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진단] 새로운 경제노선인가,
핵무력의 강화인가?
핵 보유 천명으로 先軍에서 先黨으로
그러나 경제는 ‘여전히’ 밝지 못하다
북한은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중국과 대등한 국가가 됐음을 선포했다. 당이 나라를 이끄는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음도 천명했다. 그런데도 뒤가 켕기는 것은 경제다. 전력과 에너지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당 7차 대회가 ‘소문만 무성한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말은 요란했지만 정작 기대했던 변화의 방향은 제시되지 못했다. 국제사회가 바랐던 내용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요란한 잔치, 별 볼 게 없다’는 옛말을 새삼 깨닫게 하는 북한식 정치 이벤트였다.
내용도 없고 구체성도 없다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고민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전히 당대회를 통해 북한의 현실을 바라보며 김정은 체제의 미래를 분석해봐야 한다.
이번 당대회의 첫 번째 의미는 김정은 체제가 이른바 ‘정상국가’로의 형식적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체제 위기 국면에 빠졌기에 당대회를 개최하지 못했다. 사회주의의 붕괴와 김일성 사망, 식량난과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북한은 5년에 한 번씩 정상적으로 당대회를 열 수 없었다.
1997년 김정일이 총비서로 추대된 것도 당대회가 아닌 당대표회에서였다. 2010년 김정은의 후계자 공식화와 2012년 권력 승계도 당대표자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자축에 불과하지만 위기 극복했다고 선언
36년 만에 열린 7차 당대회는 북한의 체제 위기와 그로 말미암은 비정상 상황을 마무리하고, ‘사회주의 당국가’로의 정상화를 대내외에 과시했다는 데 일차적 의미가 있다. 수십 년간 지속된 체제 위기 상황과 비정상적인 당국가 시스템을 종료하고, 김정은 시대는 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임을 알린 것이다.
당의 전사회적 영도를 재확인하고 당 우위의 국가 시스템을 재정비함으로써, 과거 위기 상황에서 체제 보존을 위한 고육지책으로서 ‘선군(先軍)’을 내세웠던 비정상 상태를 사회주의 본연의 ‘선당(先黨)’으로 복원시킨 셈이다.
당 사업을 총화하는 자리에서 김정은이 지난 시기를 ‘준엄한 투쟁’과 ‘영광스러운 승리’의 연대였다고 강조한 것은 지금까지는 위기 상황이었기에 당대회를 열지 못했으나 이제는 그 위기를 극복했기에 정상적으로 당대회를 개최한다는 선언일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엄혹한 체제 위기를 이겨내고 드디어 당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음을 김정은은 ‘승리’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 내세우는 승리는 자축의 승리에 불과하다.
이번 당대회가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와 당국가 시스템 구축을 밝힌 것이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의미라면 내용적 측면에서는 북한 국가전략이 변화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것은 바로 핵국가의 공식화이다.
김정일 시대에는 핵 개발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비핵화를 원칙에 내세우며 협상에 응했다. 체제 위기에 처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체제를 인정받고 안전을 보장받음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려 했고, 그 주요한 수단이 핵카드였다. 김정일 시대는 줄곧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담보받기 위해 핵무기를 카드화했고, 협상이 기대대로 되지 않을 경우 벼랑끝 전술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곤 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더 이상 핵무기를 협상용 카드로 사용하지 않을 태세다. 2012년 헌법과 법률에 핵 보유를 명시한 데 이어, 2013년 당 중앙위에서 채택한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이번 당대회에서 공식 확인함으로써 향후 북한의 국가전략은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제 북한에 핵무기는 협상용이 아니다. 김정일 시대에 구사했던 선협상, 후확산이 아니라 선확산, 후협상으로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해버렸다. 핵 보유의 공식화는 향후 김정은 시대의 국가발전 전략에서 포기할 수 없는 근본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경제 병진노선이 인민경제 향상과 경제 발전을 위한 근본 담보로서 핵무기 보유를 전제화하고 있음도 같은 맥락이다.
핵 보유로 미국·중국에 동급으로 맞선다
핵 보유를 전제함으로써 북한의 대외 전략도 김정일 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도발도 대화도 매우 공세적으로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처럼 미국에 체제 인정과 안전 보장을 요구하거나 협상하지 않는다. 미국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핵무기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 배치한 이상 미국에 안보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이번 총화보고에서 미국을 강력 비난하고 협상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핵 보유라는 전제하에 공세적이고 당당한 대외 전략은 중국에도 적용된다. 핵을 가진 이상 중국도 북한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대남전략은 조국통일 3대 헌장과 연방제 통일 및 주한미군 철수 등 고색창연한 과거 주장을 되풀이했지만, 이는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를 계승하는 지속성 차원에서 기존 입장을 반복한 측면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시대 대남전략의 핵심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출발’이라는 김정은 총화보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선대 수령에 비해 남북관계에 대한 상대적 관심 결여를 짐작케 한다.
남쪽에 손을 내밀거나 경제적 지원을 구걸하지 않고, 상대방을 적화하거나 흡수하려는 통일에서 벗어나 남북의 평화 공존을 강조함으로써 ‘두 개의 조선’으로 분리공존하자는 북한식 대남전략을 엿보게 한다.
관심거리였던 당 최고 수위의 직책으로 ‘노동당 위원장’이라는 기묘한 자리를 신설한 것은 오로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지위를 영원히 모시려는 정치적 기술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다. 영원한 수령이신 선대 수령의 직책을 피해야 하는 세습 왕조의 역사적 순결함의 부작용이다.
비서국 대신 정무국이라는 생소한 조직을 만든 것 역시 김정일을 총비서로 모신 탓에 김정은 시대에는 그 누구도 비서직을 붙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에서도 할아버지는 주석, 아버지는 국방위원장으로 영원히 모셨으니 차후의 최고인민회의에서서는 김정은에게 줄 기상천외한 국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고안해낼 가능성이 있다.
정치국과 정무국 그리고 중앙군사위원회의 인적 구성은 김정은 시대의 핵심 엘리트들이 큰 폭으로 세대교체되기보다는 노·장·청 조화의 지속성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리영호나 장성택, 현영철처럼 불충하거나 종파를 거느리거나 성과가 없으면 가차 없이 처형할 수 있음을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대 수령으로부터 권력 지속성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물갈이보다는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시대의 엘리트 발탁은 충성심과 업적주의에 기반을 둘 것이다. 당·정·군을 대표하는 상무위원 구성과 부문별 책임자를 고루 배치한 정무국 부위원장 인선은 영역에 따라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부여하는 김정은식 용인술을 엿보게 한다.
경제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국가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한 점은 경제 강국을 향한 정책적 필요와 의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앞으로의 5년 사이 북한이 구상하는 경제 발전 내용이 채워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도 5년 전략은 세웠으나 정말로 가능할지는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과거와 달리 경제발전 ‘계획’이 아닌 경제발전 ‘전략’이라는 다소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당대회와 달리 경제발전 계획과 관련한 별도의 결정서가 채택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전력과 에너지 산업을 강조하고 인민경제 선행 부분을 확인하고 무역과 경제개발구를 통한 대외 개방을 역설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실제 피부에 와 닿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개혁·개방 조치는 무력해 보인다. 자축의 승리에 비해 당대회가 제시해야 할 휘황한 전망은 경제 분야에서 여전히 불투명하다. 위기를 벗어났다는 자축의 승리는 보여줬지만 미래로 나아갈 희망찬 설계도는 오리무중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당대회는 오랜 기간의 비정상을 벗어나 정상적인 당국가 시스템으로 복귀했다는 것과 핵 보유를 핵심 국가전략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김정은 시대를 공식 선포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정상국가라는 자신감을 내세운 ‘핵국가’ 북한에 대해 우리의 대북정책도 이젠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접근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김근식 경남대 정외과 교수
서울대 정치학박사.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2007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등 역임. 현재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공저 <남북한 과학기술 협력 대비 국내체제 정비방안>, 저서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 2>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