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6월 24일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시범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6월 24일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시범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도적 지원은
평화와 통일로 이끄는 다리

최근 정부는 몇몇 인도적 지원단체의 북한 주민 접촉과 방북을 승인하는 등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남북 교류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한층 발전된 교류와 협력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

“4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 우리는 거리 말고 마음으로 북녘을 먼 곳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한반도에 너무 진하게 선이 그어져 있어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먼 곳이라고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열한 명의 작은 출발로 굳게 닫힌 평화의 문이 아주 조금 열린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많은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야 되지만 그 문이 활짝 열려 우리 모두가 환한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8월 15일, 북녘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꼭 서울에 놀러 왔으면 좋겠습니다.”

2004년 6월 ‘평양 어깨동무어린이병원’ 준공식에 참가한 어린이의 말이다. 어린이로서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어린이가 전한 소망이다. 13년이 지난 지금, 그 어린이는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북의 어린이들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남북은 교류협력의 문에 빗장을 굳게 걸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 기조로 ‘제재와 대화의 병행’을 밝혔다. 북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우리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몇몇 인도적 지원단체, 종교단체, 사회단체의 북한 주민 접촉을 승인했고, 일부 단체의 방북도 승인했다. 민간단체들이 먼저 북과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을 시작하자는 새 정부의 구상이 표명된 셈이다. 정작 북은 우리 측 단체의 방북을 연기하고 있어 남북이 엇박자로 가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6월 하순에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북한 시범단이 참가했듯 남북 간의 교류는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10년 가까이 닫혀 있던 남북 교류가 빠른 시간 안에 활발해지기를 바라는 조급증이 아니라 적합한 준비와 차분한 조율이 필요한 때이다.

남북 교류협력을 민간 차원에서 보면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개발 지원을 포함해 남북 주민이 공동으로 하는 문화, 관광, 보건의료, 체육, 학술, 경제 등에 관한 모든 활동을 말한다. 필자는 1996년 무렵부터 20여 년 동안 북한 어린이를 위한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 교류에 참여하고 있다. 필자의 지난 경험을 성찰하면서 더 개선된 교류와 협력을 위해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2008년 마지막 금강산 관광객들을 북한 안내원들이 배웅하고 있다. 2008년 마지막 금강산 관광객들을 북한 안내원들이 배웅하고 있다.

소통 통해 한반도 평화 비전과 공감대 만들기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지난 20년을 성찰해 변화를 모색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비전을 세우고 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남북 교류협력의 성과를 살펴보면, 우선 북한 주민의 희생과 고통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량이 절박하던 1995년부터 2000년 사이의 지원은 북한 주민들이 고비를 넘기는 데 심리적, 실질적 도움이 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 확대된 개발 지원은 북한의 생활 인프라와 지역 인프라를 회복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남북은 서로 적대감을 줄이고 동질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고, 남녘의 시민사회는 남북관계에 작용하는 하나의 축으로 성장했다. 처음엔 의혹과 불신으로 남한 단체들을 바라보던 북한 당국의 입장이 신뢰와 협력의 방향으로 변화되었고, 지원 물자를 받고 남녘 시민들의 도움을 알게 돼 삶의 안도감과 희망을 되찾았다는 북한 주민들의 증언도 보고되고 있다. 민간의 대북 지원은 인도주의를 실현하고 동포애를 회복함으로써 남북관계가 양측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동시에 남한 내에서는 이념 대립이 부각되고 갈등이 증폭됐다. 분배 투명성과 전용에 관한 논란이 가장 크게 문제가 되었다. 분배 투명성 논란이 사실 확인의 문제보다는 ‘퍼주기 논란’ 등 정서적 갈등으로 증폭되면서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남남갈등이 나타났다. 하지만 식량과 물자 전용에 대한 의혹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근거는 제시되지 못했다. 전용 의혹을 계속 제기하던 미국 의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용을 입증할 어떤 증거도 없다는 세계식량계획(WFP)과 전문가들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2004년 6월 ‘평양 어깨동무어린이병원’ 준공식에 참가한 어린이들과 북녘 어린이들이 만나는 모습. 2004년 6월 ‘평양 어깨동무어린이병원’ 준공식에 참가한 어린이들과 북녘 어린이들이 만나는 모습.

특히 민간단체의 경우 사업에 필요한 물자만 공급하고 지속적으로 현장을 모니터링하기 때문에 전용의 소지는 사실상 없다. 인도적 지원이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우리 정부의 지원이 북한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는 통계로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통일연구원이 발행하는 <통일정책연구>에 따르면 정부 지원이 북한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이후 10년 동안 연평균 3%이고, 민간 지원의 비중은 같은 기간 연평균 1.3%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상회담 대가’란 의혹이 불거진 대북 송금 등의 시행착오는 재발되지 않도록 인식의 전환과 절차의 정비가 필요하다.

과거 사례의 공과를 살펴보면, 좋은 목적을 추구하는 대북사업일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를 통해 지지를 획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남북 교류협력이 본격적으로 재개되고 향상되려면 그 목적과 방안에 대한 소통이 선행되고 지속돼야 한다. 소통과 의견 수렴 과정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만큼 교류와 협력이 진전되고 발전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원과 교류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유혹과 대통령 임기 안에 성과를 내려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민사회는 교류와 협력에 요구되는 자율 역량을 신장하는 동시에 책무성과 전문성을 확대해야 한다. 민관이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비전을 세우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면서 남북 교류가 진행돼야 한다.

남북 교류와 협력의 방향

남북 교류와 협력에 관한 우리 사회의 소통은 주요 방향에 대해 공감하고 구체적 실행 방안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소통을 통해 합의해야 할 주요 방향을 몇 가지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북 협력의 목적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공감해야 한다. 그 목적은 단일하지도 않고 획일적일 필요도 없다. 평화통일을 추진한다는 헌법 정신, 동포애의 회복,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대한 인도적·도덕적 의무, 북한 주민들의 인권 존중,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 남북의 상호 이해 촉진 등 다양한 목적이 있으므로 목적의 다원성에 대한 소통과 존중이 중요하겠다.

둘째, 가장 취약한 집단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긴급구호 방안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유엔 북한전략계획’에 따르면, 2012년 현재 북한 아동의 28%가 만성 영양장애, 4%가 급성 영양장애, 15%가 저체중, 그리고 2%가 빈혈을 겪고 있다. 가임기 여성들 중에는 31%가 빈혈, 25%는 태아 발육 부진을 겪고 있다. 이들의 고통에 공감해 ‘모자 패키지 1000일(태아기의 270일과 출산 후 두 살까지의 기간)’ 사업, 영양 공급, 보건위생 증진 등 생존에 필요한 지원 방안이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

셋째, 긴급구호와 개발 지원의 병행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인도적 지원은 긴급구호, 복구, 사회개발 지원 3단계로 구분된다. 취약집단에 대한 긴급구호, 자연재해 등의 복구와 더불어 사회개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식량 지원은 긴급구호에 속하지만 장기적으로 식량 증산을 위한 개발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미국 농무부(USDA)의 2015년도 연례보고서는 2025년에는 소득 불평등과 분배 불공정으로 말미암아 북한 인구의 약 50%, 즉 130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유엔 하루 권장 칼로리인 2100칼로리를 섭취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한다.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한 비료를 실은 차량이 북한으로 가고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한 비료를 실은 차량이 북한으로 가고 있다.

개발 지원의 두 축은 인프라 구축과 지역 인적 자원 육성인데, 북한도 이 분야에 대한 수요를 밝히고 있으므로 중·장기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과거 정부와 민간단체가 협력해 영·유아 지원, 보건의료 지원, 농업 개발, 산림 복구 등의 개발 지원을 진행하며 축적한 사업의 전문성과 지역 접근성을 활용할 수 있겠다. 유엔 북한전략계획 또한 지원의 우선순위로 식량과 영양 보장과 더불어 사회 개발을 꼽고 있으므로 국제 협력도 필요하다. 개발 지원은 북한 주민들의 자생력과 복원력을 증진해 통일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넷째, 지원과 교류, 협력에 다양한 시민, 특히 차세대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개발 지원 단계에 들어서면서 남북의 전문가들의 공동 작업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협력 과정에서 적합한 분야를 발견하고 경제 협력으로 발전된 경우도 여러 건이 있다. 남북의 교류와 협력은 공존과 공생을 위한 실용적 목적의 추구가 우선돼야 한다. 특히 어린 세대와 젊은 세대들은 남북 갈등만을 경험했으므로 남북관계에 새롭게 관심을 갖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과학기술, 보건의료 분야부터 시작하고 문화, 예술, 체육 분야로 교류와 협력이 진화하는 방안을 기획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시민 참여 기회 확대해야

마지막으로 교류와 협력은 입법과 제도화를 통해 뒷받침돼야 한다. 우선 공론화를 통해 지원과 교류에 대한 사회협약 등을 마련하고, 관련 법들을 정비하고 제정해야 한다. 규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촉진을 취지로 한 입법이 필요하다. 제도 정비도 따라야 한다. 특히 유명무실해진 ‘민관정책협의회’가 재가동돼야 하고, 지원과 방북의 절차마다 정부 승인을 받는 방식은 자격 요건을 충족할 경우 포괄승인제 등으로 전환돼야 한다.

교류와 협력, 특히 인도적 지원은 새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제재와 대화를 연결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로 이끄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때이다.

photo 이 기 범
사단법인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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