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N

북한의 디자인 낯설고도 익숙한…

박승호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얼마 전 영국의 페이든 출판사가 펴낸 <메이드 인 조선(Made in North Korea)>을 펼친 한반도의 남쪽 분들이라면 세대를 불문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형식은 오래전 우리의 것이기도 해서 익숙한데, 구호들은 어딘지 낯설다. 표현 방식은 서정적인데 내용은 정치적이다.

1960~70년대를 살아온 구세대들에게는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의 구호가 담긴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아 있을 터다. 신세대들에게는 복고풍의 키치적 이미지를 차용한 그래픽 상품의 기억이 남아 있다. 분단 70년이 만들어낸 감성의 차이다.

이 책의 저자는 벽안의 외국인에게 북한을 소개하는 중국 베이징 소재 ‘고려여행사’ 대표 니컬러스 보너 씨다. 영국 셰필드대학교로부터 조경건축학 전공 교수직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북한에 대한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아예 접근성이 좋은 베이징으로 이주한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평양이 베이징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6·25전쟁 당시 미군의 융단폭격으로 초토화된 폐허를 걷어내고 세운 계획도시가 평양이다. 대동강은 도시를 가로지르며 여러 공원과 함께 놀랍도록 많은 녹지 공간을 제공한다. 초기 소비에트 스타일의 실용적인 아파트 블록과 더욱 현대적인 거리 사이에는 독특하고 독창적인 공공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의 페이든 출판사가 펴낸 <메이드 인 조선(Made in North Korea)>에 소개된 북한의 디자인들.

공연장, 영화관, 체육관, 도서관이 모두 독특한 외양에 멋진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이 책에는 우표, 포장지, 엽서, 담배와 성냥, 맥주 상표, 기차표 등 저자가 20여 년에 걸쳐 수집한 북한의 생활용품 사진 500여 장이 240쪽 분량에 광범위하게 담겨 있다. 물론 북한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사회이며 통제된 체제 아래 놓여 있다.

우리나라 역시 사진 제판 및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인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손으로 그린 단조로운 삽화풍의 이미지가 대부분이었지만, 이후 그래픽은 미술과 산업을 결합하면서 디자인이라고 하는 새 영역을 구축했다. 주제도 사회를 계몽하는 성격에서 벗어나 상품 및 관광 등으로 다양해졌고, 일러스트레이션과 사진을 결합하는 등 현대적인 기법을 활용한 새로운 감각의 실험적 시도들이 나타났다.

시대를 넘어선 동질감

우리가 근대성의 시각적 발현이라는 과제를 기술 발전과 시대정신을 통해 찾아낸 반면, 북한의 디자인은 전통 문화 및 자연 환경, 그리고 정치 선동이라는 소재주의적 접근에 머물렀다. 또한 오랜 기간 회화적이고 구상적인 표현만을 고집함으로써 시대로부터 단절됐다는 느낌을 준다. 그 때문에 새롭고 현대적인 조형언어를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월간 디자인>지 최명환 기자는 북한의 디자인은 철저히 사상적 이데올로기나 이상적 리얼리즘을 표상화하는 데 집중돼 있고, 하나의 주제를 향해 모든 것을 집약시키고 함축시켜야 한다는 문예창작이론인 종자론(種子論)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역동적인 레이아웃과 강렬한 색상, 고딕 계열 서체를 사용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정보기술(IT) 및 인쇄 기술이 상대적으로 후진성을 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발전했음을 감안하면, 사실적 이미지를 담는 방식을 수십 년간 고수하는 배경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구상적 리얼리즘은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 때문에 전달성이 높다. 관람자가 이해하려고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추상은 사유를 전제로 한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여러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주체사상 이외의 다른 것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통제사회에서 추상하고 사유하는 능력은 종교 이상으로 위험한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사실적 묘사만이 다양한 매체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이 책에 정치적 수사들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항공권, 수화물표, 식료품 및 담배 포장지, 관광엽서와 편지지, 우표 등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만 또한 쉽게 잊히고 버려지는 물건들이 20여 년의 세월 동안 소박하게 모였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가 시대를 넘어선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동심에 다시 젖어드는 느낌을 준다. 마치 지난 반세기 동안 ‘비무장지대(DMZ)’라는 접근이 통제된 생태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가 방해받지 않고 공존하는 혹은 정지해버린 시간을 마주하는 감성에 젖게 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치는 자료의 집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연결된 오래되고 익숙한 문화의 유전자를 공감하게 해준 데 있다.

카카오톡 아이콘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스토리 아이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