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강생 중 한 명한테서 문자가 왔어요. 곧 전기기사 자격증 시험을 보는데 많이 떨린다고요. 배운 대로만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해줬죠.”
기술직업학교 강사로 근무 중인 강철 씨는 2003년 한국에 입국했다. 1999년 탈북하기 전까지 그는 북한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노동자였다.
“스무 살 때 처음 공장 생산라인에 취직해 일을 시작했어요. 손에 기름때를 덜 묻히고 싶어 전기를 공부했고, 그때부터 쭉 전기 전문가의 길을 걸었죠.”
9년 동안 전기 업무에 종사한 강 씨는 한국에 와서도 자신의 경력을 십분 살렸다. 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여가시간은 줄이고, 오로지 자기계발에만 몰두한 덕분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 제 나름대로 로드맵을 세웠어요. 1년 정도 건설 현장에서 시공 일을 하며 현장을 익힌 뒤, 공부를 하고 전기 관련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죠. 그 순서를 차근차근 밟았고 2007년에 직업훈련교사로 취직했어요.”
일명 ‘노가다’라 불리는 건설 현장 일이 고되지 않았냐고 묻자 “세상에 공짜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오히려 북한의 건설 현장과 비교하면 편하기까지 했다고.
“한국은 원하는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공사가 지체될 일도 없죠. 지금도 가끔 현장에 일하러 가는데, 힘든 건 모르겠어요.”
현장 분위기를 터득한 강 씨는 이후 수원과학대 전기과에 입학했다. 등록금 문제로 4년제 대학 대신 전문대를 지원한 그는 주중에는 수업, 주말에는 자격증 공부에 매진했다. 그가 취득한 전기 관련 자격증만 6개에 달한다.
“주말에는 자격증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어요. 공짜로 수업을 듣는 대신 학원 청소를 했죠. 그렇게 공부한 끝에 2006년 11월 6일 전기기사 1급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는데,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강 씨는 지난해부터 서울 둔촌동에 위치한 한 직업훈련학교에 강사로 출근하고 있다. 그 전에는 수원에 있는 직업훈련학교에서 9년 가까이 일했다. 그가 가르치는 수업은 전기공사 실무과정. 노동부와 교육부가 시행하는 직업훈련 과정의 일환이다.
“수원에 있을 때는 15세부터 65세에 해당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했어요. 서울로 옮겨와서는 주로 실직자들을 대상으로 전기 관련 전문 기술을 가르치고 있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을 하고, 그 후엔 행정업무를 처리하다 퇴근합니다.”
1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의 휴대전화에는 수백 명의 연락처가 새로 저장됐다. 일반 탈북민들의 사교 반경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인맥은 꽤 넓은 편이다.
“제가 가르친 학생들만 1000명 정도 될 거예요. 물론 처음부터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된 것은 아니었죠. 거리감도 있었고 서먹한 때도 많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농담도 하고 자연스레 친해졌어요.”
호형호제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아직은 강단에 선 탈북민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는 수강생도 있다. 한번은 학생의 신고로 노동부에서 조사를 나온 적도 있었다.
“제가 탈북민이라고 먼저 밝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말투가 다르니까) 그냥 외국인이라고 하고 넘어가죠. 한번은 수업 중에 노동부 직원이 조사를 나왔어요.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수업을 한다는 신고를 받았다고요. 주민등록증 검사까지 한 씁쓸한 기억이 있어요.”
강철 씨가 수업을 수료한 수강생들에게 수료증을 건네고 있다.
한국은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지는 사회
수업 내용을 알아듣기 어렵다며 화를 내는 수강생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상대를 탓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가끔 제 말을 못 알아듣겠다며 화를 내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그분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그럼 이해 못 할게 없어요.”
긍정적인 데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강 씨는 탈북민에 대한 선입견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오죽하면 별명이 ‘반장님’일까.
“처음엔 직업훈련학교 동료 강사들도 저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달라지더라고요.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 저도 동기부여가 되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보다 10분 일찍 출근하고 10분 늦게 퇴근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맨주먹으로 탈북해 노력만으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온 강 씨는 이제 인생을 즐기며 살 법한데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목표를 계속 세우지 않으면 발전이 없어요. 안주하는 순간 도태되는 건 시간문제니까요. 한국 사회는 제게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사실을 알려줬어요. 남들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을 경주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