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대 0. 동계올림픽 금메달 수는 26 대 0으로 대한민국이 북한에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이처럼 북한이 하계 종목에 비해 동계 종목에서 더욱 열세인 이유는 1990년대 들면서 세계적으로 스포츠의 과학화가 이뤄진 데 반해, 북한은 경제난으로 스포츠과학에 투자를 하지 못해 경기력이 뒤떨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동계스포츠는 스키, 스케이팅, 봅슬레이, 스노보드 등 거의 모든 종목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 이는 동계올림픽 메달 순위에서 118개를 딴 노르웨이를 선두로 독일, 미국, 캐나다, 러시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선진국들이 상위권에 올라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은 1960년대만 해도 아시아 동계스포츠 최강국이었다. 북한이 처음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올림픽으로, 선수 17명과 임원 22명 등 39명을 파견했다. 이 대회에서 한필화 선수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의 은메달은 아시아인 최초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메달이며, 아시아 여자 선수 최초의 동계올림픽 메달이기도 했다.
1972년 삿포로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000m에서 9위를 한 후 은퇴한 한필화는 북한을 빛낸 운동선수로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는 등 체육인으로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다. 북한에서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으면 우선 평양에서 살 수 있고, 30~40평의 아파트에 고급승용차가 제공되며, 매달 연금이 나오는 등 최상류층으로 승격된다.
| 199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뒤처져
한필화는 대한민국에 있는 오빠 한필성과의 극적인 만남으로도 유명하다. 1972 삿포로동계올림픽을 1년 앞두고 1971년 삿포로에서 프레올림픽이 열렸는데, 이때 한필화 선수가 참가했다. 한 선수의 오빠 한필성 씨는6·25전쟁 때 홀로 남한으로 오면서 가족과 떨어졌다. 마침 일본에 온 동생 한필화 선수와 오빠 한 씨가 전화 통화를 했다. 그 당시 “오빠!”, “필화야!” 하면서 서로를 부르던 남매의 목멘 음성은 방송을 통해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로부터 19년 후 두 사람은 삿포로에서 만나게 된다. 1990년 2회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때 한필화는 북한 임원으로 삿포로에 왔고, 오빠 한필성 씨가 지체 없이 삿포로로 달려가 헤어진 지 40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했다.
북한은 1972년 일본 삿포로, 1984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1988년 캐나다 캘거리동계올림픽에도 참가했으나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동계올림픽에선 여자 쇼트트랙 500m에서 황옥실 선수가 동메달을 땄다.
그 종목에는 세계 정상권 기량을 갖고 있던 우리의 전이경, 김소희 선수가 출전을 했다. 황옥실 선수가 두 선수를 모두 물리치고 동메달을 땄다는 것은 북한의 쇼트트랙 수준을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북한은 쇼트트랙에서 좋은 선수들을 계속해서 배출해오고 있지만, 아직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는 2000년 시드니하계올림픽에 이어 동계스포츠 사상 최초로 남북한이 공동 입장을 하기도 했다.
1964년 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 여자 선수 최초로 메달을 딴 한필화 선수가 1990년 삿포로에서 오빠와 40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했다.
북한은 1964년 인스브루크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이후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까지 13번의 올림픽 가운데 미국에서 열린 두 번의 대회를 포함해 5번이나 출전하지 않았고, 참가한 8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없이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는 데 그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때는 출전권을 한 장도 따내지 못했다. 당시 북한은 15개 경기종목 중 피겨스케이팅 남자부 싱글과 페어 등 2개 부문에서 ‘대기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대기선수 명단’이란 출전 자격을 얻은 선수가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을 경우 대신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명단이다. 당시 북한은 피겨스케이팅 남자부에서는 10번째, 그리고 페어 부문에서는 3번째 대기선수 명단에 올랐지만 끝내 출전하지 못했다.
북한은 비록 올림픽은 아니었지만, 1986년 제1회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부문에서 ‘김혁·남혜영’ 선수가 페어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그게 역대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이 따낸 유일한 금메달로 남아 있다. 북한은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이지향·태원혁 조가 피겨 페어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명맥을 이어갔다.
북한이 피겨스케이팅 페어에 유독 집중하는 까닭은 비교적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수월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녀 싱글에는 각 나라에서 기술을 갖춘 우수한 선수들이 많지만, 페어는 싱글에 비해서는 비교적 경쟁이 덜하다.
특히 피겨스케이팅 B급 국제대회는 피겨 페어 종목 출전 팀들이 극히 적어 메달을 따기 쉽다. 염대옥·김주식 조가 우승을 차지한 2016년 11월 이탈리아 메라노컵 대회 피겨 페어에서는 단 2개 조만 출전했다. 그나마 유일한 경쟁 조였던 인도 조가 대회 도중 기권해 별다른 경쟁 없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 북한 개막 10일 전까지 참가 득실 따질듯
북한은 피겨 싱글에서 우수한 기량을 펼치는 선수들을 따로 선발해 페어 종목으로 전향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고,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염대옥, 김주식 선수도 따로 남녀 피겨 싱글선수로 활동하다 2015년부터 짝을 이뤘다. 그들은 2017년 10월 29일 독일 오버스트도르프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 네벨혼 트로피에서 합계 180.09점을 얻어 평창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다.
북한 선수가 동계올림픽에서 자력 출전권을 따낸 것은 2010년 밴쿠버 대회(피겨 남자 싱글, 스피드스케이팅) 이후 8년 만이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땐 아무도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는데, 평창에서는 당당히 출전 티켓을 획득하고도 포기한 것이다.
북한은 피겨 페어 종목 외에도 쇼트트랙에서 출전권을 따낼 가능성이 있었다. 남자 쇼트트랙의 김은혁, 최은성 두 선수는 세계 10~20위권 수준의 선수들이어서 500m, 1500m 등 각 종목별로 30명 안팎에게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올림픽 출전 포인트가 주어졌던 3차 월드컵(상하이)과 4차 월드컵(서울)에 출전하지 않아 스스로 기회를 포기했다.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입장하는 북한 선수단(상). 피겨 페어에서 동메달을 딴 염대옥·김주식 조(하).
북한은 크로스컨트리, 알파인 등 설상 종목에는 2017년에 아예 국제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상 종목에는 국제대회에 출전할 만한 수준의 선수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제 북한이 평창에 올 방법은 하나뿐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와일드카드(특별초청)’를 받는 것이다. IOC는 종목별 국제 경기단체와 협의해 적극적으로 북한에 와일드카드를 주겠다는 방침이다.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도록 해 축제 분위기를 드높이겠다는 것이다.
평창올림픽 최종 선수단 등록 마감은 올림픽 개막 10일 전인 2018년 1월 28일이다. 과연 북한은 와일드카드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불참할 것인지, 득실을 따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동계스포츠의 성지 마식령 스키장
마식령 스키장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경제 강국 건설의 모델로 제시한 원산관광특구 등 6개 개발계획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졌다. 해발 788m 고지 함경남도 문천군에 있다. 원산 서쪽의 낭림산맥에서 갈라지는 마식령산맥이 시작하는 곳이다.
2014년 1월 1일 개장했는데, 개장 직후 1월 9일에는 미국의 농구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 1월 17일엔 일본의 레슬러 출신 정치인 안토니오 이노키 등을 차례로 초청해 홍보했다.
스키장 규모는 초급부터 고급까지 10개 슬로프가 있어 국제대회를 치를 정도로 잘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용객이 겨우 하루 수백 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스키장 하루 사용권은 우리 돈으로 약 3만6000원이다. 부대시설로는 외국인 전용 객실 250개를 갖춘 8층짜리 호 텔과 주민용 객실 150개를 갖춘 호텔이 들어서 있다. 또한 스키장 정상인 대화봉까지 이어진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다.
북한은 마식령 스키장 외에는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동계스포츠 시설이 없다. 북한은 추운 겨울 날씨와 많은 눈, 험준한 산맥 등 동계스포츠 발전에 유리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를 기점으로 동계스포츠 경기력과 인프라 투자에 뚜렷한 하락세를 보여왔다. 동계스포츠 종목은 하계 종목과 달리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데, 경제난에 빠진 북한으로서는 장비나 시설 지원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의 동계스포츠 시설은 2014년 개장한 마식령 스키장을 제외하면, 삼지연 스키장(1962년 개장), 평양빙상관(1982년 개관), 기관차선수단빙상훈련관(1984년 개관), 속도빙상관(1995년 개관) 등 거의 모든 시설들이 1990년대 또는 그 이전에 만들어져 대체적으로 낙후돼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 3회 동계아시안게임 유치에 성공한 바 있다. 만약 그대로 개최를 했다면 많은 시설들이 지어졌을 텐데, 유치만 해놓고 경제난을 이유로 개최권을 반납했다.
북한의 마식령 스키장 홍보 포스터.
스포츠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