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는 한반도에 통일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까. 2017년 10월 31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18기 민주평통 전체회의에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우리의 목적지”라고 밝힌 후 사회 곳곳에서 한반도 통일 환경이 주목받고 있다.
민주평통은 2017년 12월 21일 민주평통 사무처에서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양갑용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교수를 모시고 특별 좌담을 진행했다.
김용현 2017년은 북핵 문제가 한반도를 지배했다. 북·미관계는 ‘강 대 강 대결’ 구도가 지속되면서 군사적 긴장감이 상당했다. 다행히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그리고 다시 북한의 도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북측에 여러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핵 문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임을출 2017년 한 해 동안 북한은 16차례 미사일을 발사했고, 한 차례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남북관계가 제약돼 외교가 실종됐다. 실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군사당국자회담과 적십자회담 등을 제안했음에도 북한은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한국의 운명이 주변국에 의해서 상당히 흔들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한 한 해였다.
양갑용 중국 학자들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정부에 상당히 공을 들였음에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뒤통수를 맞았다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컸는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후 한국이 사드 포대를 임시 배치하면서 기대를 접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사드는 현실이니 이를 인정하자’는 선에서 출구전략을 짜는 모습이 엿보인다. 지난해 10월 31일 발표된 ‘한중관계 개선 양국 간 협의’ 결과가 그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올해는 중국이 한중관계의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공을 들일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주변 환경은 어려웠지만 문재인 정부가 나름대로 큰 틀에서 평화와 번영을 내세우면서 한반도 긴장을 적절하게 관리했다. | 김용현
| 출범 7개월… 대북정책 큰 틀 제시
이상현 2017년은 안팎으로 대외정책을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최근 국제정치 질서는 ‘강한 리더십’에 입각한 지정학의 부활 현상이 특징적이다. 시발점은 미국 이익 최우선주의를 강조하면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은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한테 큰 타격이다. 또 미국은 국제기구에 제공하는 펀딩을 줄이겠다고 한다.
국제사회는 앞으로 누가 이 역할을 대신할 것인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위상을 견제하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 대신 ‘인·태(인도·태평양) 정책’을 표방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도 탈퇴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공백을 중국이 메우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을 깨고 중국과 더 가까워져야 하는지 고민스럽게 된다.
김용현 한반도 주변 환경은 어려웠지만 문재인 정부가 나름대로 큰 틀에서 대북정책, 통일정책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 8·15 광복절 경축사,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남북통일 의지를 국민과 전 세계에 알렸다. 문재인 정부가 평화와 번영을 내세우면서 한반도 긴장을 적절하게 관리했다.
임을출 문재인 정부는 무너진 남북관계 기반을 복원하려고 노력했지만 핵 문제라는 큰 장애물에 봉착하면서 대북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또한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추종하는 정책을 취한다며 남북이 대화하고 협력하더라도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는 상당히 도전적인 질문인 동시에 과제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 공조하면서 남북관계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양갑용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만나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4대 원칙에 합의했다. 즉 ▲한반도 전쟁 불가 ▲한반도 비핵화 원칙 견지 ▲북한 비핵화를 포함한 모든 문제 평화적 해결과 더불어 ▲남북한 간의 관계 개선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기본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과거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최우선 과제로 강조했는데, 이번 합의를 보니 중국도 이제는 ‘자칫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듯하다.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가 과제다.
이상현 미국 사람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가능성은 낮지만 역대 정부에 비해 높아진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군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결국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끔 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 북한에 대한 압박에 동참하면 그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양갑용 북한에 다녀온 중국 학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한은 그동안 경제적 제재를 받아오면서 맷집이 생겨 이제는 제재가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실제 북한은 경제적 제재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국내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 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인기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일성 주석보다 훨씬 높아 정권 교체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이 딜레마인 것이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할 마지막 수단인 석유 공급 중단이 이뤄지더라도 북한은 1년 넘게 버틸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해상 봉쇄가 가장 강력한 제재 조치인데, 중국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중국과 북한 간의 밀무역이 활발한데, 밀무역은 동북 3성 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임을출 해상을 봉쇄한다고 해도 북한이 1년 이상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정은 시대에서는 내생적 성장동력이 정착되고 있다. 최근 북한에 다녀온 중국 학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한은 역대 최강의 제재를 극복한 모습을 통해 김정은의 리더십을 높이고 인정받는 방식으로 통치한다고 한다. 강력한 제재가 오히려 김정은 체제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 경제는 내부에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대외 의존도를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북한에서 북한 제품이 전체 제품의 40~50%를 차지한다고 한다. 또한 공식적으로는 북·중 간의 무역이 감소하고 있지만, 개인 간 밀무역은 활발하다.
많은 동북 3성 경제인들에게 북한은 놓을 수 없는 상대다. 비핵화라는 목표를 우선시해야 하지만 비핵화만을 위해서 다른 걸 버리고 제재와 압박에 올인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 비핵화라는 최종 목적을 향해 가더라도 정치, 군사, 경제적 대응도 염두에 둬야 한다.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듯 비핵화도 하나의 과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은 그동안 경제적 제재를 받아오면서 맷집이 생겨 이제는 제재가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실제 북한은 경제 제재를 받으면서도 국내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 | 양갑용
| 평창올림픽 끝나는 3월까지가 ‘골든타임’
김용현 지금부터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는 3월까지가 남북관계의 ‘골든타임’이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 연기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훈련 연기는 북한이 도발할 수 있는 명분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 중국이 말하는 ‘쌍중단’은 아니더라도 중국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북한 핵문제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은 있다. 앞으로 3개월을 우리 정부가 잘 활용해야 한다.
임을출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대북정책 과제는 남북 간의 소통 채널 복원이다. 특히 핫라인을 다시 확보해야 한다. 과거 남북한 사이에 직통전화가 33개 있었는데, 2016년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서 완전히 단절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판에 의한 충돌 가능성이 크다. 핫라인을 빨리 연결해 최소한의 소통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양갑용 일부의 시각이긴 하나 북핵을 용인하고, 확산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장기적으로 봉쇄·폐기하는 수순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중국 정부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도미노 효과’다.
북한이 핵을 갖게 되면 한국, 일본, 대만도 핵을 보유할 가능성이 커진다. 북핵을 인정하자니 비핵화 원칙에 어긋나고, 그렇다고 비핵화 해결 방안을 찾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중국의 정책적 딜레마가 있다.
비핵화라는 목표를 우선시 해야 하지만 비핵화만을 위해 다른 걸 버리고 제재와 압박에 올인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 | 임을출
| “대화로 서로의 의도 파악해야”
임을출 2018년은 국제사회에서 이벤트가 풍성한 해다. 11월 6일 미국에서 중간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또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지 70년이 되는 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북한 주민들한테 북한의 평화롭고 경제적으로 번영된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인데 핵과 미사일만 보여줄 순 없으니 말이다. 한국 정부가 이를 남북관계를 전환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양갑용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이 동북아시아에서 줄줄이 개최된다. 중국 입장에서는 강대국으로서 조정자이자 균형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18년은 정전협정 65주년이다. 중국이 나름대로 어떤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또 중국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는다. 개혁·개방 40주년은 현재 시진핑 주석이 연설마다 언급할 정도로 가장 공을 들이는 사안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우리가 잘 활용하면 북한과 연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이상현 평창동계올림픽이 꽉 막힌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적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만 평창동계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자칫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다면 좋지만 거기에 너무 목을 맬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남북이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다.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대화해야 한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다면 좋지만 거기에 너무 목을 맬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남북이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다. | 이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