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공약을 살펴보면 민족 공동체 회복을 강조하고 있지만 더 이상 민족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민족의 개념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배타적인 개념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젠더, 소수자, 다양성, 평등의 가치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6월 2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층 회의실에서 ‘평화로운 한반도와 통일을 위한 추진과제’를 주제로 열린 통일·북한 관련 전공 대학원생 토론회. 1부 발제를 맡은 서울대 사회학과(박사과정) 노현종 씨가 ‘21세기 바람직한 남북 공동체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민족 공동체에 대한 날카로운 화두를 던지자 일순 장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행사는 평화로운 한반도와 통일을 위한 추진과제를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고려대, 국방대, 동국대, 서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6개 대학에서 통일과 북한 관련 전공 대학원생 30여 명이 참여했다. 민주평통은 지난해에도 북한과 통일 문제에 관해 연구하는 대학원생들과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참여 학교가 1개(성균관대) 더 늘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북한과 통일에 관해 연구하는 대학원생이야말로 앞으로 남북통일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일꾼들”이라며 “이번 토론회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개최되는 데다 향후 북한·통일 문제를 학문적으로 더욱 발전시키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토론회 의의를 설명했다.
토론회는 남북 공동체를 주제로 토론하는 1부와 북핵 문제를 비롯한 통일·안보를 논의하는 2부로 나눠 총 5명의 대학원생들이 발제를 한 뒤 의견을 나눴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노현종 씨는 “남북한 모두 급격한 사회 변동을 경험했기 때문에 통일의 비전과 전망이 변화된 사회에 맞게 수정돼야 한다”며 “민족이라는 개념이 종족과 시민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통일 관련 논의가 주로 종족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공동체 개념이 지나치게 목가적이고 안정적인 느낌이 있어 민족이란 개념을 21세기에 맞게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대학원생들이 남북 공동체 문제와 북핵 문제를 비롯한 통일·안보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조성에 우리가 주도적 역할 해야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화여대 북한학과(석사과정) 안정은 씨는 지금까지 개최된 남북 스포츠 교류의 의미와 한계를 살펴본 후 “남북한의 스포츠 교류는 이벤트 성격이 강했고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는 탈정치화를 통해 지속적인 교류를 전개하고 행정가 중심이 아닌 선수 중심 교류를 이어가는 등 교류의 방식과 주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쉽게 좁힐 수 없는 북핵 정책에 대한 인식 차에서도 대학원생들은 성숙한 토론 문화를 보여줬다. 논란만 키우는 이견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나간 것이다. 공감대가 형성된 대목은 북한이 평화통일의 대상임을 명확히 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조성하는 데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2부 토론에서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고려대 북한학과(석사과정) 장석준 씨는 “한국 정부가 외교적 역량을 적극 발휘해 대북 제재의 실효성을 확대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구축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수립·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방대 안보정책학과(석사과정) 김진원 씨가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을 위해 정책의 정당성 확보를, 동국대 북한학과(박사과정) 최지연 씨가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조성 과정에서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가는 이른바 ‘코리아 리딩’의 필요성을 각각 주장했다.
토론 후반 대학원생들은 헌법 4조에 언급된 ‘민족 공동체’의 개념을 새로운 정체성과 비전으로 이끌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치열한 토의를 이어갔다. 토론자들이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통일을 이뤘을 때 그 방안이 있느냐”고 물으면 발제자가 “당장 방안을 모색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한국 사회가 남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이걸 확장시켜 균형적인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토론회를 주관한 민주평통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많은 발전이 있었던 토론회였다”며 “통일·북한 관련 전공 대학원생들이 지속적으로 통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통일전략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연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