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남북관계가 달라지고 있다.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했고, 판문점에서의 실무회담에 이어 북측 사전 조사단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불과 두 달여 전인 2017년 11월 29일 새벽 북한이 ‘화성-15형’을 발사했을 때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 지난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의 참가 유도를 노력해온 것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정책적 방침이 없다면 북한이 어떠한 변화를 취하더라도 성사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에선 우리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한 지도부가 잘 알고 이해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둘째는 북한의 변화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의 대북 제의에 응답하지 않던 북한이 갑자기 평창 파견을 위한 대화의 자리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변화가 일시적인 제스처인지 또는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남한 당국을 잠시 활용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의혹이 없지 않다.
10여 년 만의 대화와 상호 방문
지난해 7월 초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제안했고, 직후에는 통일부의 후속조치로서 대북 제의가 있었지만 북한 당국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올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될 것”이라면서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북한의 태도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남북대화가 이뤄졌고 평창에 선수단과 대표단을 포함해 대규모 응원단과 기자단, 예술단과 태권도시범공연단, 참관단까지 보낸다는 합의를 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으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탄생하게 됐고 북한 선수 22명이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참가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남북 간에 많은 대화가 필요하게 됐다. 결국 스포츠를 통해 남북대화가 재개됐고, 10여 년 만에 남북의 고위층과 실무진이 상호 방문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는 일시적 제스처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북한은 지난 11월 29일 ‘화성-15형’ 발사 성공을 발표하는 성명에서 ‘핵무력과 로켓강국 완성’을 선언한 바 있다. 이 문장에 대해 평가가 나눠지기는 하지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중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1월 17일 북한 대표단이 북한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남북 고위급 실무 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고 있다.
완성을 선언했기 때문에 또다시 실험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은 또 12월 1일 김일성광장에서의 경축대회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도 단위에서 (경축)연환대회를 개최하면서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핵무력과 로켓 완성을 축하하는 대회를 반복적으로 진행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제부터 핵·미사일 실험보다는 경제 건설에 비중을 높일 것으로 전망됐다.
물론 여전히 여타의 도발 가능성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3형’을 비롯해 실험해야 할 미사일들이 존재하지만 외교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당분간은 대화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는 경제 건설에 한계가 곧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린우호관계 발전 천명
북한의 경제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에 유엔 제재가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 북한의 대중국 무역이 급격히 감소했고, 해외 송출인력 축소에 따른 소득 감소 역시 적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 내부의 휘발유 가격은 1년 전보다 50% 올라 우리 돈으로 리터당 3000원까지 급등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접어들면서 북한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지금과 같은 제재 국면에서 앞으로도 경제성장에 문제가 없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요컨대 북한의 대화 전략은 예정된 수순이며 지속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특히 올해 남북대화는 매우 진전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대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우선적으로 긍정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담긴 내용 역시 예사롭지 않다.
그는 “북남관계를 개선해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특기할 사변적인 해’라는 표현은 북한의 문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신년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기를 강조할 때 사용하는 제한적인 표현이다.
2017년에는 전년도 7차 당대회를 일컫는 표현으로 사용됐고,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2004년 신년 사설에서 전년도의 동서해 철도·도로 연결을 ‘특기할 일’ 정도로 표현했다. ‘특기할 사변’이라는 표현은 광명성-2호와 2차 핵실험 성공에 대해, 그리고 1956년 12월 천리마대고조를 비교하면서 언급할 때 사용된 흔치 않은 표현이다.
1월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신년사 이후 최근 북한 매체들은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야 한다는 발언을 무엇보다 강조하면서 실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언급을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올해 반드시 남북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올해 남북대화는 어느 해보다 빈번하게 열리고 성공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분석과 전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북한은 비핵화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북·미관계는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을지도 중요하다. 김정은의 올 신년사 마지막 문장은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이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돼 있다.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라면 적극적인 대화를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패싱’ 가능성도
문제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북한을 우호적으로 대할 것인가에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북·미관계 개선은 매우 중요한 이슈이면서 동시에 양면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미국이 내부적으로 통일된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최근 행태를 볼 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신뢰를 주기 어려운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북한 역시 대미 접촉은 희망하되 해법은 다음 정부로 넘길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올해 북한은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 및 국제기구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통미통남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지만 필자의 판단은 조금 다르다.
장기적으로는 통미통남을 목표하겠지만 트럼프 정부하에서 북한은 ‘아메리카 패싱’ 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북한은 한국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의 목소리를 국제사회로 내보내면서 미국과의 대화를 간접적으로 전개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이러한 대화를 바탕으로 경제 협력을 전개하려는 노력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는데 유엔 결의안에서 제재하지 않는 민생 분야의 문제에서부터 하나씩 풀어나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북한은 스포츠와 문화예술 부문의 교류에서부터 풀어나갈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에는 자카르타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 스포츠축제 등을 통해 국제사회와의 교류를 넓혀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 대해 우리 정부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회문화와 경제 분야에서 남북이 같이 해나갈 수 있는 영역들을 넓혀나간다면 올해 남북관계를 ‘사변적인 해’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