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태백산 능선의 눈꽃과 장군봉 천제단.
강원도 태백은 우리 국토의 어버이다. 국토의 양대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고,
이 땅에 실핏줄처럼 뻗은 산줄기가 하나 되는 태백산이 솟아 있다.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강줄기가 여기서 시작되고, 아버지같이 듬직한 산줄기는 모두 이곳으로 모여든다.
양영훈 여행작가
겨울 산의 진수는 눈꽃이다. 모진 삭풍과 매서운 추위 속을 무릅쓰고 겨울 산에 오르는 것은 눈꽃을 보기 위해서다. 눈꽃 명산은 대부분 도두룩한 육산이다. 태백산, 덕유산, 한라산, 무등산 등이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한가운데서 각기 동서남북 방향으로 금강산, 구월산, 지리산, 묘향산 등의 명산을 거느린 영산(靈山)이다. 옛날부터 민족의 성소(聖所)로 여겨졌다. 지금까지도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1567m) 천제단에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배검’(단군)에게 올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본격적인 태백산 산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는 아주 길고도 깊은 시원(始原)을 찾아나서는 듯한 엄숙함과 비장감마저 일렁인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온 산을 화사한 꽃 세상으로 수놓은 눈꽃을 만나자마자 온데간데없이 사그라지고 만다. 눈 구경이나 꽃구경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눈 구경에다 꽃구경이 합쳐진 눈꽃 구경이 아니던가.
눈꽃의 화사함은 그 어떤 꽃에도 뒤지지 않는다. 일찍이 조선 제일의 시인이었던 송강 정철도 이런 시를 남겼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내어 님 계신 데 보내고저
님께서 보신 후에 녹아진들 어떠리
한겨울의 태백산에서는 나뭇가지마다 화사하게 피어난 눈꽃을 눈이 시리고 아프도록 감상하게 된다. 나무는 눈꽃으로 피어나고, 숲은 눈꽃 터널을 이루며, 발아래에는 순백의 눈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 가까이의 능선 길에 올라서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군락지가 장관을 연출한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장엄하고, 저마다 다른 톤의 실루엣으로 중첩한 산봉우리는 마치 거친 평원을 질주하는 야생마들처럼 역동적이다. 태백산은 이 땅에서 가장 성스럽고 상서로운 해맞이 명소로도 소문나 있다. 그래서인지 태백산 해돋이는 유달리 장엄하고 화려하다.
<사진>태백산 능선의 주목. 구름 위로 솟은 함백산 정상이 뒤로 보인다.
태백산 등산로는 여러 갈래다. 비교적 오르기 쉬운 코스는 유일사로 올랐다가 당골광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유일사에서 정상까지 약 4㎞ 구간을 오르는 데는 2시간쯤, 정상에서 당골광장까지는 1시간 30분쯤 소요된다.
태백산도립공원 일대에서는 매년 겨울철마다 성대한 눈 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22회째를 맞는 태백산 눈축제는 1월 22일부터 1월 31일까지 열흘 동안 열릴 예정이다. 당골광장을 비롯한 축제장에서는 눈꽃 등반대회, 눈 조각 경연대회, 설피 신기, 고로쇠 스키 타기, 이글루 체험, 눈 미끄럼틀 타기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연일 계속된다.
부처 진신사리 봉안된 정암사
태백산 능선에서는 백두대간의 산줄기로 이어진 함백산(1572m)이 빤히 바라보인다. 함백산은 태백산보다 약간 더 높지만, 정상에 오르기는 훨씬 더 쉽다. 통신중계소가 세워진 정상까지 찻길이 개설돼 있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눈이 많아서 차량 통행이 불가능할뿐더러 일반 차량의 출입도 금지돼 있다. 사실 함백산 아래의 만항재 설경만으로도 다리품이 아깝지 않다.
<사진>1 백두대간의 첩첩한 산자락 위로 불끈 솟아오른 태양.
2 낙엽송 숲에 하얀 눈꽃 세상이 펼쳐진 만항재의 설경.
3 태백산 능선의 제단에서 기도하는 무속인.
4 당골의 낙엽송 숲에 눈꽃이 활짝 피었다.
만항재 고갯마루의 해발고도는 1330m에 이른다. 이곳을 지나는 414번 지방도는 우리나라에서 차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다. 하지만 정선 쪽에서 오를 때에는 경사가 비교적 완만해서 사시사철 편안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겨울철에 폭설이 내려도 의외로 신속하게 제설작업이 진행되는 덕택에 길이 끊기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만항재 일대에는 낙엽송 조림지가 있다. 쭉쭉 뻗은 낙엽송 숲은 환상적인 눈꽃 세상으로 변신한다. 눈이 내리지 않은 날에도 만항재 낙엽송 숲은 아침마다 순백으로 채색된다. 해발고도가 워낙 높다 보니 밤새도록 고갯마루에 걸린 구름 속의 수증기가 얼어붙어 나뭇가지마다 하얀 상고대를 피워 올리기 때문이다. 상고대는 해가 뜨거나 기온이 올라가면 금세 녹아버린다. 기나긴 겨울밤에 느닷없이 꾸었던 일장춘몽처럼 허무하다.
만항재를 오가는 길에 함백산의 북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정암사(033-591-2469)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정암사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다. 적멸보궁 뒤쪽의 가파른 산비탈에 세워진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 높이 9m의 이 칠층모전석탑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갖고 온 마노석으로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진>1 수마노탑 앞에서 바라본 정암사 전경.
2 국물이 자박자박한 태백식 닭갈비.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한 수마노탑 앞에 서면, 정암사 주변의 비좁은 골짜기와 육중한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자락마다 눈에 덮인 전나무 고목이 첨탑처럼 솟아 있다. 늠름하고 당당한 그 자태를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 든든하고 기분조차 절로 상쾌해진다. 속진(俗塵)에 찌든 마음이 금세 맑아지는 듯하다.
여행정보
숙박 태백에서는 태백개발공사에서 운영하는 오투리조트(033-580-7000)가 가장 괜찮은 숙박시설이다. 태백산도립공원의 당골광장 주변에는 태백산민박촌(033-553-7460), 배꽃향기펜션(010-4892-6757), 산골콘도민박(033-553-6622), 청담게스트하우스(033-552-9933) 등을 비롯한 숙박업소가 많다. 만항재 찻길 옆에는 장산콘도(033-378-5550)가 있다.
맛집 태백의 대표적인 별미는 연탄불 한우구이다. 태백 시내인 황지동, 상장동 등지에 있는 시장실비식당(033-552-2085), 태성실비식당(033-552-5287), 충남실비식당(033-552-5074) 등에 가면 육즙 많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 태백 한우구이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그밖에 김서방닭갈비(태백식 닭갈비, 033-553-6378), 너와집(한정식, 033-553-4669), 정원(한정식, 033-553-6444) 등도 권할 만하다. 만항재 아래에 있는 만항마을에는 토종닭백숙, 닭볶음탕 등을 내놓는 할매닭집(033-591-3136), 밥상머리(033-591-2030), 산골닭집(033-591-5007) 등의 토종닭 전문점이 여럿 있다.