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 신년사에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으로 국민의 삶이 평화롭고 안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두 번 다시 있어선 안 된다”며 우리 외교와 국방의 궁극 목표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재발을 막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당장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임기 중 북핵 문제 해결 목표’를 제시했다.
한반도에서 대립과 갈등의 소모적인 분단체제가 70여 년 동안 지속되면서 누적된 위기가 켜켜이 쌓여 폭발 직전에 이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북·미 갈등은 군사적 옵션의 사용 가능성이 공공연히 언급될 정도로 충돌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국면에서 문 대통령은 전쟁 반대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 분단체제의 지속으로 지친 국민의 일상을 평화롭고 안정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평화는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이자 우리의 생존 전략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일 국회 연설에서 ①한반도 평화 정착 ②한반도 비핵화 ③남북문제의 주도적 해결 ④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⑤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 등 한반도 평화 실현 5원칙을 밝힌 바 있다.
평화와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문 대통령은 “나라를 바로 세운 국민이 외교·안보의 디딤돌이자 이정표이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이끌어낼 힘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4대국과 국제사회에 한반도 평화 원칙을 일관되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 당당한 중견국으로서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을 천명할 수 있었던 것, 남북관계에서 대화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수 있었던 것 등도 국민의 힘이라고 밝혔다. 촛불혁명으로 나라를 바로 세운 국민의 힘이 ‘평화 우선의 다변외교’를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새해 들어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우선의 한반도 정책,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의 압박정책,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핵 병진정책 사이에서 ‘이익의 조화점’을 찾게 한 것은 평창동계올림픽이다.
문재인 정부는 ‘올림픽 휴전’ 개념을 도입해 한미 연합군사연습 연기를 검토했고, 이에 화답하듯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올림픽 대표단 파견 의사를 밝히면서 남북 사이에 ‘1·9 합의’가 만들어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와 압박의 결과로 남북대화가 이뤄졌다고 자평하면서 북·미 대화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연일 발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0일 청와대에서 신년사와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영빈관으로 입장하며 기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열린 첫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남북 군사당국회담 개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과 각 분야 회담 개최 등을 골자로 한 합의를 도출했다. 이번 고위급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한 남북 당국대화를 시급히 개최하자고 제안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큰 마찰 없이 합의를 도출했다.
이로써 지난해 마주 보고 달리는 자동차처럼 충돌 직전까지 치닫던 북·미 대결의 위기 국면이 다소 진정되는 듯하다. 지난해 북·미 대결이 격화한 것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소탄 핵실험(6차 핵실험)과 화성-12형, 화성-14형, 화성-15형 등 미국을 겨냥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면서 미국 본토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충돌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 북·미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9일 ICBM 화성-15형 시험발사 이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올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 완성과 국가 핵무력 완성 실현을 계기로 사실상 핵보유국의 전략적 지위를 갖고 평화 공존을 위한 대화 공세를 펼치고 있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완성을 ‘말’로 선언하고, 실제 각도로 ICBM 시험발사를 자제함으로써 금지선(Red Line)을 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금지선을 넘을 경우 미국의 군사 옵션을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미국의 핵무기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전쟁억제력을 갖춘 ‘전략국가’임을 선포하고 평화 공세를 펴기 시작한 것이다.
북·미 대화로 이어져야 지속 가능한 평화 가능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미국과 국제사회가 제재와 압박으로 일관하면 ICBM 대량생산으로 이어져 2차 공격 능력(보복 능력)을 갖게 될 것임을 공언했다. 북한은 미국이 우려하는 ICBM 완성과 대량생산 카드를 내밀고 미국과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듯하다. 북한이 2차 공격 능력을 갖는 것을 막는 것이 미국의 2차 저지선이 될 것이지만 먼저 1차 저지선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관련해 촉발된 위기가 군사 충돌로 비화할지도 모를 임계점에서 ‘올림픽 휴전’이 이뤄지고 있다. 관련 국가 모두 군사 충돌에 부담을 느끼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을 모색하지만, 북·미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는 한시적 휴전이고 불안정한 평화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 개발의 동기를 북·미 적대관계에서 찾기 때문에 남북대화가 북·미 대화로 이어져야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인도와 파키스탄 모델에 따라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고, 중국 모델에 따라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중국은 1960년대 ‘양탄일성(원자탄과 수소탄, 인공위성)’으로 대미 핵억제력을 갖춘 다음 1970년대 초 미·중 데탕트를 이루고 19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을 본격화해 고도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1월 17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김정은과 대화 자리에) 앉을 것이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동북아에서의 핵 확산을 우려하는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들도 핵을 가진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임기 중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공고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가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원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이 과정에서 동맹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 등 관련 국가들을 비롯해 국제사회와 더욱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는 평화를 향한 과정이자 목표”라며 “북핵 문제 해결과 평화 정착을 위해 더 많은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단계적·포괄적 접근에 따른 ‘동결입구론’
지난 1월 1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외교장관회담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미국은 이미 외교적 노력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북한과 전쟁계획을 준비해놓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 17일 “나는 (북한 김정은과 대화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떤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했다(조선일보, 2018년 1월 19일자).
조셉 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이 ‘대화를 원하므로 핵 및 미사일 실험을 중지하겠다’고 말해야 북·미 대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조셉 윤은 “모든 사람이 이것(비핵화)이 긴 과정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첫 번째 단계는 핵·미사일 실험을 동결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실험 동결에서 시작해 개발을 멈추게 하고, 사찰단을 보내고, 불능화에 이어 폐기와 비핵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단계들을 이해하고 있고, 가장 첫 번째 단계는 동결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한겨레신문, 2018년 1월 19일자). 그의 이러한 주장은 동결→불능화→폐기로 이어지는 2017년 ‘2·13 합의’와 유사한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문재인 정부의 단계적·포괄적 접근에 따른 ‘동결입구론’과 유사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국면 전환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북한의 ICBM 실전 배치를 막기 위한 북·미 대화를 시급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은 ICBM 실전 배치를 위한 남은 몇 개월의 시한과 겹치는 기간이다. 일시적인 ‘평창평화’가 지속적인 평화 정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양자 및 다자간 북핵 대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