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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외교 성과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 확대
남북관계 선순환 구조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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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근혜 대통령이 9월 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른바 ‘열병식의 정치학’으로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 한중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이번 방중은 북한의 변화를 함께 이끌어내고 새로운 통일환경 조성에 기여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승절 참석의 외교적 성과와 과제를 진단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의 ‘항일(抗日)전쟁 및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이를 계기로 시진핑 국가주석과 6번째 한중 정상회담을 했고, 리커창 총리와는 4번째 만났으며, 대한민국의 법통인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 행사에도 참석했다.

관례대로라면 10년 주기로 열리는 대(大)열병식은 건국 70주년이 되는 2019년 국경절에 열리지만, 최근 일본의 행동이 동북아 국제질서의 주요 변수가 됐고 시진핑식 정치를 본격 전개해야 하는 국내정치적 필요가 맞물려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다음 날을 택해 9월 3일에 열렸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열병식의 정치학은 국내외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대체로 서구에서는 중국이 ‘군사근육’을 과시했다는 평가가 많은 반면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과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이라는 이른바 ‘두 개의 백 년’을 맞아 국내적 단결을 주목하는 견해도 있었다.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31개국 국가 정상, 20개국 정부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기구 수장 10명이 참가했다. 여기에 동원된 병력은 1만2000여 명이었고, 군용기 200여 대와 항공모함 킬러로 알려진 중거리 탄도미사일, 그리고 방공미사일 시스템과 대전차 미사일 등 중국이 자체 기술로 생산한 신형 무기 등도 선보였다. 이러한 군사력을 과시하는 속에서 56개 중화민족을 상징하는 56발의 예포와 항일전쟁 승리 70년을 기념하는 70발의 축포를 쏘아 올렸고, 청일전쟁 이후 지금까지의 기간만큼 정확히 121보를 걸어 오성홍기를 게양했다.

중국은 그러나 둥펑(東風) 계열의 차세대 전략미사일 시리즈, 중국식 차세대 스텔스기인 젠(殲)-20과 젠-31 등 최신예 전략무기 등은 대중에 공개하지 않았다. 이것은 다분히 서구사회의 중국 위협론을 의식한 것이었다. 시진핑 주석도 전승절 기념 연설에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평화발전의 길을 걸을 것이며 결코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고 30만 명의 병력 감축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우리 처지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점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다양한 논의와 토론이 있었다. 우선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즉 미국과 서방의 전통적 우방이 대거 불참한 상태에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는 유일하게 우리만 참석하는 데 따른 외교적 부담을 제기했다.

또한 중국이 ‘항일전쟁 승리’를 부각하는 과정에서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현재의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군사적 부상’에 대해 한국이 동조한다는 ‘친중적’ 이미지가 고착될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국내외의 여러 요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전승절 참석 범위와 형태에 대한 외교 협상을 전개한 끝에 전승절 전 과정 참석을 결정했다. 여기에는 우선 연간 10만 명에 달하는 인적 교류, 교역량 3000억 달러를 목전에 둔 경제관계라는 현실적 요소가 있었고,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북핵 문제와 불확실한 북한 문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도 중국의 지속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이 필요했다. 더구나 광복 70년, 종전 70년을 맞아 한국 독립운동의 주 무대였던 중국에서 양국이 이러한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기념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와 가진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통일 문제를 포함한 제반 사항을 폭넓게 논의해 성과를 거두었다. 박근혜정부와 시진핑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중관계는 정상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인문 공동체를 향한 인문 교류의 확대 등을 통해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내실화했다.

통일 과정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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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근혜 대통령이 9월 3일 오전 중국 톈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의 전승절 기념 행사에 참석해 열병식을 관람하고 있다.

사실 2008년 한중 양국은 기존의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시켰으나 전략적 내용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간 외교안보 현안을 거의 모두 제기하고 중국도 여기에 적극 화답하면서 전략적 협력 공간을 크게 확대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등 한국 정부의 핵심 외교 · 안보정책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구체적으로는 ‘의미 있는’ 6자회담이 조속히 개최돼야 한다고 합의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점은 박 대통령이 통일 기반 조성 계획을 설명했고, 한중 간 전략적 협력의 핵심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에 있다는 점을 제시했으며, 중국도 여기에 공감하고 지지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는 “한반도가 분단 70주년을 맞아 조속히 평화롭게 통일되는 것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다”는 점을 강조했고, 중국도 “한반도가 장래에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물론 한국과 중국이 국내 여론과 외교적 요소를 고려한 발표 내용에는 양국의 강조점 차이 때문에 의도적인 누락이 있을 수 있으나 박 대통령이 한중은 어려움을 함께 나눈 친구(患難之交)라고 강조하자 시 주석이 여기에 이심전심으로 화답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6자회담, 북핵 문제, 한 · 중 · 일 정상회의,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 · 중 · 일 정상회의가 재개될 경우 중국 측 대표로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리커창 총리와 만나 향후 편리한 시기에 한 · 중 · 일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고, 리커창 총리도 긍정적으로 화답했을 뿐 아니라 한국이 주장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경제협력을 고도화하기 위해 한중 FTA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김치 수입 문제나 문화콘텐츠산업 협력 등 실무적인 쟁점도 진전을 거두었다. 특히 리커창 총리는 국제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금융협력에 대한 공동 대응은 물론이고 한중 양국의 제3국 공동 진출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중 양국을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만들고 이를 토대로 아시아와 남미 등을 포함한 세계로 진출한다는 새로운 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우선 주중대사를 행사장에 보낸 미국은 “중국의 권리와 권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도전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형태의 행사가 화해와 치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고 싶다’는 속내를 조심스럽게 표현했다. 이것은 미국이 군사적 힘을 과시하는 중국에 불편함과 정치적 부담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다.

반면 점차 동아시아의 아웃사이더로 밀려난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의 반발은 좀 더 직접적이었다. 일본 정부는 항일전쟁의 역사를 강조한 중국에 대해 “중국은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으나, 일본 외무성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전승절 참석에 대해 유엔의 중립 위반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고, 일본 여론은 한국의 전승절 참석을 두고 한국의 친중국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반도 안보질서 구축의 주도권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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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승절 행사에서 공개된 중국의 첨단 무기 이룽(翼龍). 미사일 공격이 가능한 무인 정찰 공격기 이룽은 미사일 2기를 장착하고 고도 5300m에서 4000km를 날며 20시간 동안 비행할 수 있다.

한중관계는 북 · 중관계를 보는 창과 거울이다. 북한은 최용해 당비서를 파견하면서 오랫동안 단절됐던 북 · 중 간 고위급 교류의 물꼬를 텄으나 방중기간 별다른 일정과 실무회담의 성과 없이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북 · 중관계와 한중관계의 전략적 위상이 변했고 전략적 차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한국 외교가 승리했다고 자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중 · 단기적으로 한중 협력의 목적은 북한의 변화를 함께 이끌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통일환경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중관계 발전의 궁극적 목적은 북한을 자극하거나 압박하는 수단이 아니라 남북관계를 정상궤도 속에 올려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이후 다양한 양자 · 다자 간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국면을 좌우할 몇 가지 변수도 있다. 우선 9월 미 · 중 정상회담이 있었고 메르스 사건으로 연기된 한미 정상회담이 10월에 개최될 예정이다. 이후에도 아시아 ·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동아시아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이 예정돼 있다. 여기에 8월 25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어렵게 남북한이 대화를 시작했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도 재개되면서 상황에 따라서는 새로운 국면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중 · 일관계도 물밑에서 협상을 위한 대화가 시작됐다. 사실 중국도 ‘일본 때리기’가 결과적으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강화되는 역설을 낳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일본도 경제계를 중심으로 중 · 일관계 악화에 대한 피로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한국도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대해 이미 ‘절제 있는 비판’을 통해 역사와 안보문제를 분리하는 실사구시적인 접근을 시작했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은 한국 외교에서 보면 매우 새로운 시도였다. 무엇보다 전승절 행사 참석으로 한미동맹과 한중 간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사안별 선택적 지지라는 방식으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고, 하반기 한반도 안보질서를 구축하는 데 주도권을 확보했다.

또한 그동안 구체적인 정책적 접점을 찾지 못했던 지역전략에 대한 인식 차이도 좁혔다.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육상벨트와 해상 실크로드를 결합한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서로 연계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다. 상황적으로는 중국은 한반도에서 긴장 조성 행위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노동당 창당 70주년을 앞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도발 위협을 겨냥했다. 향후 과제는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거둔 외교적 성과가 국내의 다양한 여론집단으로부터 넓은 합의를 얻은 만큼 한중관계 발전을 역진 불가능한 관계로 만들 수 있는 제도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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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한국외국어대 정치학박사. 일본 나고야대 특임교수 및 중국해양대 교수 역임. 통일부 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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