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올 들어 미국과 북한이 “최고 제재” 대 “최강 대응”으로 정면 충돌하며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돼왔다.

기로에 선 북·미관계 파국으로 치달을까
평화 반전 기회 생겨날까

북·미관계가 끝을 모르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맞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과연 북한과 미국은 끝내 무력 충돌로 치달을 것인가, 아니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인가.

한반도를 둘러싼 무력 충돌의 기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북·미관계가 끝을 모르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와 달리 2017년을 정점으로 발생하고 있는 북·미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과 북한 모두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겠다는 기세로 치킨게임에 임하는 듯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과 미사일을 통해 국제사회를 협박하는 북한을 더 이상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북한은 만성적인 안보 위협을 더는 견디지 못하겠으니 이번에야말로 국제사회로부터 생존을 보장받겠다는 형국이다.

이 글에서는 두 가지 문제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우선 북·미관계가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맞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과연 북한과 미국은 끝내 무력 충돌로 치달을 것인지, 아니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인지에 대해 전망해보고자 한다.

| 북한과 미국의 동상이몽

첫째, 김정은의 북한은 현 상황에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외교안보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그들이 인식하는 외부 환경이 어떻기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렇게까지 ‘속도전’를 펼치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군사력을 포함한 다양한 기준에서 중국은 아직 미국에 한참 뒤처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미·중 사이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의 북한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되는 지금의 환경을 자국의 안보 입지를 강화하는 결정적인 기회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인식은 흥미롭게도 대미관계에서는 물론이고, 대중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시진핑 집권 후 북·중관계가 예전에 비해 많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지도부가 북한 내부의 리더십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북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전략적 가치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 점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미·중 경쟁 시대를 활용해 미·중 모두로부터 생존을 약속받기 위해 사활을 건 게임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집권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전개되고 있던 미·중 간 경쟁관계를 전략적 공간의 확장 기회로 삼은 점은 적어도 북한 관점에서는 현명한 판단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가지는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할 때, 각각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을 대표하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해질수록 두 국가는 한반도 전체가 어느 특정 세력의 영향력 아래 놓이는 것을 꺼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중국해 문제, 무역 분쟁, 영토 분쟁, 지적 재산권 문제 등 미·중 간 외교 전선이 다양한 차원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된다면, 어쨌든 향후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의 분산은 불가피해 보인다. 핵 개발이라는 국제 안보의 최대 현안을 제기해 미국을 상대로 통 큰 담판을 벌여 일단 안보를 보장받은 다음, 시간이 흐르면서 미·중 경쟁의 틀 속에서 자신들에게 전략적 공간이 발생할 것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 역시 지금의 북·미 간 극한 대결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김정은이 최초 집권을 시작하던 시점인 2012년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전임 부시 행정부가 감행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수습과 뒤처리가 핵심 외교 과제였고, 또한 시리아 내전이 악화되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면서 외교자원을 북한에 충분히 투입하지 못한 점이 인정된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아시아 재균형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했지만, 아시아로의 회귀가 북한 문제의 해결까지 맞닿지는 않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북한에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7월 28일 북한 자강도 무평리에서 화성-14형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전 주요 경력이 사업가라고 해서 북한 문제를 다룰 때도 극적인 담판을 선호할 것이라는 가정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온 일련의 언어 표현들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제기하는 ‘치킨게임적’ 성격의 행동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지난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완전 파괴’할 수 있다고 매우 이례적인 수준으로 공격했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 내 언론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에게 좀 더 신중한 외교 레토릭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이 과거보다 더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가 어느 정도 완성돼가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북·미 간 외교 담판에서 각자가 더욱 유리한 국면을 확보하기 위해 수사 차원의 엄포를 불사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정은은 자신의 집권 5년 차에 들어선 시점에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를 생존을 건 담판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벌이는 치킨게임을 둘러싼 진실과 관련해서는 향후 좀 더 다양한 1차 자료와 가설 검증을 통한 분석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미국 역사에서 커다란 전환적 외교 사건은 모두 공화당 행정부 시기에 단행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놓고 보면 미·중 데탕트, 구소련의 붕괴, 이라크 전쟁, 테러와의 전쟁 등 굵직한 외교안보적 사안들은 모두 공화당 정부가 주도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는 미얀마, 쿠바 등 오랜 기간 미국의 외교적 숙제로 남아 있던 사안들을 해결한 업적을 쌓았고,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중간선거의 중요성 등을 고려할 때 북한 문제를 해결해서 미국인이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해주고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취하면서 국제안보의 커다란 현안을 해결했다는 이미지를 미국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면, 이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역시 이러한 점들을 나름대로 충분히 고려해 트럼프 행정부 시기 내에 안전과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 북한의 핵·경제 병진전략의 모순

셋째, 그렇다면 김정은이 왜 핵과 미사일 개발에 놀랄 정도의 ‘속도전’을 치르며 몰두하고 있을까? 아버지 김정일이 유지했던 핵무기 개발 관련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고 핵 개발을 최고의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국제 제재를 감수하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면서까지 무모한 도발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한이 설정한 핵 및 미사일 개발 시간표의 목표 시점이 거의 임박해오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핵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반발과 제재는 당연한 것이므로, 차제에 미국과의 긴장관계를 최대로 끌어올려서 미국의 위협 때문에 핵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한 발 더 나아가 미국과 전례가 없는 외교전을 치러 좀 더 나은 안보 환경을 만들어보자는 의도가 숨어 있다.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10월 21일 해군 부산기지에 입항했다. 길이 333m, 폭 77m에 높이 63m 규모로 첨단 전투기 70여 대를 탑재해 ‘바다 위의 군사기지’로 불린다.

김정은이 집권과 함께 제시한 국가 비전인 ‘핵·경제 병진전략’은 두 개의 목표를 병행하겠다는 표현과는 달리 논리적으로 모순적인 구조에 놓여 있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의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을 상대로 한 조속한 핵 개발 대결을 벌여 미국으로부터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외교적 협상 틀을 이끌어내고, 향후 복잡하고 지루한 비핵화 관련 논의에 임하는 과정에서 경제 제재의 굴레에서도 차츰 벗어나야만 비로소 ‘핵·경제 병진전략’이 가능할 것으로 계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소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지만 현재 북한이 감행하는 무모한 핵 개발 속도전은 바로 이러한 배경을 전제로 하고 있다.

| 역사적 반전의 모멘텀 기대

마지막 질문은 향후 미국과 북한은 군사적으로 충돌할 것인가이다. 미국은 과연 북한을 향해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것인가? 한반도에 감도는 전쟁의 기운이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인가? 현 시점에서 필자의 대답은 ‘노’이다.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평화의 기조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필자의 대답이 전략적으로 군사력 사용 카드의 가능성을 아예 접어놓자는 얘기는 아니다. 물론 미국의 군사력 사용 가능성이 과거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반격 가능성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다면,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확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군사적 옵션은 채택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 동북아 질서에서 전쟁의 발발이 미국에 가져다줄 아무런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 동북아는 중동과 다르다. 예를 들어 중동을 향한 군사력의 사용은 중동이라는 지역 자체에서 그 파급 효과가 흡수되고, 중동의 복잡한 구도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목표 국가의 존재로부터 이득과 손실을 보는 다양한 역학관계가 작동한다. 하지만 동북아는 다르다.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북·미 간 대결이 또다시 매우 위험한 위기를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한반도 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전례가 없는 위기를 잘 관리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사적 반전의 모멘텀이 생겨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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