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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차 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토론회

“제도 준비 없는 통일 논의 공허
북 경제성장 후 제도 단일화 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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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에서 박찬봉 민주평통 사무처장이 개회 인사를 하고 있다.

민주평통과 한국국제정치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6차 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토론회’가 지난 9월 4일 전북 부안 NH농협생명 변산수련원에서 ‘새로운 통일 논의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학계와 민간 분야의 남북관계 전문가 30여 명이 발제자 및 패널로 참석해 ‘남북관계의 제도화’와 ‘남북한의 제도적 통합’을 논의했다.

“통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한다. 남북관계의 제도 통합은 그런 점에서 통일 논의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최종 목표라고 생각한다.”

제16차 전문가 토론회에 대한 박찬봉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의미 부여다. 토론회는 ‘8·25 남북 합의’ 이후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남북관계 토론회여서인지 시종 뜨겁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박 처장은 개회 인사를 통해 “그간의 통일 논의가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에 모든 노력이 집중됐다면 이제는 ‘일민족, 일국가, 일체제, 일정부’를 전제로 우리가 진행하는 통일의 제도적 문제를 살펴봐야 할 시점”이라며 “남북한의 제도 통합을 다룬 이번 토론회는 통일사적 의미가 있는 행사”라고 규정했다.

행사를 공동 개최한 김태현 한국국제정치학회장(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은 “남북관계는 개별적인 협력에 앞서 제도적인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천수답과 같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자칫 흐를 수 있다.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가 중요한데, 오늘 행사가 그 대안을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개회 인사에 이어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주제로 열린 제1세션 토론은 김태현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발제에 나선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비교적 화해 기류가 높았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화해·협력과 불신·대립이 병존했다”면서 “합의 이후 온전한 이행이 지속된 적이 없는 남북관계가 지속성과 불가역성, 실천담보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정치·군사적 의제 논의를 회피하지 않고, 개성공단과 같은 형태의 되돌리기 어려운 경협과 교류의 진전을 구조화해야 한다”며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위한 대안으로 △군사적 평화뿐 아니라 마음의 평화까지 포괄하는 ‘포괄적 평화’ △상호 정치적 대결의 대표적 사례인 비방·중상 중단과 지도자 거명 비난 중단을 제시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장치로 △대화의 정례화와 상설화를 위한 남북 간 회담의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체결 △개성 혹은 금강산에 남북 공동의 ‘남북협력공동사무국’ 설치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 설치를 제안했다.

“개성공단과 같은 되돌리기 어려운 경협과교류를 구조화해야악순환 끊을 수 있어”

“북한의 주민 소득을 끌어올리고국가 질서 변환 추진해야부작용 적어”

분쟁 해결 매뉴얼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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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25합의 이후 처음 열린 대규모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답게 시종 뜨겁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맨왼쪽은 이날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김태현 한국국제정치학회장(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어 토론에 나선 김갑식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박근혜정부는 구조적으로 남북관계를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노태우 정부에서 여야가 협력해 남북한 문제의 주도권을 갖춰나갔듯이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과거와 다른 전향적인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남북관계 제도화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분쟁 해결 방식의 제도화”라면서 “분쟁 해결의 매뉴얼을 만들어야 분쟁이 발생해도 불확실성을 줄여나가고 일관성을 확보하면서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종수 새정치민주연합 통일전문위원은 “아무리 남북 교류협력을 잘해도 정권이 바뀌면 대부분 무력화되는 예에서 보듯 우리 내부의 제도화에 대한 합의와 준비가 부족하다. 우리 내부의 관계 맺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남북관계 제도화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호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정권이 경제정책의 성과와 변화를 강조하고 있으나 객관적인 지표에 의해 뒷받침되는지 의문”이라면서 “남북관계의 수준을 동일한 수준에서 평면으로 놓고 보면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좀 더 전략적이고 정책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북한의 변화가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것인지 고민하다 보면 결국 흡수통일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흡수통일에 대해 북한이 방어적으로 나오고 체제 문제로 가면 개념적, 이론적으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다. 포괄적 평화체제로 가는 방법과 과정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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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25 합의 이후 고위급 회담에서 정치·군사적 의제를 다루고 이에 따른 분야별 실무회담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경원선 복원, 관광특구나 나진·선봉특구 등에 대한 제도화의 틀을 만들어가는 시험대가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주석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이번 위기 상황에서도 전반적인 군사관리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다. 남북 군사 당국자 간 직통전화를 상시 가능한 핫라인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앞으로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늘어나더라도 남북관계의 제도적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예상 가능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사전 조정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며 “여야가 적극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국제법상 효력을 따지면서 약속 위반 사항에 대해 상호 규제할 수 있는 부수조항까지 두는 제도의 입법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대진 한국외국어대 정외과 교수는 “지금까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북한이 쥐고 있어 남한은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적지 않았다”면서 “더욱 개방적이고 개혁적이면서 이성적인 정치적 리더십을 통해 상황을 돌파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과거 숱한 합의가 진행됐으나 지켜진 것이 거의 없다. 제도화의 기본 틀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치·군사적 차원의 좀 더 높은 수준의 전략적인 결단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정부가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현 정부의 색깔이 묻어나는 성과를 만들어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영 새누리당 전문위원은 “북한이 협조적으로 나오면 그에 따른 이익을 높여주고 반대로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비용을 올려서 남북관계를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남남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논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중국과 대만이 경제를 중심으로 민간 교류를 활성화했듯 우리도 민간 차원의 채널을 구축하고 경제 협력을 복원하는 기초 공사 위주의 새 틀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한 통합 과정의 관리, 제도화 고민할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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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제도 통합’을 주제로 한 제2세션은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제를 맡았다. 박 위원은 신제도경제학의 관점에서 성공적인 남북한 제도 통합 문제를 다뤘다. 박 위원은 개발도상사회의 1인당 소득을 8000달러로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국가의 질서 변환을 주도하는 2단계론을 남북한 제도 통합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1단계에서 북한 지역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2단계에서 본격적으로 남북한 제도를 단일화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다만 “북한은 중국식 개혁·개방의 모델을 재현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2세션 사회를 맡은 박찬봉 사무처장은 “북한이 남북한 제도적 통합에 합의하고, 합의 이후 이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통합 과정을 관리하고 제도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국제적인 규범을 이탈하지 않으면서 공통의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 과제”라고 설명했다.

제2세션 토론에는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송영훈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제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초빙교수, 윤지원 평택대 교수, 제성호 중앙대 법과대 교수,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조윤영 중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등 11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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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암 선임연구위원은 “이제 설계도면을 갖고 구체적으로 건축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남북 통합에 대한 집행 역량을 키워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김용현 교수는 “좀 더 신중하고 여유롭게 제도 통합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일기 연구위원은 “제도 통합은 통일 이전과 이후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기득권층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영훈 교수는 “남북통일의 궁극적인 이유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총론에서 지향하는 가치를 제시하고 각론에서 구체적인 제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향점이 없는 상태에서 통합 모델을 살펴보면 소모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제노 연구위원은 “국민적 여론 형성과 이에 따른 국회의 동의를 받아 법적 효력을 유지하는 남북 제도화 작업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염돈재 초빙교수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은 준비가 완벽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경섭 부연구위원은 “국가체제는 한번 만들어지면 중간에 바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통일의 시점이 오면 북한의 체제 전환 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지원 교수는 “동서독 통일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사람이 가장 중요했다. 엘리트그룹이 남북한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성호 교수는 “남북 간 상호 이익을 창출하는 남북합의서를 통해 법제 통합의 골격을 그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영기 교수는 “우선 북한이 국제 규범을 지키고 경제원리가 확실히 적용되도록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윤영 교수는 “남북관계의 제도화는 인적 구성원의 상호 간 합의, 이후의 로드맵,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까지 포괄하고 있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분석했다. 진희관 교수는 “북한의 시장화 상황에 대해 너무 낙관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북한의 시장화는 매우 생소하면서도 도전적인 주제”라고 진단했다.

이번 토론회는 박찬봉 사무처장의 사회로 종합토론을 거쳐 5시간 만에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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