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9일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를 시행했다. 이 선거의 결과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새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남북 교류의 측면에서 그 직전의 9년과 다른 경로를 밟을 것으로 예측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이른바 보수 노선을 지향하는 대북정책의 결과로 남북 교류는 침체기를 겪었다. 이보다 앞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상대적으로 진보 노선을 추구하는 대북정책의 영향으로 남북 교류는 전례 없이 활발했던 시간을 보냈던 경험을 우리 국민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나간 9년과 그 이전의 10년 기간을 되짚어보면 새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문재인 정부는 남북 교류 분야에서 예전과 다른 형태의 과제를 안고 출범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대다수 국민이 진보 정권 10년과 보수 정권 9년의 남북 교류 현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정책 노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새 정부가 아직 정책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은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북 교류를 둘러싼 국민들 의견은 사안에 따라 충돌 양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새 정부가 그 직전의 9년과 다른 경로를 선택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희망을 꿈꾸는 집단도 있고 동일한 이유로 불안감을 나타내는 집단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 하겠다.
2017년 5월 20일 현재 남북 교류 현황은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하는 기간 동안 남북 교류는 어떤 모양으로 변화해나갈 것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새 정부의 남북 교류 정책은 어떤 모양으로 변화해나가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을 찾는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평가
북한연구학회와 통일부는 지난 4월 3일부터 15일까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고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 제언하고 싶은 내용을 문의하는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설문 배포 대상은 북한연구학회 회원과 관계부처 공무원 250명으로 한정했는데 총 96명이 응답해 최종 회수율은 38.4%에 이르렀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총 96명의 응답자 중에서 남성이 64명으로 66.7%를 차지했다. 여성보다 남성 응답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뜻이다. 연령별 분포를 보면 40, 50대 응답자가 총 76명으로 79.2%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70.8%에 해당하는 68명이 박사학위 소지자였고, 대학교와 연구소에 소속을 둔 비율은 77.1%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의 특성은 주로 40, 50대 남성으로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대학교와 연구소 소속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응답자의 특성이 이런 편향성을 나타내는 것은 모집단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설문조사의 결과를 분석할 때 응답자의 특성을 감안해 해석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하겠다.
이번 설문조사의 응답자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을 5점 척도로 평가한 결과를 비교해보면, 김대중(3.71)·노무현(3.56) 정부가 이명박(2.17)·박근혜(1.94) 정부보다 전반적으로 점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평균점수는 3.64점인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평균 점수는 2.06점을 기록했다. 각 정부의 공과를 지적하는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일 중에서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는 지속적인 남북대화 및 다양한 교류 활성화가 1순위로 나타났다. 반면, 김대중 정부의 정책 중 차기 정부가 지양해야 할 정책으로는 투명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대북 지원을 일방적, 대규모로 했던 점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남북 교류가 활발했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엔 천안함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됐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일 중에서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는 사업으로는 지속적인 대화와 합의 도출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인도적 지원 및 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한 남북 교류 활성화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반면에 노무현 정부의 정책 중 차기 정부가 지양해야 할 정책으로는 북한에 대한 맹목적 신뢰 및 지원이 가장 많았고, 후속 정부가 실행하기 어려운 남북 간 합의 및 대북정책을 추진했다는 의견이 그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런 상황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너무 많은 사안을 구체적인 수준까지 합의했던 일을 전문가 집단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일 중에서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는 사안으로는 북한을 상대하면서 원칙과 일관성 있는 태도를 지켰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응답자 집단은 북한과 대화를 추진할 때 우리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한 점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의 정책 중 차기 정부가 지양해야 할 사안으로 북한을 상대로 압박 위주의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북한과 대화를 단절하고 남북한 간의 대립 국면을 조성한 것도 지양해나가야 할 점으로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일 중에서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는 사안으로는 통일 기반 조성에 필요한 국내외적 공감대 형성에 노력했다는 점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북한과 협상할 때 주도적이고 강한 입장을 유지한 점도 평가가 좋게 나왔다. 반면에 박근혜 정부의 정책 중 차기 정부가 지양해야 할 사안으로는 정책과 실행의 불일치로 남북 교류를 사실상 중단했다고 지적하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또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지키지 않았고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채 정책을 추진하려 했던 점도 잘못이었다고 지적하는 의견이 나왔다.
재미있는 설문의 결과는 이른바 진보 정권의 대북정책을 더 높이 평가하면서도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지나친 대북 저자세를 보이는 것은 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보수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면서도 확고한 안보태세를 갖춘 것은 장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말은 곧 전문가 집단이 새로 출범하는 문재인 정부에 기대하는 대북정책은 10년의 진보 정권과 9년의 보수 정권이 추진한 대북정책 중에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말고 기존의 경험을 활용해 우리의 앞날을 도모하는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교류 확대하되 국가 안보 중요성은 강조
돌이켜보면 지나간 20여 년 동안 우리는 남북 교류 분야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김대중 정부가 처음 출범할 때 남북 교류의 새로운 물꼬를 튼다는 정신으로 기존의 노선과 다른 대북정책을 추진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 그 이전 10년 동안 추진했던 경로와 다른 방향으로 남북 교류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에 부합하는 대북정책을 내세웠던 사실도 기억한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출범하는 문재인 정부는 과거와 다른 출발점에서 남북 교류의 현황을 진단하고 앞날을 전망하면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이런 과제를 감당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인데 며칠에 한 번씩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북한 당국의 행보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상황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17년 5월 말 시점에서 이제 막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남북 교류의 현황을 어떻게 진단해야 하는가? 앞으로 남북 교류는 어떻게 전망하는 것이 옳은가?
이런 질문에 누구도 쉽게 정답을 제시할 수 없다. 다만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인 전문가 집단은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남북 교류를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다양한 유형의 남북 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을 찾아 끊임없이 실천해나가야 한다. 둘째, 어떤 경우에도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남북 교류를 확대하더라도 국가 안보의 중요성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 석 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이화여대 문학석사, 미국 조지아대 철학 박사.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북한연구학회 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