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16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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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지역 자문위원의 통일생각

“우리는 조국이 필요로 하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기둥이다”

오영준 
뉴욕 자문위원

오영준 뉴욕 자문위원


오영준(76) 뉴욕 자문위원의 개인사는 민주평통의 역사와도 닿아 있다.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가 민주평통의 전신인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2기 때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11기까지 하다 ‘5연임 금지’ 규정이 생겨 12기를 건너뛰고 13기부터 다시 자문위원을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민주평통 뉴욕협의회의 산증인인 것이다.

광복 후 고향을 등지고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며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온 그에게 통일 활동은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과 뜨거운 소명을 담은 것이다. 그가 인생 전반을 통틀어 가장 애틋한 마음으로 이어온 것이 민주평통 뉴욕협의회 활동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반공사상이 매우 투철한 사람입니다. 이북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이겠지요. 그래서인지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 살면서 고국을 나쁘게 평가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지 욕보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정판 기념품으로 모금

그는 현재 뉴욕수산인협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뉴욕협의회의 많은 자문위원들이 그렇듯 그 역시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밤낮으로 일하며 꿈을 이룬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간 미국 주류사회에서 쌓은 인맥만으로도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음은 물론이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후 후원회를 조직해 기념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일화는 그간의 업적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준비위원장직을 제안받고 어떻게 후원금을 마련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도 쓰던 그릇을 바꾸는 전통이 없지만 미국은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접시를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더라고요.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그가 손수 사인한 접시를 선물받았는데, 가만 보니 사람들이 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기금을 조성해 불우이웃돕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는 당장 뉴욕의 상징인 사과 모양의 크리스털 장식 301개를 제작해 번호를 새기고 후원금을 낸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시작했다. 기금 마련은 대성공이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고도 4800만 원 상당이 남아 한인회에 기부까지 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크리스털 기념품을 소장하게 된 주인공들이다. 당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던 노태우 대통령에게 1번이 전해진 데 이어 2번은 김영삼 대통령, 3번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냈는데, 그 후 이들이 차례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미국 주류사회에 한국을 알리고 통일의 필요성을 전하는 통일전도사로서의 소명에 자신감을 가졌다. 그리고 뉴욕에서 국제적인 행사가 열릴 때나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민국 주요 인사의 뉴욕 방문이 예정될 때마다 앞장서서 환영 행사를 조직하고 한국 정부의 활동을 홍보했다.

“민주평통 해외 자문위원들은 해외에서 우리 조국이 필요로 하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기둥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통일의 필요성을 알리고, 한국 정부의 긍정적인 활동을 알릴 수 있는 것 또한 자랑스러운 해외 자문위원들입니다. 앞으로도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통일 활동을 해나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한반도 통일은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1.5세대의 통일 활동 참여 독려하는 데 앞장서겠다”

박혜림 
시애틀협의회 청년자문위원

박혜림 시애틀협의회 청년자문위원


“해외 통일 활동을 펼쳐나가는 데 이민 1.5세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1세대와 미국에서 나고 자란 2~3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를 극복하며 이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1.5세대들은 사회 참여에 매우 소극적입니다. 저만 해도 민주평통과 인연을 맺기 전까지 통일 문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습니다. 통일 문제와 같은 한반도 이슈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사회 내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대다수 1.5세대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이유는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작스레 주변 환경이 바뀐 탓에 받게 된 충격과 공포, 친구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익혀야 하는 부담 등이 성장기를 지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정착했던 박혜림(31) 청년자문위원이 다시 한국행을 결심한 것은 대학에서 다문화교육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미국식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졸업 후 다시 한국을 찾는 그는 연세대에서 한국어 교육 석사과정을 거친 뒤 잠시 이민정책연구원에서 일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저소득층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지원하는 민간단체인 컬리지석세스파운데이션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다문화 교육이 필요하다

스스로 한국을 찾아 자신의 뿌리를 확인할 만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확고했지만 통일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고민이 시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17기 민주평통 시애틀협의회 청년자문위원직을 수행하고 있는 지금이 그에게는 더없이 새롭고 소중하다.

“부모님께서 워낙 역사 교육을 중시하셔서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한국 내에서도 통일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큰 듯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것만으론 젊은 세대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어필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통일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질적으로는 인권이나 경제 문제가 더 큰 이슈더군요. 이런 것들을 적극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평통 청년자문위원으로서 그가 가장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청년 콘퍼런스 같은 행사를 통해 이민 1세대와 2~3세대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스스로의 통일의식도 고취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 역시 다문화 교육이다.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남북이 가진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과정과도 매우 닮아 있다.

민주화된 교육으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통일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체험해볼 기회조차 없던 북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가 왜 옳은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통일의 이상을 실현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차세대 통일 교육에 집중하는 샌프란시스코협의회!”

정승덕 
샌프란시스코 협의회장

정승덕 샌프란시스코 협의회장


“민주평통이 뭐예요?”
지난 15기 민주평통 샌프란시스코협의회 홍보분과위원장직을 수행할 때 정승덕(63) 샌프란시스코협의회장이 받았던 질문 가운데 가장 당황하게 했던 것이 이것이다. 기자 출신인 그는 취재를 통해 민주평통 활동을 접해왔던 터라, 재외동포 사이에 민주평통의 활동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MBC 아메리카’ 샌프란시스코 총지국장이자 ‘재외동포신문’ 샌프란시스코 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17기 샌프란시스코협의회의 슬로건은 ‘동포 속으로 들어가 함께!’입니다. 17기 들어서 먼저 시작한 것이 노인회를 방문해 앞치마를 두르고 밥도 나르는 것이었어요. 동포들과 부대끼며 민주평통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려보자 한 것이죠.”

민주평통에 대해 궁금해하던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이라고 설명해주면 헌법기관에서 왜 이런 일을 하느냐며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이제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 사이에선 민주평통이 무어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국내도 마찬가지만 해외협의회의 자문위원들도 지역에서는 책임 있는 일들을 하시는 분들이다 보니 먼저 찾아가고 몸으로 부대끼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솔선수범하다보니 샌프란시스코 동포사회에서 통일 공감대가 형성돼 잠자고 있던 통일의지가 되살아나는 분위기입니다.”

또래 문화 인정하는 태도 중요

샌프란시스코협의회의 활동은 동포간의 교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스탠퍼드대 학생들과 세미나를 열어 통일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탈북자 강철환 씨가 강연자로 와서 힘을 실어주었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이점을 살린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USB 메모리 카드에 통일 관련 자료를 담아 북으로 보내는 일도 그 중 하나다. 6월 4일에는 북한 인권을 주제로 미국 고등학생 700여 명을 대상으로 심포지움을 연다.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차세대 학생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주류사회에 북한 인권 문제를 비롯한 비참한 실상을 알리는 일에 차세대들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주평통 1기 때부터 차세대 통일 교육에 만전을 기했다면 그 세대가 자라 지금은 34세 이상의 성인이 되었을 것이니, 미국 주류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컸을 것입니다.”

그는 차세대 교육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세대 간의 화합보다 또래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기성세대와는 사고방식과 문화 차이가 큰 차세대에게 기성세대와 한자리에 앉아 통일 문제를 고민하도록 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진행된 청소년 콘퍼런스에서는 나이를 45세 이하로 제한했다. 그러다 볼링대회나 축구대회처럼 지역사회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지고, 전직 자문위원과 현직 자문위원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교류의 장도 지속적으로 마련돼 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이는 유기적인 통일 활동이 가능해졌다. 유대와 소통이 활발한 샌프란시스코협의회의 또 다른 소식을 기대해본다.

“같은 체질 가진 북한인 대상
의료 활동의 선봉이 되겠다”

황우성 
보스턴협의회 간사

황우성 보스턴협의회 간사


보스턴협의회 황우성(39) 간사의 이력은 독특하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구소련이 붕괴될 무렵 선교사로 활동하게 된 부모님을 따라 러시아로 가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대학원에서 생화학과 행정을 전공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었던 이력에서 그가 가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외국인으로서의 장점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 때문이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에 능통했던 그는 진료와 경영이 분리된 미국 의료 시스템에 그의 능력을 접목하려 했다. 그 예상이 적중했다.

그는 현재 하버드대 의학대학원의 연구원이자 운영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하는 일은 병원 경영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제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르치는 것이다. 해외 유수의 병원들과 네트워크를 맺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힘쓰고 있다.

이러한 경험이 민주평통 간사 일을 해내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과 러시아, 미국을 거치면서 체득한 것이 언어와 문화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디렉션 만나면…

“러시아와 미국에 살면서 고려인과 조선족, 탈북민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각자의 처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북한에 기근이 찾아왔을 때는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것보다 기아와 인권유린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도 미국 대공황 수준의 엄청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북한의 비참함은 러시아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공산주의의 실상을 깨달았습니다. 러시아는 사람들이 똑똑한 편입니다. 자원도 풍부하니 북한처럼 비참한 삶을 살아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를 했기에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북한이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공산주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단일화되고 획일화된 폐쇄적 사회가 좋은 디렉션을 만나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보다 쉽고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생각하는 통일 과정은 의료 협력의 과정과도 비슷하다. 전 세계 의료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언어가 통하고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 과정에서도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다.

“대단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저는 한국의 선진화된 의료 시스템이 통일의 과정을 앞당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남북이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 사람들과 비슷한 체질과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 통일 과정에서 북한과 의료 협력을 선행시킬 수 있습니다. 좋은 디렉션만 갖춘다면 협력의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통일 활동에 다가선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선배 자문위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어 했다. “민주평통에는 수십 년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해오신 수많은 선배 자문위원들이 계십니다. 제가 감히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은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선배 자문위원님, 저를 바르게 이끌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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