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에 열린 여러 정상회담들은 우리에게 많은 외교적 고민을 안겨주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과 중국, 일본 방문과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 그리고 한중 정상회담은 성공적인 면도 있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여러 고민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평가하고 우리에게 어떠한 숙제가 안겨졌는지 분석하려면, 회담에 앞서 우리가 어떤 고민을 안고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먼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고민은 한미 간에 대북정책에서 아직 완전한 신뢰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이다. 미국은 강한 압박이 북한을 조건 없이 비핵화 협상의 테이블로 나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미국의 강한 압박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지나치게 상승시켜 의도치 않은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둘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관련해 트럼프의 폐기 불사를 앞세운 강한 압박으로 지난 10월 초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라이트 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한미 FTA 개정 절차를 밟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무역 부문의 압박을 가중시킬 것이란 부담이 있었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 개인이 한미동맹에 대해 가지는 의식에 관한 문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미동맹을 미국이 한국을 보호해주는 관계로 인식했고, 그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한국이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하게 된다면 한미동맹의 관리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넷째,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사드 문제로 경색된 양국 관계를 풀기 위한 합의가 있었다. 그 합의 내용에 한·미·일 안보협력에 관한 부분이 들어 있었다. 그 내용 자체는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한 중국의 우려 표명이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반해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 실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 적절한 대응 돋보여
이러한 부분에 대해 한국 정부는 많은 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그동안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요청했던 대북 제재에 더욱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정부는 트럼프 방한 하루 전인 11월 6일 대량살상무기(WMD) 자금 활동과 관계된 북한 은행 관계자들을 추가 제재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회담 후 공동 언론발표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양국 간 대북 제재 대상 지정 조치에 있어 조화를 이루어나가고자 하는 최근 문 대통령의 노력을 환영하였다”라는 문장을 넣음으로써 양국 정부 간에 대북정책에서의 협력이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무역 부문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특별히 강한 문제가 돌출되지는 않았다.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현재 협정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미국에는 그렇게 좋은 협상은 아니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언급했다.
공동 언론발표문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상당한 규모의 대한 무역 적자를 감소시키고, 더욱 확대되고 균형되며 상호 호혜적인 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한미 FTA를 균형되게 조정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 정상은 통상 담당 관리들에게 조속히 개선된 협정을 체결하도록 지시했다”라는 부분을 넣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협의를 조속히 진행하기로 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첫 일정으로 평택에 위치한 캠프 험프리스 방문을 제안함으로써 한미동맹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식시키고 그가 계산적으로만 보는 한미동맹의 성격을 재인식시키려고 노력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관계 인식에 변화가 있는 부분이 부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많은 군사 장비와 무기를 주문했다고 들었는데 잘될 거라 생각한다”며 “이 부분에 대해 무역 적자가 해소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무기 구입이 무역수지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국 공동 언론발표문에 “대한민국이 지난 3년간 대외군사판매(FMS) 및 상업구매(DCS)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130억 달러 이상의 군사 구매를 한 점에 주목했다”라는 부분이 삽입돼 무역수지를 계산하는 데 우리의 미국산 무기 구입이 미국 무역수지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위에서 언급한 넷째 문제, 즉 미국과 일본의 전략과 관련된 부분은 나중에 대응 과정을 볼 때 우리가 다른 문제들에 비하여 대응 준비가 덜 된 것으로 보인다.
위)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7일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도착해 문재인 대통령과 병사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 나온 축하 케이크.
아래)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7일 저녁 청와대 국빈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접한 요리. 산딸기 바닐라 소스를 곁들인 트리플 초콜릿 케이크와 감을 올린 수정과 그라니타.
| 정상회담이 남긴 숙제
이러한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주었다.
첫째, 정상회담 직후 여러 언론에서 미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을 암시하는 부분이 많다고 보도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기자회견에서 직접 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보도들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통해서 저희가 기대를 하는 것은 다시는 이런 부분을 실제로 사용할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와서 우리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좋고 전 세계 시민들에게도 좋다고 생각한다.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특정한 움직임을 보고 있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두고보겠다”고 언급해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게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을 보면 대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과거 미국과 북한의 협상 사례를 언급하면서 북한과의 협상에 대해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북한 인권에 관한 문제를 구체적 사례들을 들어가며 언급했다.
이러한 언급은 북한 정권의 자국민에 대한 인권유린이 국제사회의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을 구성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북한을 협상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것으로 이해된다. 북한 인권 문제를 강하게 거론함으로써 비핵화 문제뿐 아니라 인권 문제까지 해결돼야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될 수 있다는 조건을 언급한 것으로 보여 더욱 강한 북한 봉쇄에 돌입할 것을 예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7일 경기 평택시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를 찾아 병사식당에서 장병들과 점심을 먹고 있다.
아울러 전 국제사회가 북한을 고립시킬 것을 강하게 주장한 것은 우리 정부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정부가 현재의 압박 위주 정책에서 다른 정책 기조로 방향을 바꾸고자 할 경우 미국 정부와의 충돌이 예상된다.
둘째, 우리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한 노력은 원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공동 언론발표문에는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관련 공평한 비용 분담이 바람직함을 인식하면서, 대한민국이 주한미군 평택 기지 확장에 90억 달러 이상을 기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양 정상은 다가오는 방위비 분담 협상 등을 통해 동맹의 연합 방위태세와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가기로 했다”는 원칙적 부분에 대한 양국 정상의 인식을 담았지만,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저희도 많은 부분을 지출했다. 이 부분은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지출한 것이다.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부는 비용을 저희가 부담했다라는 부분도 말씀드리고 싶다”고 언급해 그의 인식이 바뀌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앞으로 미국 정부의 강한 압박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 불확실한 ‘인도·태평양’ 개념
마지막으로 문제가 된 부분은 공동 언론발표문에 들어간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신뢰와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공동의 가치에 기반을 둔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핵심 축임을 강조했다”라는 부분이다. 조현 외교부 2차관은 이와 관련해 “정부로서는 충분히 논의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인도·태평양 개념은 아직 확실하게 다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청와대가 전날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고자 발표한 것과 차이가 있다. 청와대는 “미국이 새로 제시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개념은… 공동의 전략적 목표를 추진해나가는 데 적절한 개념인지 좀 더 협의가 필요하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한미 공동 언론발표문의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라는 부분을 우리가 한중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모호하게 남겨두기보다 먼저 논란으로 만든 점은 아쉬운 점으로 평가된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가 ‘재균형(Rebalancing)’으로 개념적 진화를 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역시 아직 개념적으로 확정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그러한 주제를 먼저 이끌고 나갈 처지가 아니라면 오히려 이러한 부분에 대해 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 나은 방책일 수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