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진단] 김정은의 지도체제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새로움은 없고 역주행은 있다”
외줄타기로 갈 때까지 가본다
세습제 유일영도 공식화, 당 우선주의로의 복귀, 엘리트의 세력 균형 등을 드러낸 김정은의 포석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지난 5월 9일부터 36년 만에 열린 북한의 제7차 당대회가 김정은을 노동당 위원장에 추대하며 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이번 당대회는 개최 전부터 권력 세습 5년 차를 맞이한 김정은이 통치구조 정비와 권력 엘리트 세력의 재건축으로 본격적인 자기정치에 나설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새로움은 없었다. 격세유전과 구체제 복구(Restoration)를 위한 역주행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강력한 제재 포위망과 국제사회 비핵화 압박에 직면한 북한의 선택을 짚어보고, 모방과 반복의 행간에 숨어 있는 이면의 권력 지형 변화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김정은식(式) 지도체제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주요 사안별로 살펴보자.
첫째, 북한판 개인독재체제인 세습제 유일영도체제의 공식화이다. 권력 승계의 정통성은 김일성 신성(神聖)가계에 있다. 진부한 전통주의다. 아무리 폐쇄적인 북한 사회일지라도 공화국 체제에서의 국가권력을 가족이 사유화하는 사유로는 너무 초라하다. 이에 등장한 것이 핵 카리스마(Charisma)다. 가문의 유훈인 핵강국 건설을 완수해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며, 사회주의의 최후 보루로서 북한을 사수하고 민족통일의 사명을 결연히 수행해가는 위대한 지도자 상을 부각시켰다. 당연한 귀결로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항구화도 선언되었다.
권력 중추세력과 추종자들, 그리고 국내외 청중을 상대로 김정은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알리는 공식 대관식에서 핵무장을 정통성의 골간이라 공언한 것이다. 스스로 양손을 결박(Tying-Hands)해 청중비용(Audience Costs)을 극대화하는 벼랑끝 전술을 시현한 셈이다. 퇴로를 끊고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말 그대로 제재가 정권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철저히 이행되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비핵화 노력이 결실을 맺기 힘들 것임을 직감케 한다.
둘째, 당의 귀환이다. 김정은의 ‘권위를 절대화하고 견결히 옹호하는’ 개인독재의 주 도구로서 당이 전면에 나섰다. 그래서 유일영도권을 가진 당중앙으로서 김정은도 제1비서가 아닌 당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김일성의 청년 독재자 시절을 연상케 하는 직함이다. 보조를 맞춰 비서제를 갈음하는 정무국과 부위원장 직제가 신설되었다<표1>. 선군정치하의 최고 정책결정기관이었던 국방위원회의 권능과 위상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군부 영향력은 감소 추세
김정은 세습 후 군부의 영향력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리영호, 현영철 등 총참모장을 포함해 고위급 장성들이 집중적 견제와 감시 속에 숙청과 좌천으로 몰락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7차 당대회에서도 고령의 민간 당료 김기남과 양형섭은 정치국 위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군 원로 오극렬과 리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제외되었다. 군부가 3대 세습에 저항했거나 반역을 도모한 정황도 없다. 더욱이 김정은의 지도자 경력이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을 거치며 시작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사태 진전이다.
이는 권력과 이권 배분에서 군부 및 친족 후견세력과 경쟁하던 당 세력, 특히 수령독재 보위기구로서 조직지도부와 김정은의 결착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들의 결합은 친족 후견인 장성택·김경희 부부를 비롯해 무해한 원로 최태복과 김기남을 제외한 소위 운구차 8인방을 제거하며 위력을 입증했다.
반면 공포·숙청정치의 광풍으로 희생된 조직지도부 주요 간부는 없었다. 7차 당대회에서도 제1부부장 조연준과 제1부부장 출신으로 군을 감독해왔던 총정치국장 황병서는 정치국 위원으로서 건재를 알렸다. 또 다른 제1부부장 김경옥도 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신예 조용원 부부장은 중앙위 위원으로 내일을 기약하게 되었다. 세도, 종파, 관료주의, 부정부패의 척결과 당기 확립이 유일체제 확립의 필수 과업으로 강조되는데, 당대회가 조직지도부 기획·연출로 진행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김정일은 군을 정치 전면에 배치하는 선군 비상통치체제를 구축해 위기 상황에 대처했다. 일반적으로 군에의 의존 증대와 군의 정치화는 민간 독재자의 생존을 위협한다. 역설적이지만 김정일의 견고한 당 장악력은 선군통치의 바탕이 되었다. 당 우위 사회주의 민군관계의 제도 유산을 활용해 안전하게 군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랜 후계자 수업시간 동안 선전선동부와 조직지도부 활동 등으로 당 핵심기구와 조직 엘리트 세력을 친위부대화한 덕택에 가능했던 일이다. 도전자의 근거지로 재활용될 수도 있는 당 권력 조직을 군을 통해 견제하는 부수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조직지도부에 편승하자
김정은의 정치 경험은 일천하다. 조직지도부 등 당권기관에 대한 지배력을 다질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상대적인 당 회귀와 군 퇴조는 사실상 권력의 근원으로서 친위조직을 거느리지 못한 김정은의 입지를 반영한다. 김정은으로서는 장성택 등 막강한 친족 후견인이나 거대 군부보다는 상시조직이자 유일독재 수호가 존재 이유인 조직지도부 세력에의 편승 전략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조직 기반이 허약한 김정은과 조직지도부의 공생·유착관계가 이번에 당 중심 유일영도체제 재건으로 표출됐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이 절대 권력을 확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타인의 힘으로 제위에 오른 군주는 그 자의 의지와 운명이라는 불안정하며 불확실한 요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마키아벨리의 경고에 주목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셋째, 권력 엘리트 세력균형체제 복원이다. 유별난 ‘청년’ 강조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세대 교체는 없었다. 세습 후 원로 고위간부 처리에 고심하던 김정일은 당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던 장성택을 신설 비밀숙청부대 심화조 총책에 기용해 대규모 세대 교체 작업을 단행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한 바 있다.
김정은판(版) 심화조는 없었다. 중앙위 위원, 후보위원의 약 55%인 129명이 신규 선출되었는데, 상당수가 ‘당의 후비대, 익측부대, 척후대’로서 향후 요직 등용을 준비하는 청년 세대일 것으로 추축된다. 세대 교체보다는 전통적인 노·장·청 조화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김정은 권력 공고화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례이다.
김정은의 생존은 잠재적 도전자들인 권력 엘리트 세력에 대한 강고한 지배력이 아니라, 이들 간 상호 견제와 경쟁으로 보존돼왔다. 잦은 숙청과 교체로 흐트러졌던 세력균형체제가 이번에 복구됐다. 먼저 친족·가신세력이다. 대표 격인 최룡해는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무국 부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여동생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중앙위 위원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장성택-김경희-최룡해로 연결되던 초창기 친족·가신세력의 위상과는 차이가 확연하다.
현재 권력인 조직지도부나 비대해진 군부 견제에 나서는 주력부대는 숙청·공포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보안세력, 특히 안전보위부다. 인민보안부장 최부일도 보위부장 김원홍과 나란히 정치국과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황병서의 군총정치국이나 조직지도부도 보안기구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공안정치 시대의 도래로 칭할 만하다.
공안정치 시대 개막
핵무장 주무세력인 군산복합체도 근육을 키워 돌아왔다. 군수공업부장 리만건, 전략 도발 주 설계자 김영철, 인민무력부장 박영식, 총참모장 리명수는 정치국 위원(김영철, 리만건은 정무국 부위원장 겸임), 작전국장 노광철, 전 총참모장 리영길, 당 군사부장 리병철은 후보위원, 박영식, 리명수, 리만건, 김영철, 서홍찬(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은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에 강행 돌파 의지로 응답한 것이다.
해묵은 스탈린식 만리마속도 집단노력 동원과 국가경제계획으로 자강력 제일주의 반개혁과 국제 제재의 고통을 피지배 주민에게 전가하며 핵군산복합체를 경제·재정적으로 뒷받침하려 박봉주 내각총리를 위시해 오수용, 곽범기, 로두철, 임철웅, 리철만 등 경제 분야 부총리 출신들이 대거 요직에 합류했다. 핵개발에 집중된 자원 분배의 왜곡에 저항하는 내부 적들의 ‘적발·분쇄’는 공안 맹주들이, ‘핵보유국 지위를 견지’하며 공세적 ‘대적 투쟁’을 전개할 것을 맹세한 신임 리수용 정치국위원(정무국 부위원장 겸직)과 외무상에 취임한 리영호가 핵외교를 맡았다.
김정은은 권력과 이권 배분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권력 엘리트 조직세력 간 공포의 균형하에서 지배분업구조의 린치핀(Linchpin : 바퀴의 굴대를 고정시키는 핀)으로서 최고 지위와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 핵강국 프로젝트는 세습 정통성의 중대 근거이자 잠재된 균열과 갈등을 봉합하는 시멘트로서 기능한다. 7차 당대회는 이러한 생명 유지 메커니즘을 재확인해주었다. 김정은 정권은 핵무장 통치연합을 재건축해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외줄타기에 나섰다.
김진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 박사.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국제전략연구실장, 통일준비위원회 정책보좌관, 국제정치학회 연구이사 등 역임.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