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사진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일을 20년째 하고 있다. 가욋일로 북한 사진을 보고 글로 뭔가를 쓰기 시작한 것이 2004년 말부터였으니 북한 신문의 ‘독자’가 된 지 이제 12년쯤 되었다. 처음에는 같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다른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는 신기함에서 재미있게 시작했지만, 2008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 이후부터는 괴로움도 많이 느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헛구역질 비슷한 답답함도 따라왔다. 나름의 진단으로는 아마 북한이 과도하게 많은 사진을 내놓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폭죽 행사 같은 ‘볼거리’ 이벤트를 만드는 데 시간과 돈을 많이 쓴다.
정상적인 시절의 경우, 노동신문에는 보통 2, 3일에 한두 번씩 최고지도자의 얼굴이 나왔다. 하지만 김정일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이후 북한은 노동신문 지면에 ‘장군님’의 사진을 퍼부었다. 최고지도자가 건재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권력자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북한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북한 신문의 변화는 김정은 체제 5년 반 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루에 20장이 넘는 김정은 사진이 실리는 날도 허다하다.
하지만 정신을 잃지만 않는다면, 북한이 홍수처럼 쏟아내는 사진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사진은 북한이라는 체제와 문화, 어쩌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엿볼 수 있는 도구일 수 있다.
사진을 활용한 이미지 정치
사진기자들은 사진 찍기 좋은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그림이 된다, 안 된다’고 표현한다. 그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포토그래퍼의 순발력과 화면 구성 능력이 필요하지만 그림의 배경과 엑스트라의 역할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북한 사람들은 멋진 화면, 멋진 사진을 위해 자신의 한 달을 고스란히 바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사진에 등장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이고 애국심을 증명하는 길이기도 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최고지도자의 이름을 카드섹션으로 만들어내는 아리랑 공연 참가자들이 그렇고, 김일성 광장을 걸으며 횃불로 체제 수호 의지를 밝히는 10만 명의 주민들이 그렇다. 김정은의 현지지도라는 드라마의 조연이 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어 울며 박수치는 것도 어쩌면 사진을 위한 자발적 희생일지도 모른다.
북한 신문과 통신에 실리는 사진은 서방세계의 보도사진과는 차이를 보인다. 오히려 광고사진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광고주의 요구에 맞게 피사체의 긍정적 측면만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2017년 1월 5일 자 노동신문.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 비해 김정은 사진이 신문에 등장하는 빈도와 크기가 증가했다. 신문이 김정은 사진 앨범처럼 보인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북한은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고 새 지도자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확증하기 위해 사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08년 김정일 건강이상설 이후 북한은 권력 세습을 준비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김정일의 사망 장소인 열차 내부는 권력 계승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아주 적절한 곳이다. 열차 이미지는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김정은을 상징했던 ‘발자국’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곡선 철로를 따라 앞으로 전진하는 열차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과업을 계승해 중단 없이 나아가겠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김정은 시대의 사진은 그 이전에 비해 사진의 개수가 늘고 커진 것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변화가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김정은 시대를 읽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카리스마 계승을 위한 이미지 전략
카리스마의 계승과 전이는 당위적으로는 옳지 않다. 카리스마가 개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특징이기 때문에 계승되는 것은 당위적으로 옳지 않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현실로 존재한다. 밀짚모자를 쓰고 속옷을 드러낸 채 현지지도에 나선 김정은의 모습은 조부인 김일성을 모방하고 있다. 김일성처럼 보이는 김정은의 모습은 인민들의 향수를 자극해 강력했던 과거로 회귀한 듯한 착각을 줄 수 있다. 거꾸로 지금 북한은 김정은의 모습과 닮은 과거 김일성 사진을 찾거나 흑백 사진을 컬러 사진으로 채색해 김정은 권력을 정당화하려 애쓰기도 한다.
2013년 5월 13일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한 김정은이 김일성 주석의 업적을 다루는 작품 사업을 지도하고 있다. 그림 속 김일성과 김정은은 서로 닮았다.
● 점점 더 작아지는 주민들 얼굴
노동신문에 실리는 김정은의 이름은 다른 신문 활자체보다 크거나 볼드체로 처리된다. 이름 앞에 붙는 호칭도 특별한데 활자체도 달라 눈에 쉽게 띈다. 김정은의 얼굴이 등장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사진 속 주민들의 얼굴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북한 신문에서 노동자, 농민의 얼굴은 1967년 유일사상체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클로즈업되는 경우는 없다. 그 전까지는 러시아 사진의 영향을 받아 인물이 클로즈업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신문이 ‘주체화’되면서 주민들의 역할은 화면의 구성요소일 뿐 주인공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김정일 시대까지만 해도 신문에 얼굴이 실리는 인민들의 모습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수백 명이 함께 등장하는 집체 사진의 경우에도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야 사진이 역사 세우기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증명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정은 시대에 나타나는 놀라운 사실 하나가 깨알만큼 작은 신문 활자보다 사람의 얼굴이 더 작은 경우가 자주 있다는 점이다. 수만 명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하면서 일어난 변화다. 김정은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더 이상 ‘영광’이거나 진급을 위한 ‘증명서’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 영상 감수성이 높은 세대의 출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얼마 전 펴낸 학술회의 자료집 ‘2016 북한 사회 변동과 주민의식 변화-김정은 정권 5년, 북한 사회 변화 어떻게 볼 것인가?’에는 북한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정보통신기기의 보유 실태가 정리돼 있다. 집전화 44.9%, 휴대전화 46.4%, 컴퓨터 21.7%, 노트텔 47.8%, 녹화기 72.5%로 전반적으로 영상기기 보급률이 높다.
북한 김정은은 대체로 이미지에 대한 감수성과 욕망이 다른 세대를 상대로 권력의 정당성을 보여줘야 했고, 이러한 과제 때문에 김정은의 사진이 변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김정은 본인은 10대에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인 데니스 로드먼을 북한으로 초청하기도 한다. 서방 문화를 경험하면서 자란 김정은 자신이 영상 세대의 일원일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의 기념사진이 틀에 박힌 정면 응시 사진이 아니라 사진 촬영을 하기 전 또는 마친 후에 옆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사진이 선택돼 지면에 실리는 이유는 영상 세대를 고려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시대에는 이전엔 절대 나오지 않았던 형식이 시도되고 있다. 2012년 모란봉악단 공연에 영화 ‘록키’의 주제곡이 연주되고, 여가수들의 세련된 의상과 파격적 연출은 외부 세계의 빠른 템포 영상에 익숙해진 북한 내부의 시청자들의 눈을 끌어당기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의 확장 - 드론, SNS, 망원렌즈
김정은 시대 북한은 공식 사진들을 통해 경제·핵 건설 병진 노선을 증명하고 있다. 평양시에는 인민극장, 능라유원지, 개선청년공원유희장, 인민야외빙상장 등이 건설되고 시내에는 30~4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북한 TV에 나온 주민들은 이를 ‘황홀경’이라고 평가했다. 경제가 비약하고 있다는 것을 건물들을 통해 증명하려고 하는 듯하다.
북한의 핵 개발 과정은 마치 방송용 이벤트처럼 사전에 준비되고 녹화되고 배포된다. 김정은이 참관하는 미사일 시험발사 모습은 매번 버전이 높아지면서 카메라에 기록된다. 썰렁하게 미사일 발사 사진만 보여주던 김정일 시대와는 다르다.
2017년 5월 25일 자 노동신문 사진.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거대한 ‘사진거리’를 만든다.
김정은이 자신과 자신의 성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에 변화가 있다. 우선, 드론을 띄워 웅장하게 건설 중인 평양 시내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보안보다는 새로운 건축물을 보여주는 것이 체제 안정에 훨씬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망원렌즈의 활용이다. 망원렌즈는 화면을 단순화하는 효과가 있다. 주인공만 부각하는 미니멀리즘은 현대 사진의 중요한 키워드인데 김정은의 사진 역시 망원렌즈를 활용한 사진이 꽤 많다. 김정일의 경우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기엔 나이도 많고 숨겨야 할 정보도 많았겠지만 김정은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김정은의 사진은 정치사진이 최고조로 발달한 미국 대통령 사진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준다.
셋째, 세련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양복을 입고 퍼스트레이디를 연상시키며 북한의 트레이드마크인 김일성·김정일 배지도 달지 않은 이설주를 등장시키는 것도 국내외 시선을 의식한 장치로 읽힌다. 넷째 인스타그램 등 외국 젊은 세대들을 겨냥한 선전전도 시도하고 있다.
김정은 사진은 김정은이라는 상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광고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상품의 홍보를 위해 그리고 영상세대에 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이미지 속 김정은의 권력은 안정적이다. 실제로 안정적 권력구조가 이미지에 묻어나오는 건지, 이미지가 권력을 포장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최고지도자의 현란한 이미지 뒤에서 점점 작아지는 인민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과 김정은의 양복 차림이 아직 국내에만 머물러 있어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은 사진이 증명하는 북한의 한 측면이다.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