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N

북한의 이발소

‘조선자본주의공화국’에 그려진 북한 외국 기자의 눈에 비친
엄청난 내부의 변화들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팀 기자 / 사진 제공 비아북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은 영국 국적 전·현직 기자가 북한 저변에서 일어난 변화를 포착해 기술한 책이다. 서울 주재 로이터 특파원 제임스 피어슨과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일한 대니얼 튜더가 북한의 초상화를 스케치했다. 저자들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

‘북한을 다룬 수많은 책과 신문 기사,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북한 사회가 오늘날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평양 엘리트는 물론 일반 시민과 연관시켜 설명해주는 매체는 드물다. 북한을 다룬다고 하면 늘 김정은과 지정학 혹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만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그렇지만 그럴 경우에는 북한 사회의 최상층부와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내부의 변화를 놓치게 되고 만다.’

북한의 호프집

저자들이 말하는 ‘엄청난 내부의 변화’는 ‘시장화’와 ‘자본주의적 전환’이다. 북한은 더는 기아의 땅이 아니다. 굶어 죽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1990년대 중·후반 대기근의 비극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난 시장이 북한 경제에 역동성을 가져다줬다.

북한 경제는 유엔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성장세를 보여왔다. 한국은행은 2016년 북한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3.9% 성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 경제가 개선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이후다. 급상승한 지하자원 가격에 힘입어 북한 처지에선 로또 같은 돈을 벌었다. 러시아, 중국 등으로 인력을 수출해 벌어들인 외화도 상당했다. 외화를 마식령스키장을 비롯한 다수의 전시성 사업에 썼으며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를 비롯한 건축 사업에도 투자했다. 핵 개발 속도가 빨라진 데도 경제 상황 개선이 한몫을 했다는 평가다.

북한에서 자영업이 등장한 것은 1990년 중·후반 식량난으로 자생적 시장이 생기면서 장마당 상인이 등장한 게 처음이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 계획경제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자생적으로 등장한 자영업과 그것을 바탕으로 시장화된 경제가 북한 경제의 개선을 이끄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정체성도 ‘수령’에서 ‘돈’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사랑을 나누길 원하는 남녀에게 방을 대실해주는 가내 사업이 각 도시마다 활성화했을 만큼 북한 주민들은 돈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물질을 끝없이 욕망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경제적 인간)’가 그곳에도 등장한 것이다.

북한의 슈퍼마켓

사금융 확대, 돈주(북한에서 자본을 축적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의 성장, 주택의 시장화가 변화를 촉진한다. 축적된 재산이 사금융을 일으켜 ‘사기업’과 자영업을 탄생시킨다. 사기업은 형식적으로는 국영이지만 실제로는 개인 단위로 경영된다. 국가의 명의를 빌려 비즈니스를 하면서 이익금 일부를 국가에 바치는 개인과 국가의 동업 형태다.

한국 재벌을 연상케 하는 초기 형태의 기업집단도 등장했다. ‘내고향’이라는 명칭의 기업은 담배, 빵, 스포츠 의류, 생리대 등을 생산하는 기업군을 거느렸다. 김정은이 피우는 담배 ‘727’이 내고향이란 기업집단에서 생산한 제품이다. ‘아침’이라는 브랜드로 중동에 담배도 수출한다. 내고향의 실소유주가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담배와 술은 북한 공산품 중 수출이 가능할 만큼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품목이다.

북한 군부가 소유한 고려항공도 기업집단의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다. 평양에서 택시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콜라, 통조림을 생산하는 식품가공업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평양에서는 고려항공이 운영하는 운수업체 외 7개 택시 회사가 경쟁한다.

평양시내를 달리는 버스.

3대 세습의 집권자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장 이후 평양의 스카이라인은 부산 해운대, 뉴욕 맨해튼을 닮은 형태로 치솟는다. 사회주의적 근대와 자본주의적 현대가 모순(矛盾)의 형태로 공존한다. 하늘로 치솟은 욕망의 바벨탑은 어쨌거나 평양도 바뀔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평양 만수대지역 아파트는 평균 10만 달러에 거래된다. 20만 달러에 팔리는 경우도 있다. 북한의 1인당 GDP는 750달러(2015년 기준 추정)로 한국의 3%에 못 미친다(같은 해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7214달러). 평양 아파트값 2억 원은 북한 1인당 GDP의 230배에 달한다(한국에서 1인당 GDP의 230배는 72억 원).

북한은 사상의 나라다. 선전과 선동으로 주민을 통제하고 사상을 다진다. 지구촌 유일한 사상의 나라의 경제에서 자본주의적 전환이 나타난다. 사회의 시장화는 북한 권력집단에 아슬아슬한 줄타기일 것이다. 속도가 지나치게 늦어도 너무 빨라도 정권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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