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이탈리아 하원 의회에서는 ‘북한 인권에 관한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집권 민주당 출신 미셀레 니콜레티 하원의원이 상정해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유럽 개별 국가 의회에서 대북 비난 결의안이 채택된 것은 이탈리아 하원이 최초다.
결의문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새로운 핵실험을 엄중 규탄하고 추가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고, 북한의 인권 위반 행위를 비판하면서 북한 정부가 최대한 빨리 중대한 인권 침해와 사형(숙청)을 중단하고 정치범 수용소를 폐쇄하도록 국제사회가 개입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30여 년간 활동해온 박상균(70) 이탈리아지회 회장은 “유럽연합(EU) 국가 중 북한과 가장 먼저 수교를 한 이탈리아는 지금도 사회당과 공산당이 북한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며 “이를 고려할 때 공식적으로 북한 문제가 이탈리아 의회에서 논의됐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밀라노 한글학교가 주최한 ‘우리는 통일을 바래요’ 전시회.
“이탈리아지회는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총영사관과 협조해 북한 인권 탄압 사진전을 지속적으로 개최했습니다. 사진전은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죠. 이런 일련의 노력이 오늘날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지역에서의 통일 운동은 그의 지난날과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3년 이탈리아로 건너와 피렌체대학에서 르네상스 문예부흥 및 문화사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박 회장은 민주평통 중부유럽과 중동·아프리카 지역이 하나의 협의회로 묶여 있을 때 협의회장을 지냈다.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다가 2015년 17기 이탈리아지회장으로 임명되면서 ‘컴백’했다.
“민주평통을 잠시 떠나 있었을 때도 이탈리아 사회에서 한반도 통일 문제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의사, 변호사, 회계사, 공증인, 사업가 등 전문 직업인들로 이뤄진 이탈리아 지도층 사회(로타리클럽, 라이온스클럽 등)를 접촉하는 한편, 이탈리아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한인교회가 위치한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선 시장을 중심으로 한국 전통 문화와 북한 인권 문제를 엮은 행사를 일주일 단위로 선보였고요. 그때 깨달았죠. 통일 사업의 핵심은 현지인을 대상으로 인권 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란 걸요. 아울러 이탈리아 지역 주민 맞춤형 통일 사업의 효과가 매우 크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한국인 입양아 가족 단체 초청 만찬.
‘밀라노 한글학교’ 2세 교육의 장 역할
박 회장이 애착을 갖는 통일 사업 중 하나가 밀라노 한글학교다. 1985년 밀라노 한글학교를 설립한 그는 초대 학교장을 맡았다. 밀라노 한글학교에선 매해 각종 행사와 전시회를 열어 이탈리아 지역사회에 한반도 평화통일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올 3월 밀라노 총영사관에서 밀라노 한글학교 학생 83명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제작한 저금통과 사행시를 모아 ‘우리는 통일을 바래요’라는 전시회를 일주일 동안 진행했어요. 영국에 본부를 둔 탈북단체인 국제탈북민연대 김주일 사무총장을 밀라노 한글학교로 초청해 북한 어린이 인권 문제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도 가졌죠. 밀라노 학교가 ‘2세를 위한 교육의 장’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입니다.”
지난해 10월 17기 해외지역회의에 참여한 모습.
이탈리아 한인사회 주재교민은 7000여 명에 불과하다. 작은 공동체이지만 비교적 단합이 잘 이뤄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탈리아지회는 정기적으로 한인 교민들과 함께 이탈리아의 한국인 입양아 가족을 초청해 만찬을 갖고, 8개 한인교회를 주축으로 형성된 밀라노 목회자협의회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구국기도회를 개최한다. 이는 한인 교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교민의 숫자가 적은 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인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18기 민주평통 이탈리아지회 임원진이 한글학교, 한인교회 등 한인단체와 협력하고 지역 민주평통이나 북한 연구기관과 자매결연을 해 교류한다면 이를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