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0월 7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참가자들과 함께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2018년 북한의 권력지도 최룡해 등 신진세력 급부상
6년 만에 유일지도체제 확립

지난 10월 7일 북한 노동당은 제7기 당중앙위원회 제2차 전원회의를 개최해 대폭적인 권력 엘리트 교체를 단행했다. 김정은 정권의 외양이 정비돼가는 모양새다. 변화된 권력 지형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자.

북한의 변화된 권력 지형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권력 분점을 용납하지 않는 유일영도체제의 재건이다. 김정은의 권력 독점체제는 잠재적 도전요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인적, 조직적 거점을 분쇄하면서 성립됐다. 특히 군에 대한 견제는 강력했다. 이영호, 현영철 등 군 원로들에 대한 잔혹한 숙청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다양한 죄목으로 지금까지 인민무력상은 6명, 총참모장은 5명째 교체됐다. 빈번한 교체와 불명예 좌천으로 군의 권력 거점화를 사전 차단해온 것이다.

올해 초 김정은 공안통치의 최선봉장 역할을 맡아온 국가보위상 김원홍의 강등·해임과 다수 고위급 보위성 간부들의 처형은 권력 조직의 무해화(無害化) 방역(防疫)조치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김정은 시대 최측근 그룹으로 부상한 삼지연 8인방 일원인 김원홍의 해임은 반복된 숙청 과정 속에서 권력을 집적해온 보위성에 대한 견제와 조기방역이 주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 총정치국장 최룡해 주도하에 20년 만에 이뤄진 군 총정치국에 대한 조직지도부의 대대적 검열, 그리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출신으로 김정은과의 지근거리에서 세를 떨치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보위상에서 해임된 후 총정치국부국장으로 좌천됐던 김원홍에 대한 처벌·경질설은 잠재적 권력 거점기관에 대한 사전 방역작업의 또 다른 사례가 북한에서 발생했음을 알려준다.

| 당의 귀환과 조직지도부

둘째, 유일지도체제 재건의 중추 기제로서 당의 위상 재구축이다. 김정은 세습 후 유일체제 확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사·조직 개편과 주요 국가 정책에 대한 결정은 당대회 및 당대표자대회,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그리고 정치국 회의와 같은 당 의결기구를 통해 처리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을 통한 김정은 수령체제의 재건은 결국 유일독재 옹호의 핵심 조직인 조직지도부와 수령 우상화의 돌격대인 선전선동부의 위상 강화로 직결된다. 특히 당 안의 당이자 그림자 권력인 조직지도부는 공포·숙청정치를 기획·지휘하며 김정은 유일지도체제 구축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김정은의 권력 독점이 강화될수록 조직지도부의 권위가 강화되는 공생·공조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장성택 숙청은 행정부 전면 해체, 조직지도부로의 기능 이관과 조직 합병으로 이어졌다. 올해 김원홍 보위상 해임과 보위성 고위간부진 숙청도 조직지도부의 진두지휘하에 진행됐다. 대대적인 인적 교체와 기관 방역 이후에도 보위성의 권한 축소 및 당적 통제 강화 등 후속조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지도부 주요 간부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조직지도부 신구 세대 대표주자 김경옥과 조용원은 권력 엘리트들의 잦은 숙청과 부침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연준, 조용원과 더불어 조직지도부 중추 세력이자 김정은 ‘비선실세’ 삼인방 중 한 명으로 지목된 박태성은 평남 도당위원장을 거쳐 10월 전원회의에서 정치국위원으로 승진하며 중앙당으로 복귀했다.

김정은 집권기 북한 노동당 주요 회의

* 자료 : 통일부

개최회의 일시 주요 결정사항
당대표자대회 2012. 4. 11 김정은 당 제1비서로 추대
정치국 회의 2012. 7. 15 이영호 총참모장 숙청
중앙위 전원회의 2013. 3. 31 핵·경제 병진노선 채택
정치국 회의 2013. 12. 8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및 당 행정부장 숙청
중앙군사위 회의 2015. 8. 21 목함지뢰 사건 관련 인민군 총참모부의 군사행동 최후통첩 결심 승인
당대회 2016. 5. 6~9 김정은 최고 수위 당위원장 추대, 대대적 인사 및 조직 개편

북한식 권력정치에 대한 학습이 축적되면서 김정은도 조직지도부에 대한 의존을 줄이며 견제코자 하는 경계의식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그간의 숙청 사건들을 막후 지휘하며 장성택, 현영철, 김원홍 등 거물 원로들을 제거·제압함으로써 핵심 실세로 자리매김해왔던 조연준 제1부부장을 당 검열위원장에 임명하는 사실상의 좌천성 인사를 단행했다.

더욱이 국가정보원 국회 보고에 따르면, 올해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부상한 최룡해의 조직지도부 부장 겸직이 추정된다고 한다. 조직지도부에 대한 감독 강화를 원하는 김정은의 속내가 읽혀진다. 그러나 견제가 강화되더라도 조직지도부의 위상과 권한 자체가 약화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당 중심으로 재구축된 유일지도체제의 효과적 통제·관리를 위해서는 김정은과 조직지도부 간 공생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 김정은 시대 파워엘리트

셋째, 김정은 유일체제 확립을 위한 권력 엘리트 재구성이다. 먼저 김정은 정권은 엘리트 반란 지도부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을 갖춘 원로세력을 숙청과 해임으로 일소했다. 대상자 선정의 관건은 실제 거사 기도나 의지가 아니라 잠재적 능력 보유 여부이다. 이에 따라 김정일 시대 최고 엘리트이자 김정은 세습 초반 후견세력으로 위세를 떨쳤던 운구차 7인방(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이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김기남 선전선동부장,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은 모두 사라졌다.

이 밖에도 김정은 정권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용진·최영건 내각 부총리,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등 최고위급 간부 140여 명을 처형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남의 암살도 유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김정일의 장남이라는 혈통적 정통성은 김정은 유일독재에 대한 잠재적 위협요소이자 제거 대상으로 간주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설령 숙청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해도 기다리는 것은 빈번한 회전문 인사 교체, 예측 불가능하게 행해지는 평양·지방 간 및 조직·직무 간 수시 이동, 수직 상승과 좌천, 일상화된 감시와 규율, 국내 추방과 혁명화재교육 등 가혹한 정치공학적인 길들이기 공정 과정이다. 끊임없는 부침에도 복종과 충성심을 증명해낼 경우, 생존과 재등장이 가능해진다.

노동신문에 게재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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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가장 성공적인 적응을 보여준 인물은 최룡해다. 2014년 실각과 더불어 혁명화교육까지 거쳤던 최룡해는 지난해 당대회를 기점으로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 6개 직함을 가지고 부활했다. 올해 전원회의에선 당군사위원회 위원과 전문부서(조직지도부로 추정) 부장 등 2개 직함을 더하며 명실상부한 당 서열 2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간부 대상 무해화 공정은 측근도 피해갈 수 없다.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청년수령 김정은 이미지 창출에 공을 세우며 기린아로 각광받던 최휘도 하방 처분을 받아야 했다. 이후 지방(함북)당 부위원장으로 복귀한 최휘는 10월 전원회의를 통해 정치국 후보위원 및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중앙 정계에 돌아올 수 있었다.

10월 8일자 노동신문이 게재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 화보.

신세대나 주변부적 인물을 발굴하거나 믿을 만한 직계가족을 파격적으로 등용하는 것도 친정체제 강화 방안의 하나이다. 주변의 질시와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생존 수단은 절대적 충성심으로 김정은과의 연결고리를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월 전원회의에서는 최고위급으로 진입한 신진세력의 부상이 눈에 띈다. 당 중앙위 부위원장, 정치국 위원, 전문부서 부장(선전선동부장 추정) 등을 겸직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박광호가 대표적이다. 김정은의 친여동생 김여정이 그간 선전선동부 부부장직을 수행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부서 부부장으로 일했던 박광호의 파격 승진에 일정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거에 정치국 후보위원과 군사위 위원 자리를 차지하며 김원홍을 대체해 보위상에 취임한 것으로 알려진 정경택, 군사위 위원과 정찰총국장에 임명된 장길성 상장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 술탄체제적 정치공학

가중되는 국제 대북 제재와 대외적 고립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정책 트레이드마크인 핵·경제 병진노선을 고수해낸다면 김정은의 권력 독점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관련 전문가집단 중용은 친정체제 강화를 위한 당연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중화학공업 전문가이자 최고 경제통으로 각광받다 은퇴했던 81세 태종수를 재소환하는 한편, 안정수 경공업부장을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승진시켰다.

핵·미사일 개발 주무부서 군수공업부의 제1부부장 이병철을 당 군사위 위원으로 격상시켰으며 김정식, 홍승무, 홍영칠 등 동 부서 부부장들과 이홍섭 핵무기연구소장 등 핵 개발 유공자들도 중용되고 있다. 국제사회에 맞서 핵외교를 지휘해온 이용호 외무상도 이번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시켰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비해 더욱 가혹하고 다양해진 술탄체제(Sultanistic Regime)적 정치공학을 동원해 김정은 정권은 빠른 시간 내에 유일지도체제를 재건축해냈다. 그러나 외견상 강고해 보이는 김정은 수령독재는 사실상 전 시대에 비해 취약해진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인적 독재, 권력 독점체제의 유지에 방점이 찍힌 기관 및 간부관리에 대한 정치공정은 일관성 및 전문성이 결여된 정책 실패, 그리고 비생산적인 데다가 정치화된 관료집단의 고질적 부패와 책임 회피로 귀결되며, 결국 국가의 생존 능력 자체를 격감시키게 된다.

더구나 김정은 시대 파워엘리트들은 선대 시대와 달리 견고한 이념이나 전쟁 등의 극한 체험의 공유를 통해 다져진 끈끈한 동지애로 결합된 집단으로 보기는 힘들다. 인위적으로 양산되는 권력정치의 정글 속에서 생존과 실익을 추구하는 원자화된 개인들로 구성된 이익공동체에 가깝다.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체제 내부 균열로 조각날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는 핵무기 개발 강행정책이 북한의 국제적 고립과 위기 상황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형상의 유일지도체제 재확립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안정성을 쉽게 속단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진하 김진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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