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지역에 한파 특보가 내려진 지난 12월 20일 오후. 전국에 매서운 칼바람이 불며 ‘세밑 한파’가 기승을 부렸지만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는 민주평통 상임위원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제61차 상임위원회를 열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을 위한 대북·통일정책 추진에 관한 6개 정책건의안을 채택하는 매우 뜻깊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상임위원들은 전국 팔도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이날 상임위원회에는 상임위원장인 김덕룡 수석부의장을 비롯해 부의장 25명, 분과위원장 10명, 직능상임위원 464명이 오전부터 행사장에 미리 도착해 마지막까지 정책건의안을 수차례 검토했다. 상임위원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서로를 향해 “그동안 준비하느라 고생하셨다”, “수고하고 애쓰셨다”는 덕담을 건네며 서로를 격려했다.
상임위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김덕룡 수석부의장(좌). 제61차 민주평통 상임위원회에 참석한 황인성 사무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우).
상임위원회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법에 규정된 법정 회의로, 국내외에서 499명이 상임위원으로 임명됐다. 상임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민주평통에서 위임한 사항이나 의장이 명한 사항을 심의하는 일이다. 또 각 분과위원회에서 의결된 사항을 자세히 조사하고 논의해 결정하는 것도 상임위원회의 역할이다. 임명된 상임위원 499명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외교·통일 전문가로 불리는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행사는 김덕룡 수석부의장의 개회사로 시작됐다. 김 수석부의장은 “상임위원들이 지난 4개월 동안 대북정책건의를 위한 분과위원회 활동과 함께 소속 협의회 활동을 병행하며 매우 바쁘게 일정을 소화했다”면서 “상임위원들의 헌신적인 활동 덕분에 지난 11월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전체 국민의 86.5%가 ‘공감’을 표했다”고 격려했다. 이어 “오늘 회의에서도 남북 협력의 기반을 확대하고 한반도 평화 관리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건의해달라”고 당부했다.
| 국민 86.5%, 정부 대북정책 ‘공감’
황인성 사무처장은 “제18기 민주평통 자문위원이 지난 9월 출범하면서 사실상 민주평통의 주요 사업기간이 4개월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상임위원들이 각자의 지역과 분과에서 열심히 활동해준 덕분에 올해 예산 집행률 99.9%를 기록했다”며 “상임위원들의 적시성 있는 정책건의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평통 사무처는 민주평통 연혁, 현황, 역할 등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한 브로슈어를 별도로 제작해 상임위원들에게 제공했다. 또한 민주평통 2017년 업무 실적 및 2018년 주요 현안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자료집으로 제공하고, 그 내용을 김안나 기획조정관이 보고했다.
민주평통이 보고한 주요 업무 실적에는 제18기 출범회의 개최, 법정위원회 운영 및 의견 수렴, 국민 소통과 통일 공감대 확산, 자문위원 통일 역량 강화, 해외 통일 지지 기반 확대 등이 포함됐다.
정책건의안 채택 경과를 보고하는 고유환 기획조정분과위원장(좌).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남북관계 현황과 대북·통일정책 추진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우).
그중 제18기 자문회의 구성 성과가 돋보인다. 민주평통은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고자 신규 자문위원 위촉 비율을 17기(8271명, 49.3%)보다 대폭 확대했다(1만504명, 62.8%). 자문건의 적실성 제고 차원에서 상임위원회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권 지역 편중 현상을 해소(17기 380명→18기 335명)하고, 여성 및 청년위원 위촉 비율을 확대(17기 여성 95명, 청년 33명→18기 여성 124명, 청년 50명)했다.
민주평통 2018년 주요 현안에는 4가지 사업이 제시됐다. ▲제18기 국내·해외 지역회의 개최 ▲민주평통 혁신위원회 운영 ▲지방선거 관련 선거 중립 ▲헌법 개정 관련 일정(안)이다.
| 국민과 함께하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
김안나 기획조정관은 “국내·해외 지역회의 개최는 통일 추진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통일정책 추진 및 활동에 대한 이해를 제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민주평통 주도의 핵심 사업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특히 해외 통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지역회의의 경우 오리엔테이션, 기조연설 국정보고(통일부, 외교부), 분임토의, 통일 대화(의장 접견), 통일·안보 현장 시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남북관계 현황과 대북·통일정책 추진 방향’이라는 주제로 정부 측 업무를 보고했다. 통일부는 효율적인 업무 보고를 위해 대국민 해설집 <문재인의 한반도정책>을 상임위원회에 참석한 모든 상임위원에게 제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북정책 공약, 베를린 구상,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밝혔던 정책 방향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통일부의 해설집에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 3대 목표(북핵 문제 해결 및 항구적 평화 정착,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구현), 4대 전략(단계적·포괄적 접근,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병행 진전, 제도화를 통한 지속 가능성 확보, 호혜적 협력 통한 평화적 통일기반 조성), 5대 원칙(우리 주도의 한반도 문제 해결, 강한 안보를 통한 평화 유지, 상호 존중에 기초한 남북관계 발전, 국민과의 소통과 합의 중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정책 추진)이 포함됐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은 도발과 제재, 다시 도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근본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정책을 추진한다. 동시에 한반도정책의 비전으로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을 지향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평화 없이는 안보도 경제도 보장할 수 없는 만큼 ‘평화 공존’은 남과 북이 최우선으로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자 비전”이라며 “‘공동 번영’은 남과 북이 호혜적 협력의 가치를 공유하고 실천해나감으로써 함께 번영하는 한반도를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상임위원들은 임명 이후 약 4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의 7개월 도전과 대응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향후 대북·통일정책 추진 여건을 전망했다.
통일부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을 의미하는 별도의 명칭을 짓지 않았다. 지난 정부 때 ‘햇볕정책’, ‘평화번영 정책’, '‘비핵·개방·3000’,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용어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조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이 중립과 열린 정책을 표방함에 따라 ‘정부’란 명칭을 뺐고, 남북문제는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 범위를 남북관계가 아닌 한반도로 확장시켰다”며 “정부가 기본 정책 방향을 제시하되 국민과 소통해 정책 내용을 채워가겠다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자료집 표지도 미래세대인 어린이가 그림을 채워가는 사진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상임위원들은 지난 9월 1일 임명된 직후 약 4개월 동안 수시로 머리를 맞대며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7개월 도전과 대응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향후 대북·통일정책 추진 여건을 전망했다. 나아가 상임위원 각자가 가진 전문성과 경륜을 바탕으로 남북 협력 기반 확대와 한반도 평화 관리의 주도권 확보를 기본 방향으로 하는 정책건의안을 준비했다.
고유환 기획조정분과위원장은 “상임위원회는 지난 11월 10개 분과위원회를 일제히 개최한 데 이어 기획조정소위원회에서 4차례 회의를 갖고 정책건의안 초안을 마련했다”면서 “상임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고서에 반영한 정책건의안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을 위한 우선과제’가 마련됐다”고 보고했다.
정책건의안에는 ▲한반도 평화 관리의 주도권 강화와 남북 협력기반 확대 ▲비정치적 분야의 남북 교류협력 재개 추진 ▲‘한국 역할론’ 공감대 확산을 위한 외교 활동 강화 ▲평화 공공외교의 적극적 추진 ▲‘통일국민협약’ 가속화를 위한 협력 거버넌스 강화 ▲통일교육과 평화교육의 조화 및 공감대 확산 등 모두 6가지 건의안이 담겼다.
이날 상임위원회는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을 위한 우선과제’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정책건의안을 최종 채택했다. 김덕룡 수석부의장은 “좋은 정책건의안을 만들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오늘 채택된 정책건의안은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을 앞당기는 하나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 한반도 평화통일 구현
상임위원회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처음 맞는 자리라 기대가 컸다. 의장인 문재인 대통령이 제18기 민주평통 자문위원 1만9710명 중에서 출신 지역과 직능에 따라 상임위원 499명을 임명하면서 한반도 평화통일 구현에 새로운 흐름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다.
실제로 북한의 끊임없는 핵·미사일 도발로 4강 외교가 난국에 처한 상황에서도 상임위원들은 묵묵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반도 긴장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상임위원들이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정책건의안 채택에 돌입한 것이다. 또한 2월 평창동계올림픽과 3월 패럴림픽 개최를 앞두고 남북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임위원들이 민주평통에서 중심을 잡아나가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