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통해 인류에 봉사하고 이를 통해 평화 증진에 기여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규정된 IOC의 사명과 역할이다.
“우리가 16일 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국제올림픽휴전센터(IOTC)의 슬로건이다.
이처럼 IOC는 올림픽이 있게 한 매개체인 스포츠를 통해 일관적으로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스포츠가 평화와 무슨 상관성을 가지고 있기에 IOC는 줄곧 올림픽을 통한 평화를 말하는 것일까.
현존하는 올림픽은 쿠베르탱의 수년에 걸친 노력과 헌신, 국제적인 협력 등에 힘입어 인종, 국가, 사상, 종교, 정치, 경제를 초월해 전 세계를 단결시키고 친선을 도모함으로써 인류의 번영과 평화를 추구하려는 가치 아래 이뤄지는 스포츠와 문화의 제전이다.
수천 년 이어져온 ‘올림픽 유산(Olympic Legacy)’의 뿌리를 ‘평화’라는 틀 안에서 살펴볼 때 고대 그리스시대에도 올림픽 게임은 평화 유지를 위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올림픽 휴전(Olympic Truce)이 그것이다.
고대 그리스시대에도 올림픽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평화의 성전(Sacred Heaven of Peace)’이 선포됐으며, 이 기간에는 전쟁 중에 있는 모든 국가들이 정전을 선포해야만 했다. 이처럼 올림픽의 근본적인 취지는 정치적으로는 곧 평화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스포츠 통한 사회 갈등 치유
이러한 이유로 스포츠는 지금껏 국제 평화 구현의 결정적 수단이 됐고, 개별 종목들의 연합대회인 올림픽은 각 종목별로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함께 어울려 상호 존중과 국제적 우의를 돈독히 하는 분위기 속에서 좀 더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공헌하는 대회가 돼왔다.
결국 쿠베르탱에 의해 부활된 올림픽의 시대정신과 이념적 배경도 고대 올림픽이 그러했듯이 평화주의 정신에 그 근간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포츠가 왜 국제 평화를 이끄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을까. 아마도 스포츠가 다른 무엇보다도 만국 공통어로서 세계를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인종적 배경과 상관없이 사람과 사회를 하나로 끌어모으는 데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로서 상대방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하며,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스포츠를 통해 평화와 사회 통합을 구현한 사례는 많다. 세계적으로 흑백 갈등이 가장 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면서 스포츠를 통해 사회 갈등을 치유한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되었다.
만델라 대통령은 ‘스포츠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1995년 럭비 월드컵과 2010년 FIFA 월드컵 대회를 유치·개최하면서 스포츠로 인종 사이의 벽을 허물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새롭게 바꿔놓는계기를 마련했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남과 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고 있다.
‘핑퐁 외교’라고 불리는 탁구를 통한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 완화 또한 유명한 일화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냉전이 강했던 1971년 미국 대표선수가 실수로 중국 대표팀 버스에 탑승하면서 시작된 양국 선수 간의 우애는 미국 대표팀의 중국 방문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계기로 이어져 양국의 외교 정상화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스포츠가 전쟁과 전투를 멈추게 한 ‘크리스마스 휴전 축구’라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4년 독일과 영국은 크리스마스까지 약 75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크리스마스 날 양국 병사들은 교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군인들이 친선 축구경기를 벌이며 전쟁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었다. 비록 잠시였지만 축구가 전쟁 중인 적대적인 관계를 평화와 화합의 관계로 바꿔놓은 것이다.
동북아 평화와 화합 기여
올림픽과 같은 주요 국제대회에서의 남북한 공동 입장도 남북 화해·협력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남북 선수단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며 올림픽 경기장에서 가장 큰 박수와 환호를 이끌어냈으며, 전 세계 언론의 주요 이슈가 됐다.
2018년 2월이면 30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 특히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로 그동안 경색 일변도였던 남북관계가 점차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계기로 민간 영역에서의 사회문화 교류, 이산가족 상봉 등이 이어질 것이며, 나아가서는 5·24 조치 해제와 더불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 등이 재개될 것이라는 예견도 많다. 즉, 올림픽대회라는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가 경색된 남북관계와 국제관계를 풀어 평화와 화합의 틀을 갖출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미국과 구 소련이 이념의 장벽을 허물고 함께 참가한 평화의 축제로, 변방이던 한국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연이어 열린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평화와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패럴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그랬듯 스포츠를 통해 국제 평화를 이끌어내는 또 한 번의 소중한 대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는 분쟁과 긴장을 완화시키고 평화를 증진시킨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스포츠가 평화를 부른다’는 역사적 사실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줄 것이다. 그래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패럴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거는 세계인들의 기대는 크다.
한국스포츠개발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