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통일 염원을 안고 비무장지대를 횡단하는 행사를 갖는 한국스카우트연맹 청소년들이 한반도기를 중심으로 풍선을 날리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통일 염원을 안고 비무장지대를 횡단하는 행사를 갖는 한국스카우트연맹 청소년들이 한반도기를 중심으로 풍선을 날리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단계적·포괄적 북핵 해법 통해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만든다

새 정부는 북한의 전략적 도발을 저지하면서, 단계적·포괄적 북핵 해법에 따라 비핵화를 추진하고 평화를 정착시켜야 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여건은 녹록지 않다.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과 당면한 문제들을 짚어보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안보 논쟁은 치열했지만 통일 담론과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북한의 6차 핵실험설과 미국의 선제타격설 등 ‘4월 위기설’이 나오면서 통일·대북정책과 관련한 쟁점은 부각되지 않았다.

대선 과정에서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으로 이름 지어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튼튼한 안보와 국민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며 ‘남과 북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함으로써 사람과 물자가 오고가는, 한반도 전체가 더불어 잘사는 생활공동체를 이루도록 하려는 계획’을 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통일 구상은 ‘하나의 시장을 바탕으로 경제적 통합을 먼저 이뤄낸다면 사회적 통합과 정치적 통일로 나아가는 길도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은 ①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통일 ②남북 협력의 법제화와 한반도 비핵화 합의 ③남북이 함께 잘사는 경제 통일 등 세 가지 차원의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 협력을 통해 8000만 민족 모두가 인권과 복지를 보장받아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다. 이 구상은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실현해 남북 경계선과 한반도를 넘어 대륙으로 경제 영토를 확장하고 번영의 공동체를 만들어 안보 위기, 외교 위기, 경제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선도하는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은 ‘남북한의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고 점진적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 통합을 먼저 추진해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통일의 기반으로 해서 정치적 통일을 이루도록 한다는 것으로 기능주의 통합론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보수 정부의 급변사태론과 빠른 통일론을 극복하고 헌법 정신에 따라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대화 창구 조속히 마련해야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새 정부는 북한의 전략적 도발을 저지하면서, 단계적·포괄적 북핵 해법에 따라 비핵화를 추진하고 평화를 정착시켜야 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여건은 녹록지 않다. 북핵 고도화에 따른 유엔 안보리 제재 등으로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여건도 좋지 않다. 이명박 정부 시기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천안함 폭침과 5·24 조치, 연평도 포격,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기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남북관계는 완전 단절됐다. 제재와 압박 이외에 새 정부가 사용할 대북 지렛대가 모두 사라져 북한 핵 개발 중단과 포기를 전제로 한 남북관계 대화 통로를 마련하는 데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안보리 제재와 함께 미국, 일본, 중국 등이 양자 제재를 가하면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어 한국의 새 정부가 제재와 압박 효과를 떨어뜨리는 독자적 행동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새 정부는 대북 제재와 대화의 병행 추진이란 기조 아래 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추가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남북 연락채널 복원 등 대화 창구를 조속히 마련하고 상황 관리를 하면서 남북관계 복원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돼 있었고, 물려받은 숙제가 많아 남북관계 재설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등 현안의 대부분이 북핵 문제와 연계돼 있어 한·미·중 공동의 북핵 해법을 마련하고 비핵화 프로세스를 본격화해야 남북관계 복원도 원활해질 것이다.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5·24 조치 해제, 사드 배치 등의 현안들은 새로운 북핵 해법의 범주에서 포괄적 의제로 다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재와 대화의 병행 추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정책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서두르고 있어 한·미·중의 대북정책 공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한·미·중 사이에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 존재하는 몇 가지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북핵 불용의 원칙에 한·미·중의 확고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 비핵화가 공동의 이익이라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핵 불용의 원칙을 천명해왔다.

둘째, 북핵 해결의 시급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기다리는 정책과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펼쳐지는 동안 북한 핵·미사일은 고도화됐고, 이제는 미국의 안전을 위협할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통제 가능한 위협’으로 보고 ‘북한위협론’을 대중국 전략으로 활용했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고 해결을 서두르고 있다.

셋째, 미국과 한국이 북한붕괴론에서 벗어나고 있다. 북한이 붕괴하면 핵 문제도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낙관적 기대는 중국의 협조를 받기 어려웠고,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사실상 ‘방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북핵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는 반성 아래 김정은 정권의 교체나 북한 붕괴를 목표로 하지 않고 북핵 해결에 초점을 맞춰 해결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5월 21일 발사된 북한의 신형 고체연료 미사일인 북극성-2형. 차량 등에 싣고 다니다 언제 어디서든 발사할 수 있다. 지난 5월 21일 발사된 북한의 신형 고체연료 미사일인 북극성-2형. 차량 등에 싣고 다니다 언제 어디서든 발사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핵 조기 해결에 대한 한·미·중의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해법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선핵폐기론보다는 ‘9·19 공동성명’에 따른 동시행동 원칙과 단계적·포괄적 해법을 선호하는 데 비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선행동을 전제로 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선비핵화론을 수정해 ‘선 고도화 방지, 후 폐기’로 북핵 해결의 수순을 정하고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최종 목표로 한 단계적·포괄적 북핵 해법을 제시했다. 따라서 북핵 고도화를 막기 위한 동결 조치와 평화협정의 전 단계인 평화선언, 종전선언 등을 연계한 포괄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2017년 4월 9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미·중 정상회담 상황 통보’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에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쌍궤병행(雙軌竝行,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한과의 평화협정 협상)과 쌍중단(雙中斷,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제안하고 회담 재개의 돌파구 찾기를 희망했다. 이와 같이 한국과 중국이 제재와 대화의 병행을 선호하는 데 비해 미국은 대화의 가능성은 열어두되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를 강조하는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체제 전환, 정권 교체, 급진 통일, 무력 침공 등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4노(No) 방침’을 밝힘으로써 북핵 해결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고 대타협(그랜드 바겐)의 기회도 열려 있다. 과거 경험에 의하면 한국이 포괄적인 북핵 해법을 만들고 주도적인 역할을 행사할 때 비핵화에 진전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관련 국가들의 이익의 공통점을 찾아 포괄협상안을 만들고 비핵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해결 과정에서 ‘한국역할론’, ‘동시행동론’,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 노력의 병행 추진’ 등을 강조하고,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북한의 변화를 전략적으로 견인해내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6·15 남북 정상회담 17주년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단계적·포괄적 접근의 입구를 열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전략적 도발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핵화 협상의 입구를 열어야 비핵화의 중간 단계인 동결을 위한 포괄협상안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선비핵화론을 넘어 단계별 포괄해법 모색

북한은 핵무기를 수령체제 유지를 위한 ‘만능의 보검’으로 여기기 때문에 완전한 핵 폐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는 평화체제 구축은 6·25전쟁 이후 현재까지 오랜 기간 구조화된 분단체제라는 질서로 고착화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는 지난한 문제다. 따라서 북핵 고도화를 막는 동결 조치를 먼저 취하고,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노력과 함께 신뢰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그동안 보수 정부는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고 하면서 평화체제 구축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선핵폐기론에 따라 제재와 압박 위주로 일관하다가 북핵 고도화를 사실상 방치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핵능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 기초해서 당위론적 선비핵화론을 넘어 실현 가능한 단계별 포괄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핵을 가진 자와도 한쪽 손을 잡고 다른 쪽 손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북핵 해결 노력과 함께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전략적 관여정책’도 병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가 취하고 있는 제재와 압박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들의 남북 교류협력을 확대하면서 북한의 시장화, 개방화, 국제화를 촉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억지, 대화와 협상, 평화적 이행전략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photo 고 유 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학연구소장

카카오톡 아이콘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스토리 아이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