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25주년인 2017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이 성사되고,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은 한중관계의 분위기를 전환한다는 차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한국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를 철회시켜야 한다는 국내적 요구가 증대하고 있었다. 동시에 북한의 핵 무력이 나날이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대응을 위한 중국과의 공조 필요성도 커지고 있었다.
한중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2016년 이후 지속된 사드 갈등을 해소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드 갈등은 이전 정부로부터 넘겨진 과제였기 때문에 신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차별적인 방식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정치적 부담도 안고 있었다.
그런데 사드 갈등은 이미 국제 구조와 연동된 문제가 되면서 한중 양자 차원에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더구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과 중국 틈새에서 적절한 타협안을 찾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 결과 사드 갈등이 2017년이 거의 다 지나갈 때까지 한중관계 전반을 압도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속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부담은 커졌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월 31일 양국은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회복시키기로 합의했다.
근 2년 지속된 사드 갈등을 일단 봉합하기로 한 것이다. 합의가 갖는 의미는 사드 갈등을 지속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양국이 사드에 대한 기본 입장에는 여전히 이견이 있다는 것도 동시에 확인하면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합의에 이르렀다.
즉 한국은 중국의 조속하고 명시적인 보복 조치의 철회를 기대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지속적으로 중국의 안보 우려를 우선시하며 세 가지 표명, 즉 한국이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에 편입되지 않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3국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으며,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을 것에 집중하고 있다. 사드 문제의 구조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중 양국이 찾아낸 현실적 접점이었다.
| 차별적인 돌파구의 어려움
한중 양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드 갈등으로 훼손된 교류와 협력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양국 국민 간 감정 대립이 더욱 악화돼 고착화하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요컨대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정상회담은 비록 사드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양국관계의 더 이상의 악화를 저지하면서 분위기 전환을 모색했다는 차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10월 31일 양국이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회복하기로 합의한 것을 정상회담을 통해 명확히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사드 배치 반대를 천명해왔던 시진핑 주석이 “모두가 아는 이유”라며 에둘러 표현한 것은 사실상 사드 갈등을 일단 봉합하는 데 동의한다는 의사 표시라 할 수 있다.
리커창 총리는 “문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그동안 중단됐던 양국 간 협력 사업이 재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며 경제 보복 조치가 중단되고 양국 간 교류협력이 재개될 것임을 확인해주었다. 중국의 두 지도자가 역할 분담을 통해 한중관계의 회복을 확인한 것이다.
요컨대 이번 정상회담은 애초부터 일정한 한계 속에서 시작된 만큼 일반적인 정상회담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 성과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 이후 정부와 언론 사이에서 전개되는 성과 논란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12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리커창 중국 총리와 면담을 갖고 경제협력을 약속했다.
그리고 양 정상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공감을 재확인한 것 또한 사드 갈등의 원점이었던 북핵 문제에 대한 양국 간 협력의 모멘텀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그 의미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직후 열린 만큼 북핵 문제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한중 수교 이후 지난 25년간 북핵 또는 북한 문제가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지만 성과 없는 ‘중국 역할’에 대한 기대만 키워왔다. 지금까지 북한이 도발하면 중국 역할론이 제기되고, 기대했던 역할이 견인되지 않으면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카드가 등장했다. 그리고 다시 ‘중국 뒷문’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 정상회담이 남긴 과제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핵 무력이 날로 고도화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국의 역할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현실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안정에 무게를 둠으로써 중국의 역할만을 요청하는 관행에서 탈피하고자 한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
한중 양국은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공동의 목표로 설정하고 협력해야 하는 파트너임을 확인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양국 정부가 북핵 문제가 최우선의 ‘구동(求同)의 이슈’임을 재확인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은 중요했다.
정상회담이 현재의 경색된 한중관계에서 벗어나는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는 효율성 높은 방법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정상회담이 성사됐다고 해서 바로 사드 갈등이 초래한 상흔을 완전히 치유하고 양국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2013년 양국관계 발전의 출발은 양국 지도자의 호의와 특별한 관계에서 출발했고, 다시 2016년 이후 양국관계가 돌연히 악화된 배경에도 양국 지도자의 상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단초가 됐다. 그러므로 정상 간 관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외교 방식의 취약성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중국의 제19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에게 권력이 집중된 상황에서 향후에도 한중관계는 정상회담이 주도하는 패턴을 탈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정상 간 관계를 국가관계, 그리고 국민관계로 확장해 제도화하는 노력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요하다.
특히 중국의 가파른 부상으로 한중관계는 국제 환경과 구조에 취약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양국관계의 실질적 내실화가 여전히 중요하다.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중관계가 점차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중국인 관광객들.
특히 사드 갈등은 미·중 간의 복합적 세력 경쟁 구도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중관계 차원에서 봉합은 가능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은 어렵다. 다시 말해 미·중관계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다시 수면 위로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사드 갈등의 교훈은 정상회담이 중단되면 양국 간의 모든 대화가 경색됐다는 것이다. 정례화된 대화 채널을 확립하거나 아니면 경색 국면에서도 접촉할 수 있는 대안적 물밑 대화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양국관계의 새로운 출발을 제도화하고 안착시키는 후속 조치가 충실히 진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양국관계는 지난 25년의 비약적인 양적 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분한 내실화가 동반되지 않은 내재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양국 간 협력의 기반을 튼튼히 하여 향후 제2, 제3의 사드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합리적으로 조율해갈 수 있는 갈등관리체제를 구축해가야 한다.
| 새로운 협력 의제 창출 공동 모색 필요
정상회담을 통해 회복된 우호적 분위기가 국민 정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심지어 이번 정상회담에서 발생한 기자 폭행 사건이나 의전상의 홀대 논란은 한중 양국 체제의 이질성의 간극이 확대되고 있는 전반적 추세가 투영된 결과라고 해석된다.
즉 중국은 체제 안정을 위한 권력 집중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반면에 한국 사회는 촛불혁명의 결과 시민사회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고, 이러한 체제적 이질성의 간극이 커짐에 따라 양국 국가 간, 국민 간 정서적 교감을 확대·심화하는 데 어려움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한중 양국 간 새로운 협력 의제와 방식을 모색하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향후 한반도 안정에 대한 공감대를 기반으로 북핵에 대한 공동 대응을 구체화해가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정부의 의도대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위기 국면이 진정되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적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와 같이 정부가 평창올림픽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평창 효과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도 상정하고 복합적인 방안을 내부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