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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축구 열기

유소년 국제대회에 10만 관중
유럽 프로리그 경기 TV 중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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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8월 동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에서 우승하고 귀국한 북한팀이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노동신문 사진>

8월 21일부터 나흘간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경기대회는 북한의 축구 열기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구름 관중이 모여드는가 하면 전문가 뺨치는 관전평을 하는 일반 주민을 볼 수 있었다.

김귀수 KBS 경제부 기자

월드컵보다 더 큰 감동, 그리고 승리 그 이상의 것을 향한 ‘축구 소년’들의 열정이 평양에서 타올랐다. 지난 8월 16일 저녁 7시, 경기도와 강원도 유소년 축구대표단 80여 명이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제2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경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평양에서 축구 경기라니! 생소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2006년 남북체육교류협회가 남북을 오가며 유소년 축구 교류전을 갖다가 2008년부터 중국 등 제3국에서 열렸다. 이후 국제대회로 확장해 지난해 경기 연천에서 제1회 대회를 개최했다. 8월 평양 대회는 제2회 대회인 셈.

축구는 그 어느 분야보다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하다. 광복 전후 경평 축구가 8차례 열렸고, 1990년엔 남북 대표팀이 통일축구경기를 치렀다. 1991년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남북 단일팀이 출전해 8강에 오르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이번 대회가 비록 유소년 대회이긴 하지만 그 맥을 잇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대회기간은 8월 21일부터 나흘간. 남북 각 두 개 팀을 비롯해 브라질 아틀레티코 소로카바팀, 우즈베키스탄 FC분요드코르팀 등 총 8개 팀이 두 개 조로 나뉘어 각 조 1, 2위가 결승 토너먼트에 올라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다른 조에 속한 경기도와 강원도팀은 각각 첫 경기를 가볍게 승리했다. 두 팀 모두 다음 경기는 북한팀. 경기도는 북한 최고의 팀이라는 4 · 25 체육단 유소년 팀, 그리고 강원도는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평양국제축구학교와 리그 두 번째 경기를 가졌다.

결과는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북한팀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대회를 위해 한 달 전쯤 소집된 우리 선수들에 비해 체력적으로나 조직력에서 북한 선수들이 확실히 앞서 있었다. 경기 전 기자와 만난 우리 선수들은 모두 전날의 승리에 고무된 듯 활짝 웃으며 북한팀과의 승부가 자신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면서 북한 친구들과의 경기가 기대된다고도 했다.

비록 지기는 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정말 자랑스러웠다. 약간 거친 플레이가 나오면 서로 손 잡아주고 넘어진 상대를 일으켜주며 경기 내내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긴 북한 선수들이나 진 우리 선수들 모두 경기의 승자였다. 15만 명이 들어찬다는 대회 장소 능라도 ‘5월 1일 경기장’에 모인 5만 명의 북한 관중은 그때마다 아낌없는 박수로 남북의 ‘축구 소년’들을 격려했다. 결국 대회 결승은 짜기라도 한 듯 북한 팀끼리 맞붙었다.

대회 하이라이트는 결승전이 아니었다. 전날 미리 열린 환송 피로연이었다. 어른들의 축사 등 공식 행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른바 ‘그림’을 만들어주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북한 선수들이 앉은 자리로 우르르 몰려가는 ‘돌발 상황을 연출한 것.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하고 궁금한 질문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축구는 얼마나 했느냐, 공부는 잘하느냐, 그리고 제일 궁금한 것 중 하나인 여자 친구는 있느냐 등으로 얘기꽃을 피워갔다.

북한 측은 이런 상황에 당황해하면서도 굳이 막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입가에 미소까지 띠우며 “저 애들이 나중에 통일 일꾼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체류기간 놀라운 점이 있었다. 바로 북한의 축구 열기. 대회 개막일 5만 명, 그리고 폐막일엔 무려 10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물론 대부분은 동원된 관중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전문가 뺨치는 주민들의 축구 해설

그렇다 하더라도 유소년 경기에 관중 10만 명이 몰려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 ‘축구 전문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취재진 근처에서 경기를 보던 한 북한 주민은 4 · 25 체육단 유소년팀과 평양국제축구학교 간의 최근 경기를 얘기하며 승부를 예상하기도 했다.

취재진과 10일 동안 함께했던 북한 안내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선수들의 강점과 약점을 얘기하는 모습이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공식 축구 전문가와 똑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선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고 한다.

큰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평양역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 앞에 평양 시민들이 몰려들어 단체 응원전을 펼치기도 하고, 국제대회에서 우승이라도 할라치면 공항에서 평양 시내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한다는 것. 최근 동아시아컵에서 북한 여자 대표팀이 우승했을 때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공항까지 나가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 유럽 프로축구 주요 경기를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해오고 있다는 것도 북한의 축구 열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마도 스포츠를 통한 주민들의 일체감 형성과 체제 선전 목적을 달성하려는 차원이라고 생각된다.

9박 10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평양 체류기간에 느낀 점은 분단 70년의 세월만큼 남과 북의 간극은 멀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금세 친해지고 우정을 나누는 남북의 소년들을 보며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아이들은 축구를 통해 서로를 이해했다. 다시는 오지 못할 귀한 경험을 쌓은 우리 아이들, 이 친구들이 통일한국을 이끌어갈 인재가 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이 보낸 열흘이 언젠가는 통일의 마중물이었다고 얘기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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