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통해 ‘제2의 중동 붐’을 찾는다
‘한 손엔 대한민국, 다른 손엔 북한’
이란을 한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면…
이란의 온건파는 한국을, 강경파는 북한을 붙잡고 있다. 그러한 이란을 지배하는 것은 강경파이니, 우리는 온건파가 힘을 쓸 수 있는 구도를 만드는 데 전력해야 한다.
이란은 핵 개발로 취해진 제재가 해제된 이후 세계가 주목하는 시장으로 떠올랐다.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이란을 국빈 방문했다. 세일즈 외교를 내세운 박 대통령은 역대 최대의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이란을 찾았다. 테헤란에서 열린 한·이란 정상회담은 경제 협력과 대북 압박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란과 관련해 상반된 정보가 돌고 있어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이란은 2015년 7월 ‘P5+1(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핵 협상을 타결한 후 국제무대에 복귀했다. 2016년 2월 국회의원 선거와 전문가 의회 선거에서 개혁·개방을 내세운 정파가 테헤란을 비롯한 대도시를 석권했다.
도시 중산층 출신의 젊은 유권자가 국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투표를 독려하면서 비교적 높은 60%의 투표율이 나왔다(이란 선관위는 당선자의 득표율과 양대 선거에서 개혁파와 보수파가 차지한 의석 등은 공표하지 않는다. 투표율이 높았다는 것은 개혁파가 약진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란은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의 자원 부국이면서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 다각화의 기반을 갖췄다. 인구 8000여만 명의 거대 시장도 갖고 있다. 태권도 인구가 200여만 명에 달할 정도로 한류 열풍이 뜨겁다고 하니 우리에겐 중동의 마지막 블루오션인 듯하다.
핵 협상 타결 후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하지만 다른 소식도 들려온다. 역사적인 핵 협상을 타결하고 석 달도 지나지 않은 2015년 10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해 보이는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것이다. 같은 해 11월엔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2016년 1월 미국은 미사일 개발에 연루된 개인과 기업 11곳의 신규 제재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북한과 기술 개발을 협력한 것으로 의심받는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이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3월에 또다시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했다. 미국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불렀는데, 이란은 미국을 ‘악의 제국’으로 불러왔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종신직 국가 수장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악의 제국’ 미국을 여전히 맹비난하고 있다.
이란이 이렇게 대비되는 행보를 하는 것은 국내 정치의 구조 때문이다. 이란에선 ‘이슬람 공화국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시민에게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다. 그리고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진 선거 결과에 따라 대통령은 물론이고 의회 구성원이 교체되니,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2009년 강경 보수파가 장악한 혁명수비대와 비밀경찰이 부정 선거를 항의하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기 전까지 이란은 중동 내에서 이스라엘, 터키, 레바논과 함께 제한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제한적이라고 한 것은 선거와 다원주의를 제도적으로는 보장하고 있어, 절차적 민주주의 요건은 최소한 충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 세계 민주주의 지수를 측정하는 프리덤하우스는 2009년 이후 ‘민주주의 없는 선거(Elections Without Democracy)’를 행하는 이란 정부를 권위주의 정권으로 강등시켰다. 이란의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은 급진 이슬람 법학자와 혁명수비대 연합의 지나친 체제 단속 때문이었다.
우리와 협력관계를 강화하려는 온건 개혁파는 이란 국내 정치의 역학구도에서는 결코 지배적인 세력이 아니다. 2015년 7월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교장관이 이 핵 협상을 성사시키면서 개혁파의 입지가 부상하긴 했지만 이란 최고지도자와 지배 엘리트는 여전히 개혁·개방에 반대하는 강경 보수파이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공화제보다 이슬람을 더욱 강조하기 때문에 간접 선출된 종신직 종교지도자가 직접 선출된 대통령보다 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최고 종교지도자는 군부와 사법부, 외교권을 장악하며 대통령의 결정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책을 거부할 수 있다. 체제 수호 엘리트는 교조적인 이슬람 교리 해석과 획일적인 국가 이익 설정에 기반을 두고 급진적이고 강경한 대외정책을 추구한다.
북한과의 우호관계 유지하려는 강경파
강경 보수파는 개혁파의 성장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다. 직접 선거에 출마하려면 후보자들은 먼저 헌법수호위원회의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헌법수호위원회의 이슬람 법학자 위원 12명 가운데 6명은 최고 종교지도자가 지명한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이번 국회의원 후보 등록자의 50%, 전문가 의회 후보 등록자의 80% 이상을 사전 심의로 걸러냈다. 걸러진 이들은 대부분 개혁파 성향이었다.
한·이란 정상회담에서 로하니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이란 개혁파가 오랫동안 밝혀온 입장으로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북한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는 강경파이다.
강경 보수파는 지난 10여 년의 제재기간 동안 저항 경제를 내세우며 경제 분야의 이권을 장악했기에 제재 해제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우리의 이란 시장 재진출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200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핵 확산 금지 촉구 결의안에 동의한 후 국제사회의 제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對)이란 제재 동참은 이란과 북한 사이에 핵 기술과 군사 협력이 이뤄지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정상회담 후 역대 최대 규모의 세일즈 외교 성과를 내세우며 42조 원에 달하는 교역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보수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다. 단기적 경제 이익에 치중한 저자세는 이란 온건 개혁파 지지자의 입장과 배치된다.
2016년 2월의 양대 선거(국회의원 선거와 전문가 의회 선거)에서 개혁파는 보수파의 조직적 방해가 있었음에도 약진했다. 로하니 대통령이 내년에 재선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강경 보수파를 심판한 도시 중산층과 청년, 여성 유권자야말로 우리와 장기적으로 협력관계를 강화해나갈 파트너란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강경 보수파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개방 정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핵 협상 타결을 계기로 이란은 국제사회 복귀 경로에 들어섰고 이 추세를 되돌리는 것은 보수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제한적일지라도 선거를 하는 것은 체제 수호 세력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선거가 작동하는 나라의 지도자는 국내 여론 때문에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할 때 독재자보다는 많은 제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공익 확대를 내세우는 것이 권력 유지를 위해 효과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보수 엘리트 안에서는 개방 정국을 둘러싼 새로운 손익 계산과 눈치 보기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이란의 강경 보수파만큼 사우디아라비아 강경파의 과격 행보도 걱정거리다. 우리가 이란과 협력관계를 강조하면 사우디아라비아가 기분이 상할 수 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갈등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증산과 저유가가 대립하는 치킨 게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16년 1월 이란 보수파의 체제 단속과 사우디아라비아 강경파의 내부 위기 돌파용 과격 행보가 맞부딪혀 양국은 단교 상태로 돌입하기도 했다.
기묘하게 공생하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강경파
2015년 1월 출범한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국왕 체제는 국내외 위기에 처하면서 강경 노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란과 대결하는 구도를 벌인 것이다. 저유가로 빚어진 재정 압박과 통치 기반의 위기, 살만 국왕의 독단적인 승계 구도 수정(살만 국왕은 왕실 전체 합의로 결정된 승계 구도를 수정해 제1왕세자에 자신의 조카를, 제2 왕세자를 자신의 아들로 전격 교체했다)과 그에 따른 왕실 내부의 불만 고조, 출구전략 없는 예멘 내전 개입과 그에 따른 전비 부담, 미국의 이란 중시정책에 따른 불안감 상승으로 살만 국왕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외부의 적인 이란에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란 보수파 역시 맞대응으로 나서며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이 다시 야기되었다.
그러나 이 갈등 때문에 우리가 양자택일을 준비해야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란 핵 협상 타결 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역내 패권 경쟁이 첨예해지기는 했지만 물리적 충돌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양국 사이에서의 일어난 적당한 갈등은 양국 강경파에게 내부 위기를 타개함은 물론 대외 과격 행보를 하는 데 좋은 구실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보다 악화된 갈등은 강경파라 할지라도 양쪽 모두에게 지나친 부담이 될 것이다.
현재 중동 상황은 시리아 내전과 난민 문제, 이슬람 원리주의 과격단체 ISIS 격퇴전, 예멘 내전 등으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악화된 상태이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강경파는 OPEC의 합의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중동에 새로운 전쟁을 시작할 정도의 현상 타파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정치학 박사. 외교부 아중동국 정책자문위원. 한국중동학회 이사. 서울대,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외국어대에서 중동 정치, 이슬람과 국제정치 강의. <The Arab Spring :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를 공동 편집했고 <지하디스트의 여정(저자 파와즈 게르게스)>을 번역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