는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 경제·사회의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한국 경제 활성화가 이뤄질 것이며, 더 나아가 남북한의 경제(시장) 통합이 이뤄지면 점진적인 평화통일의 초석이 된다는 구상이다. 이는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꼭 이뤄야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 후 식장을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
외교·안보·통일 조정하는 콘트롤타워 작동 필요
그러나 현재 상황은 이런 구상을 순차적으로 전개하기에 녹록하지 않다. 우선 북핵 문제 해법을 쉽게 찾기 어려운 국면이 형성돼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만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최대 압박과 관여’를 통해 북한 체제의 존재 자체를 나쁜 현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 체제를 보장할 테니 미국을 믿어보라고 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공세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미국에 대해 북한은 핵 보유국가에 필요한 조치를 일정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만 벌써 미사일 실험을 9회 이상 감행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3회 이상 실행에 옮겼다.
북한 체제 생존을 위해선 미국의 압력이나 한국 신정부 출범이라는 변수가 우선시될 수 없다는 북한식 행동 프로그램이 작동 중이다. 이런 북한을 향해 ‘북핵 문제에 대한 가시적인 양보 또는 포기’가 보이면 대화를 하겠다는 미국의 태도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 양상이다. 미국의 압박과 성화에 못 이겨 중국도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곤 있으나, 북한 정권의 항복을 받아낼 의지에 기초한 제재 동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관련 강대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이미 특사외교를 통해 우리 새 정부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이해를 구하는 모양새는 갖추었지만, 현안 해결을 위한 진짜 논의는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은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구조’에서 설계·실행되었기에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지지를 받을 수 있었지만, 현재 상황은 ‘북핵 문제 해결이 좀처럼 쉽지 않다는 구조’에서 남북관계 개선 및 통일 성취를 위한 행보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해 펼치기엔 새로운 의지와 추진력, 그리고 특단의 설득 논리가 필요하다.
현재로서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구상을 추진해내는 조직을 다듬고 의지를 모으는 일이다. 외교, 안보, 통일의 목표를 종합적으로 조합하고 현안을 풀어나가는 컨트롤타워가 작동해야 하며, 이를 통해 적시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이 전개돼야 한다. 새로 뽑힌 전문가들이 서로 협력해서 안보 분야의 현안을 풀어가는 연대가 필요하며, 새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성원을 바탕으로 정책의 빈 공간을 채워나가야 한다.
아울러 우리 안보는 우리가 지킨다는 시각에서 한미동맹의 현재와 미래를 판단하며, 사드 배치 등 필요한 방어무기 및 전략자산 활용도 결정해야 한다. 우리의 플랜 없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휩쓸리다 보면 국가 정체성과 자존감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실감하게 되며, 국민의 지지 기반과 통일 추진력도 잃게 된다. 이 점은 최근 우리 국민이 강하게 체감하는 상황이기에 이 문제를 돌파해내는 리더십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남북관계는 긴 호흡으로 풀어나가야
한편 남북관계는 긴 호흡으로 풀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꽉 막힌 남북관계를 단번에 풀려고 무리하지 말고, 부담이 적은 인도적 분야나 체육 교류와 같은 비정치적 접촉을 먼저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라리아 방역을 위한 남북 접경지역의 접촉은 모기가 창궐하기 전에 시도해야 하며, 결핵이나 요오드 결핍으로 나타난 북한 주민들의 건강 문제에 비중을 둔 의료 지원 협력은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동맥과 정맥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핏줄이 연결되어 화색이 도는 남북관계를 조성하는 일에도 비중을 두어야 한다. 대북 접촉을 중앙에서 과도하게 통제하지 말고, 지자체나 비정부기구(NGO)에 재량권을 주어 자연스럽게 남북 간 상호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권장해야 한다. 그래야 남북관계가 막히는 경색 국면을 방지할 수도 있고, 다시 교류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풀어나갈 수 있다.
분단 72년 동안 남북관계 개선이나 복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했고, 남북 현안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을 모아 정책으로 추진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절감했다.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선 공감대를 얻어내는 과정이 꼭 있어야 하며, 그 공감을 실행에 옮기는 정치적 리더십이 결정적임을 교훈으로 얻었다. 이를 시금석 삼아 문재인 정부의 통일 리더십이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활짝 전개되기를 기원한다.
김 영 수
서강대 정외과 교수
서강대 정치학 박사, 서강대 부총장,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북한연구학회 회장 역임. 현재 민주평통 통일정책분과위원장과 통일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