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N

북한, 영국, 벨기에 합작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북한의 영상물 변화 부드럽고 세련된 형식
정(情)으로 가는 사회주의 표현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연구단 연구교수

남한에서 ‘변화’라는 말은 일부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변화되는 사회에 맞춰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사회적으로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에서는 ‘변화’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는 구호는 변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대변한다.

북한 문화에서는 형식적으로는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변함없음’을 지향한다.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변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변화를 보여주고 강조해도 그 변화는 ‘변함없는 사회주의’ 내에서의 변화요 발전이다.

최근 북한 영화나 드라마가 달라졌다. 카메라 워킹을 자제하던 예전과 달리 스토리도 부드럽고, 장면 전환도 빨라졌고, 화면도 밝고, 구성도 자연스러워졌다. 화면의 형식과 구도 등에서는 다양해졌지만 주제는 복고적이다. 실리를 중요시하면서 생산성을 강조하던 2000년대 초반과는 확실히 다른 흐름이다.

2010년 이후에 제작된 영화의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는 ‘정(情)’이다. 효율과 실리를 전면에 내세우던 것에서 사회주의의 정과 노동계급을 부각해 전면에 내세운다. 이 두 주제를 통해 ‘선군에서 선당으로’의 정상화, 사회 중심계급으로서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예술영화 ‘인민이 너를 아는가’.

2011년에 제작된 예술영화 ‘인민이 너를 아는가’는 사회주의의 본질은 실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명천군의 새로운 인민위원장으로 부임한 유진옥은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똑 소리 나게 일도 잘하는 허선화를 사업소의 새로운 일꾼으로 내세우려 한다.

그러나 허선화를 면접하면서 크게 실망한다. 허선화가 일은 잘하지만 ‘인민이 무엇을 아끼고, 무엇을 귀중하게 생각하지는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진옥은 허선화에게 구두수선공의 일을 맡긴다. 낙담한 허선화는 반항도 하고, 일도 게을리했다.

하지만 손님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민을 대하는 일꾼의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렇게 사업의 효율성만 따지던 허선화는 ‘인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진정한 일꾼’으로 거듭난다.

‘인민이 너를 아는가’에서 거듭 강조하는 주제는 정이다. ‘정으로 나가면 사회주의로 나가는 것이고, 돈으로 나가면 자본주의로 나가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핵심이다. 돈을 밝히는 자본주의로 나가지 말고, 정으로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최초로 영국, 벨기에와 합작해 2015년에 제작한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는 교예(서커스)배우가 주인공인 영화다. 교예배우를 꿈꾸던 탄광촌 소녀가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평양교예단의 배우가 되어 피나는 노력 끝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다는 내용이다.

스토리 전개가 경쾌하고 교예배우 선발과 훈련 등을 통해 다양한 교예 장면을 볼거리로 제공한다. 코믹한 구성과 볼거리는 오락영화에 가깝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최종 판정에서 실패한 주인공 영미의 앞에 아버지와 탄광 사람들이 나타난다.

영미 아버지는 “우리 노동계급은 물러설 줄 모른다”면서 영미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도전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준다. 노동계급을 전면에 등장시켜 노동계급의 사회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 상업성 과학영화와 인민 생활 건강

김정은 시대에 들어 영화 제작은 극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한두 편에 불과할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예술영화에 국한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아동영화나 과학영화 분야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음이 감지된다.

조선기록과학영화촬영소가 제작하는 과학영화는 인민들에게 과학적인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하는 영화다. 2017년에 제작한 ‘새로운 항생제 케라틴펩티드’는 천연재료를 사용해 새로 개발한 케라틴펩티드의 효능을 소개하고, 2014년에 제작한 ‘생리활성물질 히알루론산’은 천연기능성 생리활성물질로 독성과 부작이 없어 건강식품, 미용식품 보조제로서의 전망이 기대되는 히알루론산의 효능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3년에 제작한 ‘효능높은 항산화제’는 용흥제약공장에서 개발·생산한 심혈관 질환과 대사 질환을 예방·치료할 수 있는 항산화제 ‘고려활성알약’이 좋다는 내용으로 일관한다.

과학영화 ‘효능높은 항산화제’.

이 밖에도 2012년에 제작한 ‘건강식품 생물칼시움영양알’, 2012년에 제작한 ‘갱년기 질병과 알렌드로나트’ 등의 과학영화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건강에 좋은 물질들을 많이 개발해서 인민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형식은 과학영화이지만 내용은 영양제 선전 그대로다. 심지어 특정한 상표명이 반복적으로 노출되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주문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과학영화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지만 동물실험 결과나 전문가의 인용, 다양한 그래픽을 이용한 효능 설명, 공장에서 쏟아져나오는 약품, 건강을 되찾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홈쇼핑의 영양제 광고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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