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평화! 평창올림픽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이 여자단체전 우승 후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홍차옥, 유순복, 현정화, 이분희.

남북 스포츠 교류 역사 남북 화해의
통일의 마중물 역할

체육 교류는 그동안 남북한 화해의 첨병과 마중물 역할을 수행해왔다. 남북 스포츠 교류의 역사와 성과를 살펴보고,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더욱 안정적인 스포츠 교류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보았다.

지난 1월 9일 남북한은 공동보도문을 통해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을 비롯해 민족올림픽위원회 대표,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 등을 평창동계올림픽에 파견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1월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관련 국제연맹 및 남북한 관계자가 모인 ‘평창올림픽 참가회의’를 통해 북한의 참가 범위와 남북한 단일팀 및 공동 입장 등의 현안을 일괄 합의했다.

회담 결과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선수단은 5개 종목에서 선수 22명, 임원 24명 등 총 46명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로써 진전된 ‘평창 평화올림픽’ 실현이 가능하게 됐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 한국 관중은 이들을 크게 환대했다.

분단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역사는 희망과 좌절, 그리고 기대라는 민족 통일을 향한 긴 희망 고문의 여정으로 함축되며, 민족 최대의 관심사인 통일이라는 최고의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체육 교류는 가장 비용실효적인 수단(Cost Effective Means)으로 남북 화해의 첨병과 마중물 역할을 수행해왔다.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 활성화를 통해 이질성을 동질성으로 전환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에 선도적 역할을 해온 것이다.

공동 입장의 감격

그동안의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의 양상을 살펴보면 남북한은 체육회담을 여러 차례 가졌지만 결국 국내외 정치 상황에 의해 스포츠를 교두보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라던 국민들에게 많은 기대와 실망을 안겨주었다.

1957년 12월 18일에 1960년 로마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담을 제의한 북한 올림픽위원회 홍명희 위원장의 대남 서한을 시작으로 단일팀 구성 문제는 늘 남북 스포츠 교류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뒤이어 1963년 1월 24일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열린 제59회 IOC 총회에서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 권고안 통과에 따른 최초의 체육회담이 개최됐으며, 1979년 2월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파견, 1984년 10월 서울올림픽의 북한 분산 개최가 논의됐으나 북한의 보이콧으로 무산됐다.

2017년 4월 강릉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과 북한 대표팀 선수들이 남북 대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남북 공동응원단 구성 제안을 계기로 체육 분야 교류협력의 전기를 맞았다. 남북 체육장관 전격 회동 성사로 ‘통일 축구’ 개최가 성사돼 단일팀 구성의 초석을 마련했다. 나아가 그해 10월 11일과 23일에 평양 5·1 경기장과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두 차례 통일축구 경기가 열려 진한 감동과 흥분을 선사했다.

1991년 2월 열린 남북 체육회담에서는 그동안 회담 진행의 산고 끝에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단일팀 ‘코리아’를 구성해 참가하기로 합의해 국내외적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통일 논의를 확산하는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하지만 그해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유도선수 이창수의 망명으로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은 전면 중단됐다.

이후 8년 동안 단절됐던 남북 스포츠 교류는 1999년 8월 평양에서 열린 민간 차원의 ‘노동자축구대회’를 계기로 해빙 무드가 조성됐고, 뒤이어 대북 경협 사업과 연계해 같은 해 9월과 12월에 각각 평양과 서울에서 열린 ‘통일 농구대회’는 스포츠 교류의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공동 입장하는 남북 선수단.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 남북한 공동 입장을 효시로 2007년 장춘동계아시안게임까지 총 아홉 차례의 주요 국제대회에서 남북한 공동 입장이 성사됐다. 또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북한 최고 실세 3인방의 전격적인 방남이 있었지만, 일회성으로 끝나 많은 아쉬움을 남긴 바 있다.

이후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북한 선수단 불참 등으로 끊어졌던 남북 스포츠 교류는 2017년 4월 강릉에서의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 2017년 9월 북한 피겨 페어조의 평창동계올림픽 자력 진출권 획득, 그리고 최근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선언 등으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대승적 견지에서 접근해야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정착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와 관련해 동·하계 국제대회를 중심으로 하는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 방안이 우선적으로 논의될 수 있으며, 그 종목은 북한이 비교적 활발하게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남녀 축구, 역도, 유도, 사격, 태권도, 마라톤, 탁구, 사격, 다이빙 등과 남녀 아이스하키, 피겨스케이팅 페어,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 동계 종목에서 우선적인 접근과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의 동계스포츠 경기력이 남한에 비해 떨어지는 상황인 만큼 올림픽 후 평창의 최적화된 동계스포츠 인프라를 활용한 남북한 동계스포츠 교류협력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기존 사례에서 많은 기대를 받았던 남북한 태권도 교류협력을 확대·발전시켜 2020년 도쿄올림픽에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참가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도 요청된다.

2005년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대축전에서 진행된 남북 여자 축구경기 모습.

이처럼 남북 스포츠 교류가 지속 가능해지려면 교류 정례화를 위한 남북 체육회담의 활성화가 필요하며,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을 주도할 명실상부한 상시적이고 역량 있는 컨트롤타워도 확립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스포츠 교류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체육계의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추진체계 및 마스터플랜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선이후난(先易後難)과 선공후득(先供後得)의 대승적 견지에서 남북 스포츠 교류협력에 접근한다면 분명 괄목할 만한 성과 도출이 가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흥태 김 흥 태
대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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