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재개되면서 모처럼 한반도에 화해·협력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70년이 넘어가는 분단구조와 여기에서 비롯된 남북한의 냉전 문화 및 대결 의식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남북한 스포츠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여론이 더 높으며, 일부라고는 하지만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10여 년 전에 비해 오히려 통일은 더 멀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핵 문제와 같은 중대 현안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반도 분단구조를 궁극적으로 타파하고 화해·협력 및 평화 공존의 분위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남북한 사회에 남아 있는 냉전 문화와 대결 의식을 일소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회문화 교류를 통해 ▲적대적 대결 의식을 완화할 수 있으며 ▲체제 및 주민들에 대한 상호 이해를 확대할 수 있고 ▲교류 과정에서 각종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으며 ▲통일 추진의 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사회문화 교류가 걸어온 길
분단 이후 30여 년 동안 남북한 간의 사회문화 교류는 냉전 기류 속에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을 수 없었다. 1950~60년대 북한이 남북 언론인 교류(1957년), 제17회 로마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1958년), 남북 공동 영화 제작 및 연극경연대회 개최(1965년), 기자 및 과학자 교류(1966년) 등을 수차례 제안한 바 있으나, 이는 통일전선전략 차원이었을 뿐 실천적 의지를 결여한 것이었다. 이후 사회문화 분야에서의 남북 교류는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상호 교환(1985년)이 첫 사례로 기록됐다.
2000년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15년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고 남북을 잇는 철도와 도로 개통, 개성공단 가동 등으로 경제 협력 분위기도 고조됐다. 사회문화 교류도 활성화됐다.
북한 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이 서울에서 공연을 했고, 정상회담 이후에는 8·15를 기념하는 음악회에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참가해 단독공연과 KBS교향악단과의 합동공연을 남한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면서 올림픽에 공동 입장을 하기도 했다. 과거와 비교해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뤄진 사회문화 교류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2000년 6월 4일 열린 평양교예단 서울 공연 후 평양교예단원과 관객이 악수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첫째, 국가가 직접 관여하는 정도가 높아졌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뤄진 문화교류는 외면적으로는 민간이 주도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 직전에 이뤄진 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의 방한에 정부가 일정한 역할을 했으며, 평양교향악단의 공연이 성사된 데도 정부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자본의 결정력이 높아졌다. 2000년 평양교예단이나 평양교향악단의 공연에 엄청난 대가가 치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교류와 관련된 행사를 추진할 때 북한에 제공할 일정한 사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셋째, 제3국이 아닌 남북한 현지에서 문화 교류가 이뤄졌다. 과거 문화 교류의 중심은 남북한보다는 일본이나 중국 같은 제3국이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한(소년예술단, 평양교예단, 평양교향악단)과 북한(탁구시합, 백두산 현지방송)을 서로 방문하며 교류가 이뤄졌다.
넷째, 방송과 언론이 결합되는 등 사회문화 교류가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언론의 결합은 근본적으로 문화교류의 경험을 확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공연이나 행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신문 보도와 방송 중계를 통해 일반 시민들이 간접적이나마 문화 교류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다섯째, 사회문화 교류의 다양성이 확대됐다. 소년예술단, 교예단, 교향악단, 방송 그리고 체육 분야에 이르기까지 정상회담을 전후한 문화 교류는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교류의 중심지가 남한이 됨으로써 과거에는 접하지 못했던 북한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바람직한 사회문화 교류를 위해
남북 정상회담 이후 확산됐던 사회문화 교류가 다시 소강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남북관계의 성격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사회문화 교류가 상호 이해 증진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2000년 남북 정상이 발표한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사회문화 교류가 활성화됐다고는 하지만 역으로 그러한 교류 자체가 정치에 예속되는 경향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냉정하게 본다면 2000년대에 활성화된 사회문화 교류는 정상회담 개최와 합의문 도출 등 남북관계의 개선에 힘입은 바 크며, 2010년대에 사회문화 교류가 위축된 것은 남한에서 보수정부가 들어선 이래 북한의 군사 도발 및 핵·미사일 개발로 남북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현재의 남북관계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에서 비롯된 것처럼 문화 교류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확대돼 민간 부문이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남북관계에서 정부의 영향력이 막대하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남북 문화 교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사회문화 교류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사회문화 교류에서 상품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반세기가 넘는 적대적 분단 상황으로 말미암아 상대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거의 돼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상대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커녕 경험도 전무한 상태에서 그리고 문화적 적개심을 유지한 채로 갑자기 상대 문화를 접하게 되면 일시적인 호기심 충족 수준에 머무르거나, 과거의 문화적 편견을 확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사회문화 교류가 갖고 있는 바람직한 요소들은 확대하면서 파생될 수 있는 문제점들은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5년 10월 26일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후 이산가족들이 눈물의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첫째, 북한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북한 문화는 남한 문화와 다를 뿐 아니라 그동안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까닭에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 문화에 대한 이해에 앞서 일방적인 비판만이 이뤄져왔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사회문화 교류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사회문화 교류의 기본 목적 즉, 문화의 교환을 통한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해서도 최대한 탈정치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사회문화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인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제도의 불안정은 편법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 저작권 등 관련 법령, 수용의 절차 및 담당하는 정부 부처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정비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시장에 무조건적으로 맡기는 것도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공신력 있고 전문적인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통일, 통합, 공존
통일이라는 말은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단이 하나였던 체제가 둘로 나뉜 것을 의미한다면 원상회복은 당연히 하나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로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전체 체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통일을 커다란 개념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각 부문이나 하위 체제에서도 통일 개념이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남북 교향악단 연주회. 이날 연주회에서 남한과 북한 아나운서가 공동 사회를 보고 있다(오른쪽 사진).
사회 체제에서는 통합이 적절한 개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의 수준에서는 통합이라는 개념도 적절하지 않다. 흔히 통일문화라는 말을 쓰지만 문화적 통일, 문화적 통합은 전체주의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문화는 통합도 아니며 더더구나 통일도 아니며 공존해야 한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통일이라는 말은 제도적 통일, 사회적 통합, 문화적 공존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